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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골 샌님 Jan 03. 2022

암환자가 벼슬은 아닙니다만...

따스한 공감이 절실할 때  

새해가 됐으니, 암 진단을 받고 햇수로는 벌써 오 년이 되었다. 그동안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대외적 사회 활동을 완전히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먹고살려면 전혀 일을 안 할 순 없으니 대부분 재택으로 일을 하고 수입은 확 줄었지만 그만큼 나가는 돈도 줄어들고 여러 가지 정부의  중증환자 혜택도  있어 그럭저럭 살만은 하다. 내 몸 걱정하느라 늘 스트레스였던 사회활동영역에도 연연 하지 않게 되고 매해  학교마다 다른 이력서를 쓰고, 논문과 강의 활동 계획서를 몇 날 며칠 머리를 쥐어짜 써 이 학교 저 학교 강의 자리 하나 더 얻으려 발버둥 치는 것에서 자유로와졌다. 건강을 잃으면 사회적 성공도 한순간에 무너질 부질없는 것이란 체험은 그야말로 소확행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확실히 돈이 없어도 마음의 욕망을 비우니 삶이 여유로와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실 암이 아니더라도 나이 오십이 면 누구나 퇴직과 노후 대비로 마음이 뒤숭숭한 나이이니 나만 도태되어 이렇다고 신세 한탄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때때로 이대로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머물러 있다는 것에 불안감이 밀려든다. 그것은 나는 왜 이렇게밖에 살지 못했지 하는 자책과 반대로 내가 게으름을 좀 피우긴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잖아 그래도 안된 건 내 탓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며 세상에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아예 몸이 너무 아프면 아무 생각도 안 하겠지만 적당히 아플 때 생기는 온갖 잡생각에 마음이 자꾸 요동을 친다.  

  

 경구 항암 치료라고 처음엔 좀 만만하게 봤는데 3차 항암제 투약이  시작되자 슬슬 여러 부작용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심하진 않지만 메스꺼움과 두통이 자주 오고 머리카락도 평소보다 조금 더 빠지고 몸이 몸살처럼 자주 아프고 기력이 딸리니 마음이 알 수 없이 불안하다. 그러다 보니 매사가 귀찮고 짜증이 나서 주변에 이유 없이 신경질을 내기도 한다. 안부를 묻는 언니나 친구들에게 한바탕 짜증을 내고 나면 또 내가 왜 그랬나 싶어 후회에 이불 킥하며 밤잠을 설친다. 피로, 무기력, 우울증 증상이 나타난다고 항암제 복용 안내 책자에 쓰여있더니 3개월째가 되니 부작용이 발현을 하는 듯하다. 어쩌면 이도 나의 괴팍스러운 성격에 대한 핑계이지만....

"네가 혼자서  말할 사람도 없고, 할 일도 없으니 괜히 사람들한테 시비를 거는구나. 암 걸린 게  벼슬이냐. 나야 동생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남한테는 이렇게 지랄 치면 누가 좋아하냐."

  언니 말처럼 걱정하여 전화 주는 친구들에게 짜증을 내는 경우가 있는 데 생각해보면 내 속에는 그런 친구들의 전화가 반갑고 고마우면서도 왜 더 신경을 안 써주냐는 투정을 짜증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전화보다 문자 안부로 대신하는 친구도 생겨났다.

친구 A: 밥 먹기 싫으면 죽이라도 먹고 힘내라, 힘.

나: 기운이 없는데 어디서 힘이 나냐. 나 죽 싫어하는 거 알잖아.  

친구 B: 그런 생각 말고 암과 잘 싸워 이겨내나야지.

나: 내가 무슨 전사도 아니고.... 내가 맘먹으면  무찔러질 존재면 좋겠다.   

어린아이 투정도 이보단 유치하지 않을 텐데.....


그런데 신년 안부 문자로 같은 친구들로부터 또  위로를 받았다.  

친구 A: 여태 어떤 어려움도 잘 이겨냈으니 암도 잘 이겨낼 거야. 열심히 사는 네가 내 친구라서 고맙다.

친구 B: 내가 항상 널 위해 새벽기도 한다.  

친구 C:  짜증 날 때 전화해. 내가 해결사는 못돼도 그래도 열심히 듣는 건 잘하잖니.  너는 남 탓하지 않고 자책하는 짜증이라 들을 만 해.  

고맙고 가슴 뭉클했다. 사실 전화나 문자만으로도 반갑다. 혼자 살다 보니 사람이 그리워질 때가 어설프게 아픈 요즘 같은 때다. 그러다 보니 건강한 친구들이 내 맘 몰라 준다고 투정과 서러움으로 감정이 폭발하곤 한다. 그런데 내 아픔을 공감해주는 말에는 활력이 생긴다. 너는 너 나는 나가 아닌 함께라는 생각이 들어서 인듯하다. 얼마전 영화를 보다 이런 대사가 나왔다. "당신은 날 이해 하지만 공감하지는 못하는 군요." 이해하는 것과 공감의 차이는 함께 공유하는 감정의 유무에서 오는 듯하다. 공감을 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건 내가 암을 잘 견디고 잘 살고 있다는 증거란 생각이 든다.

최근 유방암 환자 200여명을 대상으로 투병 기간 중 가족이나 주변인들로부터 많이 듣는 위로의 말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조사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

비혼 독신  암 환자가 진단과 치료 그리고 암 전이를 극복하며 새로운 일상으로 복귀하눈 과정을  생생하게 문학적으로 재구성한 산문집 [쿠마이의 무녀 ]가 출판되었습니다


표 출처: http://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87449

https://brunch.co.kr/publish/book/6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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