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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골 샌님 Nov 21. 2021

다시 보기 2부

그리움이 된 회한 

2. 그때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상인은 암스테르담에서 류우끼를 만났다. 그는 야리야리한 몸으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가 담배를 끄며 일어났을 때  그의 엉덩이 밑에 깔려 있던 『세계를 간다』라는 책이 보였다. 상인은 피워 문 담배를 급히 끄며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한국분이시죠?  반가워요.”

 상인의 아는 체에 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노……. 나 일본 사람이에요.” 어색한 한국말만큼 그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책을 가리키며 본인 책이 아니라는 듯 손 사레를 쳤다. 이번엔 해맑은 소년처럼 그가 웃었다.  그냥 돌아서기 멋쩍어 상인은 그에게 물었다. 

“캔 유 스픽 잉글리시?”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커즈 유 해브 댓 북 아이 또우트 유아…….” 그가  ‘『세계를 간다』 여행서를 집어 들어 내밀며 말했다. 

“두 유 니드 디스 북?” 영어 발음이 꽤 자연스러웠다.  

“노, 아이 돈트”라며 고개를 흔들 때 갑자기 우박이 내렸다. 북유럽의 불안정한 날씨에 당황한 둘은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우박 덩이가 상당히 큰 것도 간간이 있어 누군가 머리를 쥐어박는 것처럼 아팠다. 그때 류우끼가 『세계를 간다』로 상인의 머리를 막으면서 뛰어갔다. 그 후 상인은 류우끼와 닷새나 붙어 다녔다. 둘은 스키폴 공항에서 헝가리 부다 페스로 갔다. 그는 역사 유물이 많은 부다 지역을 좋아했고 상인은 쇼핑하기 좋은 페스트 지역을 좋아했다. 둘은 서로를 부다 왕자와 페스트 공주라고 불렀다. 


   그리고 둘은 체코의 프라하를 쏘다녔다. 거기서 도자기 인형을 샀다. 화려한 전통 의상을 입은 인형을 수혜가 좋아할 것 같았다. 그리고 코켐이라는 독일의 모젤 강변의 작은 도시로 류우끼를 따라갔다.  해 질 녘 동화 같은 마을 여기저기 호텔과 여인숙을 다니며 “짐머 프리?”라고 류우끼가 묻고 다녔지만 아무 곳에서도 빈방을 찾을 수는 없었다. 둘은 우리 동양인라고 무시하고 방 안 주는 거 아니냐고 흥분했지만 마르크트 광장의 여행 안내소에서 역시 빈방을 구하는 영국인 부부를 만나자 마음이 누그러졌다. 

   그리고 둘은 파리에서 작별인사를 했다. 스마트 폰이 나오지 않았고 휴대전화도 드물던 시절이었다. 그가 혹시 한국에 출장 갈 일이 있으면 자원하겠다고 말하며 명함 뒤편에 집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그는 사진기자였다. 상인은 대학원에 다니는 학생이기 때문에 명함이 없다고 말하며 쑥스럽게 웃었다. 그는 엄마나 할머니는 영어를 못하지만 그냥 ‘류우끼’라고만 말해도 자신을 바꿔 줄 거라고 말했다. 그는 드골 공항에서 도쿄행 비행기를 상인은 더블린 행으로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유럽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산더미처럼 밀린 상인은 수혜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11시가 넘은 깊은 밤인데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음날 상인은 다른 친구가 알려준 병원으로 갔을 때 너무 놀라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온몸이 퉁퉁 부운 채로 침대에 누운 사람이 도저히 수혜라고는 믿기지가 않았다. 

  부모님을 20대에 모두 여읜 수혜는 혼자 살고 있었다. 그녀가 퇴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뺑소니 범을 찾지도 못하고 그녀가 인사불성으로 병원에 누워있을 때 상인은 유럽으로 여행 중이었다. 그저 미안함과 안타까움에 류우끼와 산 도자기 인형을 서랍 속에 처박았다. 

