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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골 샌님 Nov 21. 2021

다시 보기 3부

그리움이 된  회한 

3. 그리움의 시작은 마음 찾기였다. 



‘사랑은 쟁취하는 거야’라고 준형이 항변하면 류 우끼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사랑이 무슨 전쟁인가?’

 ‘사랑한다!  고백하고 맞아 죽은 사람은 없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라고 준형은 다시 항변을 할 것이다. 

‘표현은 서로가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만, 강요는 적대감을 잉태시켜 사랑하는 사람이 아플 수도 있다.’ 

류우끼는 다시 이렇게 부드럽게 타이를 것이다.  사랑의 성공도 객관화된 방정식으로 만들기에는 너무나 많은 변수들의 침입으로 흐지부지되기 일쑤다. 

 그때, 서른다섯의 상인은 부모, 우정, 이런 사랑 대신 열렬한 사랑이 아니 오롯이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준형이 그녀를 열렬히 갈망했다.  결혼이 사랑의 종착이 아니라 삶의 투쟁이란 걸 알았더라면, 사실 어렴풋이 인지했지만, 아버지를 벗어나는 자유가 더 크게 보이는 착시 현상만 아니었다면,  상인은 아버지를 좀 더 빨리 이해했을 거라 생각했다. 

   상인은 늘 실패하지 않으려고 계산하고 원인과 결과를 따졌다. 그러나 류우끼는 그냥 좋으니까 좋은 거였다. 그런데 문득 상인은 생각한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이 기호가 아닌 생활이 되려면…….  이상과 현실은 늘 거리를 유지한다. 가까워 지려하면 현실은 용케도 틈바구니 파고들어 틈을 벌린다. 그 틈새로 류우끼는 빠져나가고 말았다. 

‘나는 사랑에 이유를 붙여서 실패했었다. 그리고 결혼이 내 삶의 안식처라는 결론을 너무 섣부르게 내렸다.’     

“나 미워하지 말아요.”

청혼이 흐지부지되고 이 땅을  떠나는 류우끼에게 상인이 속삭였다. 조바심에 마음이 졸아들고 있는 그때 상인은 서른셋의 어린이였다. 

“전혀 밉지 않아. 그러니 그런 말 하지 마. 시원한 해결책을 전혀 못 주고 있는 내가 밉네.” 상인은  적어도 류우끼의 달콤한 그 말 덕에 유치함을 벗었다.

 “답은 전혀 안 나오고 있지만 내가 계속해보죠. 답을 유추해 낼  때까지. 사실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그리고 사랑은 움직이는 거란 말……. 그 말 맞다.     

 그렇게 상인은 갑갑하게 옭아매는 아버지를 떠나 자신의 공간을 널찍이 만들어 줄어줄 준형을 향해 떠났다. 그러나 게기에는 가난이라는 더 끔찍한 올무가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올무를 끊어낼 준비를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상인은 가방을 챙겼다. 

  류우끼는 생각만으로도 숨통이 트이게 해주는 존재였다. 이제 상인은 그 산소 호흡기를 직접 찾아 나서기로 한 것이다.  그가 상인에게 산소 투여를 거부해도 상관없다.  다만 그를 본다는 것만으로 심장이 뛰고 있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나리타로 향하는 비행기가 붕 떠오르며 귀가 먹먹해질 즈음 상인은 귀에 가해지는 압박이 자신의 생존을 입증해주는 듯 심장이 뻥 뚫다. 그와의 만남은 늘  극적이었다.      

   영국에서 다시 만난 그날도 그랬다. 남자 꽁무니 쫓아다니는 사람 마냥 약속보다 사십 분이나 일찍 도착해 서성이던 상인이 자신의 몸에 충만한 욕망과 방종의 독기를 빼려 담배를 피워 물고 내뿜을 때 연기를 고스란히 마시며 류우끼가 나타났다.  

