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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골 샌님 Nov 27. 2021

기적, 삶으로의 초대

아주 오래된 영화 <기적>이 가물가물 떠올랐다.

 캐롤 베이커가 너무나 청순한 수녀로 나왔던 영화 <기적(1959)>이 떠오르면 피식 헛웃음이 나곤 한다. 영화와 상관없이 사연 많은 개인사를 겪으며 스스로 영화 속 비련의 여주인공 마냥 삶을 표현하며 묘한 쾌감을 느끼던 때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떠난다고 떠들어댔다. 부모, 형제, 이성, 심지어 짝사랑까지도.... 가혹한  운명이라고 동정표를 얻어 사랑하는 사람들을 붙잡으려 했던 건지.  그런데 내 그 주접이 삶의 틀에 박혔다. 마치 영화 , <기적>의 여주인공인 캐롤 베이커의 인생이 이 영화에 발목이 잡혀 역할 변신에 실패했던 것처럼. 기적처럼 유명세를 탔지만 그 때문에 굴레에 갇힌 운명이랄까. 기적은  어느새 떠나버린 기차 기적 소리처럼 멀어졌다.  


 사실 여배우 <캐롤 베이커>를 거론하자면 <기적>으로 시작하여 <기적>으로 끝을 맺어야 할 정도로 그녀가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이다. <기적> 이전이나 이후에도 이렇다 할 히트작이 없고, <기적>에서의 이미지가 관객들의 뇌리에 워낙 강하게 남아있어 연기자로서 변신하기가 힘들었다고 그녀가 자신의 다큐멘터리에서 말한 바 있다.  여하간, 케롤베이커가 수녀 테레사로 나온 그  영화에서 수녀원을 나온 그녀가  사랑한 남자들은 모두가 죽는다. 그래서 그녀는 사랑을 두려워하고 악몽에 시달린다. 영화 속 전직 수녀 테레사는  소위 지질히 도 팔자 드센 여자였다.


영화 <기적>은 부상당한 장교 마이클(로져 무어)이  수녀 테레사와 금지된 사랑에 빠진다. 다분 신파적인 요소가 가미된 이야기는, 신을 버리고 마이클을 찾아 나선 후 그가 전사했는 소식을  들은 그녀는 집시, 투우사 등과 사랑에 빠지는 인생행로가 그려진다. 내 어린 시절 tv에서 토요일 저녁 명화극장에서 방영되는  영화를 보다 후반부 죽은 줄 알았던 마이클을 테레사가 마차를 타고 가며 발견하는 순간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녀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근데 진짜 기적은 그녀가 방황을 끝내고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그때 마리아상의 현현을 통해 일어났던 거 같은데....... 결국 다시 수녀가 되는 이야기였다.   지금 아무리 생각해봐서 대체 뭐가 진짜 기적인지.... 죽은 줄 알았던 마이클과 테러 사의 극적 만남? 그녀와 함께 마을을 떠났던 마리아상이 다시 돌아와 사랑의 눈물처럼 기근에 시달리는 마을에 단비를 내리는 기적....


  세인들 사고로는 상상이 안 되는 놀라운 일이 기적이던가....  내가 생이 서러워질 때 떠오르는 이 영화 <기적>은 그 제목 때문일지 모른다. 그리고 아랫목 이불속에서 뒹굴며 엄마와 같이 본 영화여서인지도 모른다.   


    내 나이 20년대 중반 무렵,  철이 들만한 나이인데 철이 덜 들었던지 내가 사랑하는, 사랑해야 할 사람들은 내 곁을 너무 빨리 떠난다고 서러워하곤 했다. 가족이란 단어에 너무나 무관심했던 아버지, 반생을 뭔가 홀린 듯 열정과 새로움의 추구라는 이유를 대며 방랑하던 아버지, 그런  남편 덕에 서너 배는 족히 더 부담을 안고 살아간 내 어머니의 아버지라는 이름 석자에 내리꽂는 서늘한 냉담 앞에 아버지란 단어를 너무 빨리 잃어버린 나, 그리고 띠 동갑  언니의 외국으로의 출가, 그러나 이런 것으로 삶의  외로움을 알진 못했다. 어린 내게는 어머니라는 단어가 모든 걸 채워줬으니까.

    내 나이 25살. 소낙비 오락가락던 7월 내 무릎에 때 이른 가랑잎처럼 고개를 묻고 간 내 어머니,

오랜 병에 심장 박동마저 너무 가녀리게 멈춰버린 그때,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 남은 나를 실감했었다. 만남은 헤어짐을 전제한다는 한용운의 시구절보다  캐롤 베이커가 먼저 떠올랐었다. 케롤 베이커도 어릴 때부터 가정의 불화를 쓰라리게 겪으며 홀어머니의 손에서 자라났단 그녀 이력에 동화됐던 건 아니었는데....(얼마 전 그녀의 전기를 찾아보다 알았다. )  


 평탄한 삶은 기적을 구하지 않는다.   어머니가 병으로 의식불명 상태일태 예배당에서 두 손을 모아 바짝 깍지를 끼었다. 평일 한 낮 예배당에서 띄엄띄엄 앉긴 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고개 숙여 기도를 했다. 누가 더 간절한지 경쟁이라도 하듯, ‘주여........ 주여........’ 쉼 없이 외치는 소리에 동참했다. 하지만  기적은 감당할 수 있는 상황에선 일어나지 않는지, 현실을 감당해 내는 내게 기적은 없었다. 결국 세상 순리를 따라 모든 일이 흘러갔다.   기적을 바란다는 것은 현실과 인간의 법칙이 파행을 일으키는 것이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신의 영역과 소통하는 것 그래서 우연이나 요행을 기적이라 하지 않는 것은 간절함이 배제되어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인생은 굴곡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은 엄마의 죽음을 맞닥뜨린 순간이었다. 심전도에는 전혀 굴곡이 나타나지 않았다. 살아간다는 증거의 굴곡. 일자로 죽 그어진 선처럼 굴곡 없이 산다는 것은 죽음과 같은 삶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살아온 것은 기적일지 모른다. 25년 동안 나를 강하게 그러나 모나게 살지 않게 채찍질한 내 어머니, 어머니 돌아가시고 100일만 난 사고로 실어증에 마비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돌보느라 아이까지 유산해가며, 병원 비대고 이른 새벽부터 재활병원으로 나를 출퇴근시킨 언니, 언필도 못 쥐는 상태로 무작정 입학허가해달라며 달려들던 나를 받아준 대학원 교수님들. 기적은 간절함, 절실함의 필요를 충족할 때 일어나는 바로 그것, 살아가 보겠다는 의지가 바로 기적 아닐까....


 나를 떠난다고 서러워하기보다 이젠 무엇보다 지켜야 할 건강과 인연, 또  내게 찾아오는 새로운 사람, 생각과의 만남을 기다려본다. 아주 간절히..... 또 한 번의 기적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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