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처리의 효율성은 현대 사회에서 거부할 수 없는 미덕이다. 주어진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고, 속도가 곧 경쟁력인 세상에서 빠른 판단과 군더더기 없는 진행은 스마트한 삶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나 역시 그랬다. 매일 아침 전력 질주를 시작하며, 누구보다 빠르게 업무를 끝내고 정시 퇴근의 문을 열 때마다 프로다운 승리감을 맛보았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퇴근길 지옥철에 실려 가는 나의 너덜너덜해진 실루엣을 보며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나는 정말 효율적으로 살고 있는가?”
퇴근 후의 나는 대체로 무력한 편이다. 낮 동안 모든 에너지를 증발시키듯 쏟아부은 탓에 집으로 돌아오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따뜻한 저녁 식사조차 고된 노동처럼 느껴지는 밤. 회사에서는 ‘일 잘하는 사람’이었을지 몰라도, 하루 24시간을 통틀어 본 ‘나’라는 인간의 삶은 처참하게 비효율적이었다. 8시간의 성과를 위해 나머지 16시간의 삶을 마비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삶을 마라톤에 비유하면서도, 매일의 일상은 100m 단거리 선수처럼 산다. 중간에 멈춰 서서 숨을 고르는 시간은 ‘비효율’이라 치부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하지만 연료를 끝까지 바닥내며 달리는 차는 머지않아 엔진이 타버리기 마련이다. 단기적인 결과값에만 몰두하는 효율은, 사실 가장 빠르게 나를 파괴하는 ‘독’일지도 모른다.
진정한 의미의 효율은 단순히 속도에 있지 않다. 그것은 결과의 이면에 있는 ‘나’라는 자원을 지속 가능하게 관리하는 능력에 가깝다. 완주한 뒤에도 나 자신을 돌보고, 사랑하는 이와 대화하며, 내일의 설렘을 준비할 수 있는 에너지를 남겨두는 것. 그것이야말로 삶이라는 긴 여정에서 발휘해야 할 고차원적인 효율성이다.
또한, 우리는 한 번에 최선을 골라내는 ‘통찰력’을 갈구하며 시간을 아끼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선구안은 수많은 ‘비효율적 경험’ 속에서 태어난다. 삶의 정답을 단번에 찍어내려는 시도는 효율이 아니라 요행이다. 나에게 맞는 것을 선별해내는 힘은, 아이러니하게도 수많은 '비효율적인 시도'와 '쓸데없어 보이는 시간'들을 통과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훈장이다.
너무 빠른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효율을 강요하지만, 때로는 조금 느리게 걷는 것이 목적지에 가장 온전하게 도착하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오늘 하루, 당신은 전력 질주 끝에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이제는 결과값이 아닌 ‘나의 상태’를 지표로 삼는, 새로운 효율성을 연습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