    그가 떠나기 전 트라팔가의 넬슨 상 앞에서 만나기로 한 그날 그는 오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그날 오후 그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가 알려준 브리스톨의 비엔비로 전화를 걸어 그를 찾았다. 하지만 류우끼는 이미 체크아웃한 상태였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넬슨 상 앞에서 그를 못 보고 지나칠까 싶어 상인은 동상 받침대의 넓고 높은 턱을 낑낑거리며 올라 넬슨 상 앞에 작은 동상이 된 양 꼼짝 않고 두 시간을 더 서 기다렸다.  두 시간을 섭섭함과 오기로,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 버텼지만 사람들의 그림자기 가장 작게 직선을 이루는 정오를 자나자 걱정이 밀려들었다. 홈스테이 집에 전화를 걸어 자기를 찾는 전화가 없었는지 알아보려 했지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상인은 네 시 반 비행기라는 말을 기억하고 무작정 히드로 제 삼 터미널로 달려갔다.  히드로 공항에서 일본행 수속 데스크들을 두리번거리며 그를 찾았지만 그는 없었다. 그  넓은 곳에서 약속도 없이 원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자체가 무모한지 모른다. 그러나 그 무모함이 간절함을 품어 행운의 여신이 손을 내밀어주지는 않을까 기대를 높였다. 그러나 상인의 기대는 수포로 돌아갔다. 

   날리는 가랑비에 축축한 한기를 밀어내지 못하고 홈스테이로 돌아오며 상인은 한기를 느꼈다.  그리고 그대로 앓아누웠다. 그녀는 홈스테이 집에 눈치가 보였지만 꿋꿋하게 이틀을 침대에 누워 잠만 잤다. 돌덩이를 씹는 것 같아 삼킬 수 없는 음식물을 건너뛰고 빈속에 먹은 감기약은 이틀의 시간을 빨리도 감아 버렸다. 

   월요일 아침 가벼워진 몸으로 옥스퍼드 스트릿에 있는 어학교에 출석했다. 계단을 올라 리셉션을 지나 교실로 향할 때 트레이닝 티처 조엔이 상인을 불렀다. 그녀는 언제나 가운데 상을 강조해 불렀다. 

“쌍아임. 하이 쌍앙’” 상인은 아침부터 욕을 먹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엔이 딱지처럼 접은 쪽지를 건넸다. 

“잘생긴 남자가 쪽지를 남기고 갔어.  고속버스가 파업으로 늦어져서 한 시간 반이나 늦게 도착했대.  약속 장소에 가보니 없기에 여기를 찾아왔대. 그 남자 이름이 유끼였나?  류우끼였나? 그랬는데…….”

 그의 이름만으로  상인의 얼굴이 발갛게 생기가 올랐다.  상인 가슴이 벅차오르고 칙칙함이 사라졌다. 

“유끼? 일본어로 스노우 아냐?‘ 동양 학생들이 많다 보니 이곳의 선생들은 간단한 극동 삼국 어를 모두 할 줄 아는 것 같았다. 상인은 그가 이름을 한자로 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상인이 보기에 쓸 줄은 몰라도 대충 의미는 눈을 의미하는 한자어는 아니었다.  상인은 한자 모양새로 ’ 용기‘인가라고 추측하고 있었는데 눈이라니……. 상인은 눈, 차고 보드랍고 하얀 눈 그와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사 조엔이 틀린 거라 할지라도 그날 이후 상인은 눈이 내리는 날이면 류우끼를 그리워했다. 그렇게 그리움이 쌓이는 한겨울이 지날 무렵이면 류우끼는 선물을 보내왔다. 너무 바쁘거나 출장일 때는 이메일이라도 보내왔다. 그러면 상인의 쌓인 그리움이 녹아내렸다. 

  그녀가 결혼했다는 소식에도 변치 않고  12년을 그렇게 지속하던 그가 13년째가 되는 작년에 소식이 끊겼다. 그런데 잠시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직장일과 시댁의 빚 문제로 골치를 썩느라 스스로 찾아 연락을 해볼 생각을  못했다.  그러나 내내 13이란 숫자가 걸렸다. 열세 번째는 류우끼가 스스로 피해 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상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움이 쌓이면 간절함이 되지만 화가 발생하면 처음엔 분노에 꼬리를 내리고 자아가 숨어 버린다. 그러다 화가 쌓이면 자아가 들고일어나 몸부림을 친다. 상인은 자신이 쉴 공간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혼자 있어도 서희가 찾아대고 가족이 찾아대는 통에 곧 어렵사리 마련한 공간이 침해당해 버리곤 한다. 

