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일하는 영리함이 부럽지 않은 이유

by 바람

내가 소속된 조직에는 유독 '연어'가 많다. 거친 물살을 헤치고 나갔던 이들이 다시 고향 같은 이곳으로 돌아와 재입사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인력이 급히 필요한 프로젝트에 과거 함께했던 동료 한 분이 투입되었다. 평소 임원진과 꾸준히 안부를 주고받던 그의 복귀는 가뭄의 단비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이전의 연어들과는 결이 달랐다. 그는 정규직 재입사가 아닌 '단기 아르바이트'라는 임시직이었다. 프로젝트가 안정화 되면서 정규직 제안도 있었으나, 거절했다. "이제 야근하며 책임져야 하는 삶은 힘들어서 못 하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주말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프로젝트에 몰두하던 내 마음 한구석에 묘한 파동이 일었다. '저 사람의 눈에 지금의 내 모습은 얼마나 미련해 보일까.' 누군가는 간절히 바라는 '정규직'이라는 울타리를 스스로 걷어차고, 오직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예쁜 조각들만 골라 담는 그의 모습이 마냥 반갑지는 않았다.

임시직이라는 명분으로 본인이 선을 그어둔 영역 안의 일만 수용했다. 하지만 조직의 일이라는 것이 어디 칼로 물 베듯 나누어지던가. 그가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거절한 모나고 날카로운 조각들은, 결국 울타리 안에 남겨진 정규직들의 손에 쥐어졌다. 정규직이란 때로 내가 하기 싫은 일, 심지어 내 일이 아닌 것까지도 '우리'라는 이름 아래 짊어져야 하는 숙명을 지닌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의 선택을 비난할 수는 없다. 개인의 삶을 보호하려는 그의 방식은 요즘 시대의 영리한 생존 전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가 부럽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자처한 '임시'라는 방패가 조금은 서글프게 느껴졌다.


책임이란 때로 발목을 잡는 족쇄 같지만, 동시에 나를 이 삶에 단단히 뿌리 내리게 하는 닻이기도 하다. 닻을 올리고 수면 위만 살짝 치고 나가는 배는 가볍고 자유로워 보일지언정, 거센 폭풍우를 뚫고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의 벅찬 성취감은 알지 못한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이방인의 위치에 가두는 삶의 끝에는, 아마도 진정한 보람이나 깊이 있는 만족감은 자리 잡기 어려울 것이다.


내가 야근을 하고 때로는 하기 싫은 일에 부딪치며 힘겨울지라도 적어도 내 삶의 무게를 남에게 떠넘기며 가벼워지기를 선택하고 싶지는 않다.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올라와 기어이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연어처럼, 이 '미련한 책임감'이야말로 내가 이곳에서 '임시'가 아닌 '진짜'로 살아가고 있다는 가장 뜨거운 증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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