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창골 샌님 Nov 22. 2021

다시 보기 4부 완결

그리움이 된 회한 

4. 허공을 채우던 그리움을 만나다. 


   여행가방을 들고 복잡한 신주쿠를 걸어 다니자니 부담스럽긴 하지만 상인은 류우끼와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 그렇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의  근황을 알게 될 수도 있다는 기대에 한국에서의 불안함은 사라지고 기대가 차올랐다. 그건 어쩌면 해외라는 환경이 주는 떠나온 홀가분함, 해방감이 짐의 부담을 덜어 주었는지 모른다. 

  이마에 땀이 귓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나 상인은 한기 대신 더욱 열기를 내고 있었다. 복잡한 신주쿠를 얼마 이동한 것 같지도 않은데 거리는 한결 스산해졌다. 몇 층 일지 도저히 가늠이 안 되는 건물이 드넓은 공원을 지나자 보였다. 어찌 보면 배가 반만 비스듬히 육지로 침범한 모양새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커다란 부리를 가진 독수리 머리 같기도 했다.  오층까지 눈짐작으로 세어 보았지만 끝의 뾰족하게 굽은 곳에 사무실 공간이 얼마간이라도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건물의 정문 앞에서 묵묵히 앞장서 걷던 가이드가 목적지 도착을 알리며 찾는 이의 이름을 물었다. 상인은 명함을 건넸다.  가이드는 안내 데스크로 다가가 상인이 전해준 류우끼의 12년 전 명함을 내밀며 사람을 찾아 서울에서 온 분이라며 상인을 지목했다.  그리고 일어를 모르는 상인이 짐작컨대  사오 년 전쯤 회사에서 그만뒀다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제야 상인은 이국에 들어선 느낌이 들었다. 사방팔방으로 교차하는 건널목 외에 일어 간판이 더 많다는 것 빼고는 같은 동양인들이 사는 나라는 낯선 흥분 감을 주지는 않았다.  안내원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그 사이 안내원을 응시하는 상인과 달리 사진작가 지망생인 듯 한 가이드는 여기저기를 아기들이 도리 짓 하듯 고개를 돌려가며 열심히  살피고 있었다. 

   전화를 끊은 안내원이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알아들지도 못할 말을 상인은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이었다. 

 “개인적 사항이라 인적 사항을 알려주기가 쉽지 않다는데 혹시 류우끼 오하라란 분과 같이 일했던 동료가 있는지 알아본 다네요.”

 가이드는 한국어는 유창하지 않았지만 또박또박 국어책을 열심히 끓어 읽기 하듯 말했다.  10여분 후 안내 데스크의 전화벨이 울렸다. 안내원이 두 사람에게 로비 한쪽을 가리키며 누군가 내려 올 거라며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다.   상인이 아는 얼마 안 되는 일어 단어가 그녀를 위해 총동원된 듯 안내 데스크의 직원이 류 우끼 오하라 상의 친구가  잠시 후 내려올 거라고 덧붙여하는 말을 용케 알아들었다. 그러나 알아들었다는 뿌듯함은 곧 사라졌다.   상인에게 잠시라는 시간이 억겁을 보낸 것처럼 초조하게 지나갔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곳을 무수히 지나쳤을 류우끼를 떠올리자 그녀는 다시 그에게 다가선 것처럼 느껴졌다.      


 길쭉하고 긴 이 시대 마지막 히피족 같던 류우끼와 전혀 다른 건장한 체격에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정상인 상이신가요?”

상인은 일어서 그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불쑥 죄송합니다.  하지만 연락할 곳을 찾질 못해서.”

 상인이 짧게 말을 했는데 가이드는 더 길게 이것저것 덧붙여 말하는 것 같았다. 초조감에 공항 리무진 버스 안에서 그에게 상인이 늘어놨던 말을 덧붙여 설명하는 것 같았다. 

“제가 류우끼에게 상인 씨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대신 선물을 같이 고르기도 했었는데 류우끼가 내 얘기는 안 했나 보군요?”

  상인은 야마모토 준이치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혹시 류우끼가 결혼을 해서 저와 연락하기가 난감한 상황인가요?”

 상인의 물음에 그는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급격히 어두운 표정이 되어 잠시 머뭇거렸다. 

