안나푸르나 트레킹 첫날

포카라에서 힐레 가는 길

by 산달림


일정이 좀 바쁜 날이다. 에티항공으로 포카라에 가서 한인식당에서 부탁한 팀스(TIMS 트레커 정보관리시스템)와 퍼밋(국립공원 입장 허가서)을 받아야 한다. 함께 걸을 포터를 만나서 택시로 나야풀로 가서 트레킹을 시작하여 힐레까지 가는 일정이다. 간밤에 별 할 일이 없어 초저녁부터 한국에서 가지고 온 책인 "창문을 넘어서 도망친 100세 노인"이란 책을 읽다가 정전이 되어 일찍 잤다.


오랜만에 세상 모르고 잤다. 잠이 오면 잔다. 그냥 신체의 흐름에 맞겨본다. 그게 네팔에서의 쉼이다. 카트만두에도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정전이 잣다. 히미하게 켜진 전기불도 꺼지니 할 일이 없어서 잔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시간여행을 한 것 같다. 근래 가장 길게 잔 밤이다. 너무 누워 있었다니 아침에 허리가 아프다. 쉬는 것도 습관이 돼야 하는데 오래 자는 것도 힘든 일이다.


아침에 다행히 wi-fi가 켜져 이곳의 소식을 전할 수 있다. 식당에 밥을 기다리면서 부산에서 온 트레킹팀을 만났다. Ebc 트레킹을 가서 로부체 해발 4,900m에서 고소를 먹고 하산을 하였단다. 그것도 다른 팀의 가이드가 얼굴색을 보고 말해서 알았다고 한다. 정작 본인은 고소를 먹었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다른 팀원도 5,200m에서 고소 증상으로 하산하고 대원중 한분만 칼라파타르에 올랐고 아직도 촐라패스를 넘는 길은 눈으로 막혀 있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추위로 고소가 심했고 날씨도 자주 눈이 내려 힘들었다고 전해 준다. 올 가을에 재정비해서 다시 도전하겠다고 한다. 한 번의 실패로 도전을 멈출 수 없는 의지의 한국인이다.


우리의 두 번째 여정이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끝내고 카트만두로 돌아와서 Ebc를 오른 후 촐라패스를 넘는 계획이다. 아직 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그때까지는 길이 뚫리길 기다릴 뿐이다. 그건 오직 히말라야의 신만이 알것이다. 길을 내어 주면 오를 것이고 아니면 그냥 돌아 와야 할지도 모른다. 먼저 히말라야의 Abc에서 고소 적응을 하고 그 길을 걸을 계획이다. 그때 걱정은 그때 해도 된다.


다음 여정인 Ebc로 갈 짐은 숙소에 보관하고 트리뷰반 공항으로 나갔다. 국내선 터미널이라지만 공사 중에 있고 공항시설은 마치 시골 버스터미널 같은 같은 분위기이다. 출발하는 비행기는 8시 30분이지만 9:30분으로 1시간 연착을 예고하더니 다시 1시간 20분을 더 연기하여 9:50에 출발이다. 포카라행 비행기 편은 이른 아침 안개로 통상 1시간 정도 지연은 기본이란다. 분초를 다투는 현대의 틀에 박힌 생활습관은 네팔 트레킹에서는 탁 내려 놔야 편안한 여행이 된다. 여긴 네팔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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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행 에티항공 기내 내부(좌) 풍요의 여신 안나프루나 설산(우)


상공에서 본 포카라 시내


하늘에서 보는 카트만두는 고층빌딩을 보이지 않고 낮은 건물로 이루어져 있고 포카라 가는 동안은 창문으로 비치는 네팔의 모습은 산악 국가임을 실감하게 하는 것은 평지가 거의 없고 높은 산 능선에도 민가가 있다는 게 모진 생존의 본능이 느껴진다. 오른편 쪽으로 보이는 히말라야 은백색 설산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버스로 달리면 7 ~ 8시간의 거리를 40여분의 짧은 시간 비행시간에 포카라에 내려 놓는다. 포카라의 날씨는 초여름 기온으로 덥다.


페와 호수 리버사이드에 있는 식당에서 사장님을 만나 팀스, 퍼밋을 챙기고 포터를 소개받았다. 일정이 삐듯하여 택시로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 트레킹 들머리인 나야풀로 향했다. 포카라 시내를 벗어나자 한적한 시골길이다. 70년대 옛 농촌의 모습을 생각하게 하는 깡촌 풍경 그대로다. 산악마을의 작은 논에 고된 삶의 흔적이 묻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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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리를 건너면 비레탄티 여행자 체크 포인트


근 한 시간을 달려 푼힐로 올라가는 트레킹의 들머리인 나야풀에 도착하였다. 늘 트레커들로 북적이는 나야풀을 출발하여 비레탄티에서 팀스와 퍼밋을 검사를 받고 조금은 늦은 점심식사를 하였다. 여기서 자동차 길로 시와이 혹은 힐레까지는 지프차로 갈 수 있지만 편안함보다는 걷기 위해 여기에 왔으니 걸어서 가기로 했다.


요즘 맨땅을 걸어 본 적이 있나요. 비포장 도로를 따라가는 힐레 가는 길


우리와 함께하는 포터는 36살 된 결혼한 친구와 26세인 젊은 친구인데 등치는 좀 작은 체구들이지만 몸은 단단하고 마음씨가 착한 친구들이다. 어설프게나마 간단한 의사소통은 할 수 있었다. 계곡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는 트레킹길은 지프차가 다닐 정도의 길인데 막 학교 수업을 끝내고 돌아가는 학생들을 만났다. 특이한 게 쪼리 슬리퍼를 신고 하교를 하는 게 이채롭다. 꿈 많고 장난 좋아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세계 어디를 가도 똑같다. 그 모습에서 나의 그 시절이 떠 올라 피식 웃음이 나온다.


흐린 날씨에 가는 이슬비가 내린다. 트레킹 첫날부터 비로 첫 신고식을 하였다. 다행히 빗줄기가 굵지 않아 우의만 입고도 불편함이 없었다. 계곡을 따라 살아가는 그들의 계단식 논밭이 층층을 이루는 게 여기가 다랭이 논밭의 최정상급이 아닐까 싶다. 어찌 장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저리도 높은 곳에 논 밭을 일구어 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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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열대 지역인 힐레 가는 길의 계단식 논밭과 그들의 집


어둡기 전인 16:30에 힐레마을 DIPAK 게스트하우스에서 트레킹 첫날 여정을 끝냈다. 다행히 비는 멎고 치킨 라이스로 저녁식사를 하며 무사히 도착 축하를 반주로 소주 한잔을 기울이는데 광저우로 올 때 남방항공에서 만났던 영국에 산다는 아가씨 커플팀을 여기서 다시 만났다. 그냥 갈 순 없잖아. 의지의 한국인 인데 합석해서 네팔의 롯지에서 따끈한 동지애를 느끼며 같이 술잔을 나누었다. 집 떠난 외국에서 만난 동포애는 남다르다.


롯지 2층에서 보는 풍경은 한 폭의 풍경화 같다. 어디 외갓집으로 온 느낌은 나만의 감성인가. 아래층에서는 오늘 생일을 맞은 분이 있는지 "Happy Birthday" 축가가 흘러나온다. 다들 트레킹 첫날이라 설렘이 큰 첫날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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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이 좋은 Dipak 롯지와 침실
길을 비질하는 어르신 아침마다 하는 일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