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리구라스의 향연 고레파니

짜르디 짜르디! 비스타리 비스타리!

by 산달림

티르케둥가 마을의 아침은 산새들의 경쾌한 노랫소리로 시작한다. 오랜만에 맛보는 맑은 공기 탓인가 몸이 가볍다. 숙소 나무문을 여니 청량한 공기가 얼굴을 스친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상쾌함이다. 늘 출근시간에 쫓겨 시계를 보면서 좀 더 조금만 더 자자하고 이불을 끌어안을 때와 다르다.

부지런한 이곳 사람들은 아침 댓바람에 당나귀는 짐을 잔뜩 싣고 올라간다. 이곳의 물건 운송방법은 당나귀의 등에 의지해 살아간다. 롯지에서 필요한 생필품에는 당나귀의 수고로움이 있다. 마부가 7~8마리의 당난귀를 몰고 있다. 목에 걸린 방울소리가 댕그랑 댕그랑 소리를 울리며 산속으로 사라진다. 이곳의 위도가 남쪽 지방 아열대 지방이라 온화한 기후다. 고도를 높여 위로 올라가면서 점점 추워진다.


히말라야 롯지의 모습


트레킹 중에 계속 만나는 숙소는 롯지라 하며 지붕은 돌판이나 합판으로 덮고 기둥은 벽돌로 쌓지만 방 사이는 합판 한 장으로 막아 놓아 옆방의 소리도 다 들린다. 작은 방에는 나무침대 2~3개를 놓아둔 헛간 수준이다. 네팔의 오지에 호텔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추위를 막아주는 거처가 있어 트레킹이 가능하다. 이곳을 여행하려면 아무리 돈 많은 부자라도 롯지에서 지내면서 잠을 자고 추위를 피해야 한다.


산 위로 생필품을 실어 나르는 당나귀와 마부


하루의 시작이다. 다음 마을인 울레리로 가는 길에는 깊은 계곡을 가로지르는 쇠줄로 된 출렁다리를 건넌다. 산이 높은 만큼 계곡도 까마득할 정도로 엄청 깊다. 계곡 사이에 출렁다리가 없다면 갈 수 없는 곳이다. 여기서부터 '마의 3,000계단'을 올라야 한다. 해발 1,540m에서 2,200m 울레리 마을까지 480m 높이는 계단길이다. 이 구간이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첫 번째 난코스다. 히말라야의 길은 트레커를 위해 만든 길은 아니다. 그들이 살면서 마을과 마을을 왕내하던 사람 냄새, 흙냄새, 당나귀들의 냄새가 베여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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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레리 마을로 들어 가는 출렁다리(좌), 오름 오름 3,000개의 계단(우)


뒤에서 오는 포터가 "비스타리! 비스타리!" 한다. "천천히! 천천히!" 쉬어 가자는 네팔어다. 한국 트레커들은 짧은 휴식 후 네팔어로 "짜르디! 짜르디!"를 외치며 앞서 가면 아직 영혼이 따라오지 못했다며 영혼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비스타리! 비스타리!" 를 외친다. 고산에서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한국에서 처럼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 있어 속전속결로 해치우려면 고산증 걸리기 십상이다. 여기까지 와서 서두를 일은 없다. 영혼을 살찌우는 여유를 가져 본다. 그래 여긴 "비스타리! 비스타리!"다. 마의 '3,000계단'도 힘들면 퍼질러 앉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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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쉬면서 여물을 먹고 있는 당나귀(좌), 집안 일을 하시는 히말라야 아주머니(우)


산속 마을의 집은 대문이 없다. 집 앞에 대나무 막대기를 하나 가로로 걸쳐 놓으면 그게 대문이다. "주인 없음! 들어오지 마세요."다. 척박한 땅에 살지만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얼굴에는 천사의 미소가 더해져 있다. 아랫 울레리를 지나 윗 울레리에서 점심식사를 주문했다. 네팔의 정식인 달밧이 식판에 담아 나온다. 넉넉한 식사에 절로 군침이 돈다. 주변 풍경에 취해 네팔식 막걸리인 창을 주문했다. 조나 쌀을 발효해 만든 술로 한국식 막걸리다. 누룩 냄새가 나는 게 막걸리와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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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판으로 먹는 네팔 정식인 달밧(좌), 이곳의 막걸리 창(우)


네팔의 4~5월은 랄리구라스가 붉은색으로 온산을 물들인다. 돌계단을 벗어나면 수목이 울창한 밀림 속으로 들어간다. 그 길에는 네팔의 국화인 랄리구라스가 흐드러지게 활짝 폈다. 꽃 한 송이는 진달래나 철쭉 같은 모양을 하고 있지만 다발로 피어나기에 멀리서 보면 흡사 부케 같이 꽃다발로 보인다. 꽃말은 '위엄, 존엄'이다. 그래서일까? 이 꽃을 보면 구르카족이 떠 오른다. 2018년 싱가포르 북미회담 때 경호를 한 부대가 세계에서 가장 용맹하다는 네팔의 구르카 부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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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홍색 내팔의 국화 랄리구라스(좌), 진달래를 닮은 랄리구라스(우)


숲 속을 벗어나면 낭게탄티 마을이다. 제법 큰 롯지가 있는 마을로 기념품점과 식당, 숙소가 있다. 여기서 쉬어 간다. 밀림 같은 숲 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땀을 씻어 준다. 발걸음은 무겁지만 마음은 새털처럼 가볍다.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말들의 쉼터란 고레파니 마을


이제 오늘의 목적지인 고레파니다. 영어와 네팔어로 환영한다는 노란색 사각기둥 아치를 지나면 당나귀들이 이곳에 쉬고 있다. 그들도 오늘의 임무를 다하고 쉬고 있다. 고레파니의 고레는 말을, 파니는 물을 뜻한다. 말이 물을 마시며 쉬는 곳으로 우리로 말하면 고갯마루 주막쯤 되는 곳이다. 이곳도 아랫마을과 윗마을로 나뉜다. 내일 새벽에 최고의 일출 명소인 푼힐로 오르기 위해서는 윗마을로 올라간다. 산등성이라 고산의 찬바람이 옷 속으로 파고들어 몸을 움츠리게 한다. 롯지로 들어가니 난롯불을 피워 놓았다. 먼저 올라 온 트레커 틈에 끼여 따끈하고 달콤한 짜이 한잔으로 몸을 녹이며 난로가에 앉았다. 아랫마을과는 사뭇 다른 한겨울 옷차림이다.


내일 푼힐의 일출을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함석지붕 위로 떨어지는 기관총 쏘는듯한 '따다다'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잠결에 들린다. 급변하는 이곳 날씨에 우박이 내리는 소리다. 내일 푼힐의 아름다운 일출을 기대하며 다시 침낭을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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