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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골 샌님 Nov 22. 2021

<다시 보기>를 다시 보다

나의 어설픈 글쓰기를 되돌아보다.

 일본에 사는 조카가 이모가 단편소설로 문학상을 받았다고 하자 서툰 한국어지만 사전까지 동원하며 열심히 읽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내게 한 이야기는 '이모가 아는 일본 사람, 동네 다 동원됐네"라고 짤막하게 평했다. 나는 속으로 이래서 가족이나 지인들에게는 내 작품을 보여주기가 싫은 거야라고 생각했다. 내 글쓰기가 경험과 주변에서 나왔으니 자신들이 아는 혹은 함께한 나의 경험이 글 속에 보이고 본능적으로 찾아내게 되니 말이다. 그러다 조카가 지나가는 말인 척 한마디를 던졌다.

 "왜 하필 남자를 일본 대지진 희생자로 만든 거야? 한국 사람들이 세월호에 트라우마를 갖듯 그거 일본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트라우마인데......"

조카의 말에 나는 한동한 멍해졌다. 한국인에게 트라우마로 남은 세월호 침몰은 먹먹한 마음이 앞서 감히 이야기조차 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남의 나라 일이라고 엄청난 희생자가 난 사건을 내가 쉽게 다룬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도 동일본 대지진은 자연재해이고 세월호 침몰은 인재라 접근부터 달라야 한다고 반박하려다 나는 희생자들과 살아남은 사람들의 고통을 설명하고 이해하려는 내 태도를 반성했다.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땅에서 살며 교육받은 조카는 늘 자신의 정체성은 일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21세기가 시작되고도 아직 여전히 일본에서 재일 한국인은 여러모로 차별받던 시절, 일본인 조부모와 아버지에 둘러싸여 일본의 전통을 배우고 따라 산 조카는 이모는 외국인 자신은 일본이라는 말을 곧잘 하였다. 나는 엄마가 한국인이라서 받는 차별을 받게 하지 않으려 한국말이나 전통 교육을 등한시하는 언니의 교육방식을 그저 바라봤다. 그런데 한류로 한국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선지, 피는 못 속인다고 자신이 반은 한국인이라는 자각을 한건지 대학에 들어가면서 조카는 "엄마는 내게 왜 한국어를 안 가르쳐준 거야?"라며 스스로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늘 엄마의 나라라고 말하지만 조카는 어쩌면 표현하지 못하고 정체성에 대한 갈등을  겪은 모양이다. 대학원에서 법제사를 전공하며 특히 한국 식민지 시대의  법률 제정과 식민통치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일본도 결코 바꿀 수  없던 조선의 관습에 대해 논문으로 쓰며, 이제는 나보다 더 한국의 역사를 더 잘 아는 듯한데 한국과 일본의 이해관계에서 중심을 잡으려는 노력이 엿보이기도 한다. 이런 조카가 동일본 대지진을 한국의 세월호 침몰과 견주어 이야기하자 나는 상당히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한국을 얕잡아보는 일본의 정치와 우익의 행태를 비판하고 불매 운동에도 나름 적극 동참하면서 나 자신이 일본이라는 나라를 너무 쉽게 다루려 하지 않았는지 생각했다.


  모든 것이 힘들었을 때 나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늘 찾다 글쓰기를 생각하고 타인도 읽을 만한 글을 써 직업으로 하고픈 욕심에 공모전에  출품해 나 자신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상당한 상금의 소설 공모전의 마감이 이틀도 채 안되게 남아 있었고 그래서  <다시 보기>란 단편은 잠도 안 자고 24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완성했다. 지원서에 빠진 부분이 있다며 슬쩍  본선 진출했다는 귀띔 연락을 출판사로부터 받았지만 오타와 서사의 부실함으로 고배를 마셨다. 그리고 다시 장애인 문학 공모전 소식을 뒤늦게 발견하고 내용을 대폭 줄이고 오타만 고쳐 출품했다.  핑계를 대자면 손이 불편한 내가 오타를 고치며 다시 오타투성이를 만들어 출품했다. 그래서 더욱 조카의 내용에 대한 지적에 뜨끔했다.  이 소설을 쓰며 나는 장수 채우기에 급급했고 유부녀의 외도로 이야기가 흘러가지 않게 하려면 남자 주인공의 죽음이 답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떠오른 것이 동일본 대지진이었다.  그리고 엄청난 오타에도 불구하고 은상을 수상했는데 아마도 장애인문학상이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이후 수상작이라 어디에 다시 낼 수도 없어 잊고 있다가  암 치료로 시간적 여유와 브런치를 시작한 덕에 내내 가슴에 남아 있던 이 소설을 다시 꺼내 읽었다. 그리고 나누어 개재를 하며 든 생각은 내 글쓰기 필요에 의한 죽음이었지만 나는 결코 쉽게 처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급하게 썼지만 나는 젊은 예술가의 안타까움 죽음과 그 덕에 깨닫는 삶의 지속의 의미를 드러내려 했다. 짧은 시간 썼지만 쉽게 쓰지 않았음을 다시 확인 했다. 자연재해든 인재든 불가항력인 힘을 수용하고 견디는 것은 살아남 자들의 몫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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