    만일 류우끼와 결혼했더라면 적어도 돈 때문에 불화를 겪을 일은 없었을 텐데. 아버지의 반대만 없었어도……. 일본 남자를 만난다는 말에 상인의 아버지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발까지 동동 그르며 소리쳤었다. 

“쪽발이를 집안에 들인 순 없다. 그놈이 우리 집에 나타나는 날, 너나 그놈이 이나 두 다리로 못서 있을 줄 알아! 어딜 감히 독립 유공자 집안에 쪽발이를 들여.” 

상인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인을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저년 그놈 일본 가전에는  문밖에도 못 나가게 해!”

‘에휴,  삼십 넘은 딸 가둬서 뭐하시게. 사람만 괜찮으면 무슨 상관이래요. 수혜네 언니도 일본으로 시집가서 잘만 살더구먼.’ 

   상인 아버지가 주먹으로 베란다 창을 내려치는 소리가 났다.  탕탕 소리에 살기가 느껴졌다. 명예퇴직 후 아버지는 유난히 소리를 더 내었다.  IMF 사태 이후 대한민국의 모든 가정에서 한숨이 흘러나왔지만 상인의 집에서 늘 고함이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화를 내는 아버지를 동정심에 참을 만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정도가 심해져 일단 큰소리부터 내기 시작해 심지어 집안 살림은 물론 쓰레기 버리는 문제, 심지어 상인의 화장품까지 상관을 하고 고함을 질렀다. 상인의 오빠는 창원에 취직이 되자 떠나 버렸다.  상인은 듣다 듣다가 그러면 가장의 권위가 오히려 실추된다고 악을 쓰다 아버지에게 따귀까지 맞았다. 그 후로 상인은 아버지를 피했다. 사랑과 이해는 하지만 그저 자신의 사회적 불만을 가족을 엎어누르는 것으로 해소하려는 아버지의 방법을 참아내기는 싫었다. 

    그래서 대학원에 다니며 얻은 고액 과외 덕에 목돈이 모이면 일 년 혹은 이년을 주기로 열흘씩 한 달씩 배낭여행을  떠났다. 모든 유럽이 자신만을 위해 준비된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만의 공간에 류우끼가 들어왔다. 그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지만 청량음료 같았다.  그 톡 쏘는 맛은 중독성 강한 콜라보다는 사이다 같은 맛이 났다. 가슴이 갑갑할 때 생각이 나는......... 그러나 아버지로부터 청량음료를 금지당했다. 매일 콜라를 마시던 어린 시절 이빨이 모두 녹아내려 아무것도 씹어 먹을 수 없거라고 겁을 주던 때는 상인 자신을 위한 것이라 수긍을 했지만 성인이 된 상인은  반항과 두려움 사이를 오갔다. 

   류우끼에 대한 감정이 사랑인지 낭만에 대한 동경인지 구별하기도 힘든 때 아버지의 분노에 찬 반대를 만나니 더 이상의 엄두도 나지 않았다.  류우끼가 떠나는 날  그를 배웅할 때 류우끼가 상인에게 작은 작은 상자를 주었다. 그리고  집에서 상자를 열었을 때 오만 엔과 쪼개진 하트 모양 열쇠고리가 들어있다. 다음 휴가에 일본으로 올 경비에 보태라며 일본에서 나머지 반쪽을 자신과 맞춰 심장을 완성하자는 쪽지가 들어 있었다.  

  그날 아쉬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다 상인은 일어 학원 등록을 했다. 그리고 육 개월 뒤 겨울에 일본에 가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직장을 옮기느라 내년으로 미루고 캐나다로 파견 근무 나가느라 또 내년으로 미루고 하다 보니 준형을 만났다. 그래도 상인의 결혼 후에도 류우끼는  한결 같이 편지를 보내고 세계 각지의 기념품을 혹을 과자를 보내오곤 하였다. 그러한 연락 글이 오고 갈 때 결혼 전보다 더 짜릿했다. 


   나리타에서 리무진을 타고 한 시간 반 달려 신주쿠에 도착을 해, 가이드의 조언을 따라 함께 바로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를 찾았다. 공항 리무진 안에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연신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봤지만 잘못된 번호라는 멘트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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