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는 옷의 또 다른 재질이다

패션에서 옳고 그름이 존재할까?

by 무스꾜

발렌티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한 팟캐스트에 pontelle hole socks와 플랫 슈즈를 신고 등장했다. 구멍이 송송 뚫린 코바늘 양말과 둥근 앞코의 슈즈는 흔히 “어린아이의 것”이라 불린다. 그러나 그 조합이 그의 몸 위에 있을 때, 누구도 그것을 유치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미켈레는 그 ‘어린 것’의 상징을 단순히 복제하지 않는다. 그는 그것을 인용하고, 해체하고, 다시 엮는다. 미성숙함을 흉내내는 대신, 그 시절의 순수함을 하나의 질감으로 다룬다. 그래서 그의 양말과 신발은 ‘귀여움’이 아니라 ‘의식’으로 읽힌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최근 폭발적으로 확산된 폴댄스 또한 같은 궤도 위에 있다. 통굽에 슈레이스가 감긴 신발, 이른바 stripper’s heels는 한때 특정 공간의 은유였다. 하지만 지금, 그 신발은 유연성과 근력의 상징이 되었다. 그 위에서 춤추는 사람들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몸의 선과 중력을 거스르는 기술을, 하나의 스포츠로 수행한다. 유혹이라는 기호를 스스로 통제하며, 그 시선을 다시 되돌려준다.


두 경우 모두, 핵심은 옷이나 신발이 아니다. 그것을 ‘어떤 태도로 입는가’다. 같은 아이템도 누가, 어떤 의식으로, 어떤 시선 아래서 입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메시지를 발산한다. 미켈레의 발레슈즈와 폴댄서의 하이힐은 모두 “금기였던 상징”을 입은 사례지만, 그 위에 얹힌 태도가 완전히 다르다. 하나는 퇴행이 아닌 회고로, 또 하나는 대상화가 아닌 주체화로 작동한다.


패션은 결국 태도의 예술이다. 그 옷을 입는 순간, 우리는 그 옷의 과거를 어떻게 다룰지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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