“여기보다 나가면 분위기 좋고 조용한 커피숍이 있는데 거기로 가시죠.”

 야마모토는 말을 끝내자 바로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혹시 내가  내내 류우끼를 홀대한다고 느꼈나?  정말 이젠 나와 연락을 끊고 싶다는 이야기를 1층 로비로 내려오기 전 류우끼에게 들었나?’ 온갖 나쁜 상상들이 상인에게  몰려들었다. 

  커피숍은 한산했다. 통 큰 유리창으로 공원을 내다볼 수 있어 실제보다 넓어 보였다. 세 사람은 창가에 앉았다. 자리를 잡고 앉자 그제서 상인은  선물을 좀 사 올걸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공항 면세점에서라도 준비를 할 수 있었지만,  여기저기 묻고 다니려면 분명 신세 아니 민폐를 끼칠게 분명한데……. 탈출과 류 우끼에게만 집중됐던 마음은 상인에게 다른 아무런 생각도 허용하질 않았었다. 

   자리가 비좁은 듯 자세를 몇 번이나 고쳐않는 아마모토는 준형과 닮아 이었다. 준형도 처음 수혜를 만나는 자리에서 자꾸 자리를 고쳐않아 상인의 신경이 거슬렸는데……. 상인은 어쩌면 그 불안함 모습에 수혜가 처음 준형과의 결혼에 시근퉁한 반응을 보인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이 메일을 이 년 전 2011년 2월 14일에 받았고, 아참,  전화통화도 했었어요. 그리고 그해 3월 14일 화이트 데이에 제가 전화를 했는데 안 받았어요. 그땐 바쁘거나 데이트 중인가 그랬는데. 그 뒤로 연락이 끊겼네요”

상인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는 자꾸 류우끼 소식을 미루는 야마모토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준형이 동생의 빚보증 떠안아야 했을 때처럼 그는 말을 미루고 이었다. 


“2011년 3월 일본이 혼란스러웠죠”

그가 드디어 말을 시작했다. 무심한 방관자이자 단순 통역 안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던 가이드의 얼굴이 시뻘게지며 굳었다. 

“네?” 상인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렇게 반문하는 순간순간 수혜가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나와 있던 조카를 달래야겠다며 다급하게 돈을 빌리러 왔던 기억이 났다. 방학 내 월급 없이 지낸 삼월 중순 경 시간강사들이 최대 보릿고개를 맞을 때 수혜가 조카를 데리고 일본으로 가든지 언니를 나오게 하던지 해야겠다며 이백만 원을 빌리러 왔었는데 그때 겨우 칠십만 원을 해주었었다. 

“동일본 지진 말하는 거예요?  그때 도쿄는 괜찮았잖아요?” 상인의 목소리가 높고 날카로워졌다. 자신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마음을 도려내는 것처럼 심장이 아프고 그녀의 온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맞다. 그때도 전화를 했었는데 연결이 안 돼 길래 ……. 근데 그때는 전화 다 상태가 안 좋다고 해서…….” 그때 상인은 다 안 좋지만 유난히 상태가 나쁜 경우를 생각하진 못했다. 

“그때 류우끼가 도호쿠 센다이 출장 중이었어요. 해안가에서 사진 촬영을 하다가 한 컷이라도 더 찍겠다고 하다가 쓰나미에 휩쓸린 듯해요.”

“아, 아.”상인은 신음 소리를 냈다. 

“아, 아, 악, 어어엉…….” 상인의 울음은 점점 더 큰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이내 통곡이 되었다. 

커피숍 주인이 놀란 표정으로 서성이다 지진 이야기가 오가는 것을 알아차리고 안쓰러운 표정으로 상인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시신은 찾았어요. 방파제에 부서진 다리 철근에 깔린 채로…….”

 야마모토 역시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상인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지만 그녀는 이제는 ‘아’ 소리 조차 내지 못하고 손으로 입을 막고서 소리 없이 흐느끼고 이었다. 


   야마모토는 류우끼의 묘가 미나미 마찌다 전철역 근처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다음날이 토요일이니 함께 가 줄 수 있다는 말로 상인을 위로했다. 

    상인은 신주쿠의 호텔로 돌아와 창가에 서서 멍하니 밖을 내려다보며 밤을 지새웠다.  무수히 많은 저 사람들 속에 있어야 할 류우끼가 이젠 없다니……. 그녀는 자신의 공허를 울리던 불안감의 정체가 그리움이나 아쉬움 보다 더 한 죽음과 맞닿아 있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날이 밝자 상인은 퉁퉁 부은 얼굴을 찬물로 가라앉히며 나갈 채비를 했다. 어제 만난 야마모토는 영어가 유창했다. 상인은 어제 호텔 로비에서 가이드에게 오늘은 그냥 쉬라고 말했다. 사실 그는 여행 가이드로 필요했다기보다 통역사로 류우끼를 찾는데 필요했다. 

    신주쿠역에서 전철을 타고 시부야에서 데엔토시 선 전철로 갈아타고 이십 분을 갔다. 중간에 급행열차가 들어온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지만 야마모토는 멍하니 앉아 있는 상인을 이끌지 않았다. 

  미나미 마찌다 역은 한산해도 너무 한산했다.  전원주택이 가지각색으로 자태를 뽐내는 그곳의 행인은 대부분이 노인이었다. 

   야마모토가 역에 붙어 있는 도큐 슈퍼마켓에서 꽃을 살 수 있다고 알려줬다. 상인은 빈약하게 줄 서있는 꽃다발 사이에서 그나마 풍성한 꽃을 집어 들었다.  그곳에 작년에 돌아가신 류이끼의 할머니도 함께 안장됐다며 야마모토도 작은 꽃다발을 집어 들었다.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절 같은 곳이 있고 납골묘지가 있었다. 주택가 한가운데 묘지가 있다는 것이 낯설었지만 삶의 현장을 쫒아 기록하던 류우끼에는 잘된 듯싶었다. 그곳엔 오하라 성씨의 가족묘가 한편에 자리하고 있였다. 

  류우끼의 납골묘 앞에서 상인은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없이 서있었다. 

‘류우끼, 너무 빨리 갔어......’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눈물을 훔치는 상인의 어깨를 아마모토가 토닥였다. 

 전 세계를 누비던 자유로운 영혼이 이 좁은 납골묘를 만족할까, 상인은 쪼개진 열쇠고리를 헌화단 옆에 놓았다. 

‘이제서 내가 왔으니 지금이라도 맞춰봐!’ 

그리고 십여 년 전 받았던 그대로 그러나 어느새 누렇게 바랜 오만 엔이든 봉투를 헌화대에 올렸다가 야마모토에게 내밀었다. 

“혹시 류 우끼 어머니를 만나 뵈면 이걸  전해 주시겠어요?  아드님이 남긴 유품이라고……. ” 

상인은 혼자 남았을 어머니가 멀리서 아들의 손길이 닿았던 것을 잊지 않고 가져온 것에 위로를 받지 않을까, 혹은 더 상처가 될지 모르지만 여전히 아들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야마모토는 돈 봉투라는 걸 알고 잠시 고민했지만 상인의 설명을 듣고 받아 안주머니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그리고 이건 늦었지만 조의금으로.” 

상인은 어제저녁 가이드가 사다준 봉투에 담은 오만 엔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야마모토가 무척 난감한 표정으로 상인을 내려다봤다. 

“한국 아줌마가 돼서 그냥 한국식으로 표현하는 거예요.”라고 상인이 말하자 그는 웃으며 어머니께 같이 전하겠다며 봉투를 받아 들었다. 

  상인은  결혼 전이었다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마음을 표현했을까  생각하다 눈물이 북받쳐 올랐다.  

“나 이러고 살아!” 

상인은 이렇게 큰소리로 내뱉은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런데 다시 상인은 그렇게 자신을 좋아해 준 사람의 죽음 앞에서 자신의 생활을 운운조차도 부끄러웠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상인은 창공을 바라봤다. 여태 허공만 보고 산 그녀에게 주는 류우끼의 새해 선물 같았다. 

‘내년엔 뭘 선물해줄 거야?’ 창공을 보며 상인은 말을 걸었다. 


-끝



이 작품은 2015년 제7회 전국 장애인 문학공모전에서 은상 수상작으로 [해누리 문학 2015. VOL.7]에 실린 작품입니다. 주인공의 이름은 상임에서 상인으로 고치고 일부 내용을 수정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다시 보기 3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