   수혜의 언니는 명랑했다. 왠지 언니를 보니 수혜가 금방 일어날 것만 같았지만 왠지 모를 미안함에 집으로 와 밤새 울었다. 유럽의 낭만적 기억이 수혜의 처절한 현실과 만나 북북 찢겨 나갔다. 

   수혜는 부기가 기시면서 꼼짝도 못 하던  마비증세도 호전을 보였다. 상인이 학교 수업과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병원에 들러보면 수혜는 하루하루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다. 재활 치료실에서 걷기 연습을 하는 그녀를 붙잡으며 수혜의 언니는 음주량 측정하는 교통 경찰관처럼 말했다. 

“야 누가 모르고 보면 소주 한 병나발 불고 휘청거리는 줄 알겠다.”

 물리 치료사들마저 까르르 웃었다. 

“야하, 오늘은 맥주 한잔 걸음이네…….” 상인도 덩달아 주량으로 수혜의 호전 상태를 측정했다. 

   일본에서 만사를 제치고 동생을 돌보러 나왔지만 수혜의 언니가 한 달을 머물며 병간호 한 를 했지만 더 이상 집을 비우는 것은 무리였다. 상인이 언니를 도와 비자 수속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고 수혜는 언니를 따라 휠체어에 태워진 채 일본으로 떠났다. ‘가족이 없이 멀리 떠나는 게  그 마음이 오죽할까’ 상인은 오랜만에 세차까지 하고 병원에서 공항까지 딸 친구를 배웅해주는 아버지가 생전 처음 고마웠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이래서 여자는 혼자 살면 안 된다고 역설하는 아버지의 말의 모순을 상인은 옆자리에 앉아 기어이 지적하고 말았다. 

 “말도 안 돼. 사고를 집에서 당한 것도 아닌데 그게 혼자 사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요?”

그리고 상인은 아버지의 고함에 도중에 차에서 내렸다. 

상인의 아버지는 유난히 “여자는……”이라고 지적하는 말이 많았다. 간섭도 심했다. 심지어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를 많이 쓴다고 잔소리를 했다. 

“둘둘 말아 쓰라고 두루마리 휴지지. 하나씩 뽑아 쓰는 티슈가 아니잖아요!”

 그렇게 한마디 대들고 나면 늘 수혜 집으로 도망을 갔다. 오랜 시간 어머니 병간호를 하며 효녀 소리를 듣던 수혜는 아버지도 외박을 허락하는 피난소이자 자유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일 년 뒤 수혜가 약간 휘청거리지만 멀쩡하게 김포 공항을 걸어 나왔을 때 왠지 우편 마비로 휘청이며 걷는 수혜와 류우끼는 쌍둥이처럼 함께 떠올랐다.  대학원 논문을 끝낸 상인은 다시 몸이 근질근질 해졌다.  

  상인은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기로 했다. 여행 가방을 끌며 여기저기 떠돌기보다 거점을 두고  최소 경비로 최대한 머물 수 있는 핑계와 잠자리로 홈스테이를 제공해 줄 곳으로 어학원이 제격이었다. 상인은 어학연수가 목적이 아니라 여행이 목적이었기에 수업은 최소 등록선인 9시부터 11시 30분까지만 등록을 했다. 

   그때 류우끼에게서 엽서가 날아왔다. 그도 다시 유럽으로 간다고 했다. 남 프랑스 리용을 거쳐 영국 브리스톨에서 열흘간 머물며 작업을 할 거라고 알려 왔다. 우연치고는 너무나 절묘한 국제적 인연이라고 상인에게 수혜가 말했다. 그때부터 갑자기 설레는 마음이 고개를 들더니 류우끼 생각만 해도 가슴이 쿵쾅거렸다.  

   전화를 걸까 생각했지만  회사로 전화하기는 민망해 상인은 편지를 써 다닐 어학원 이름과 주소를 전하며 그가 런던까지 그가 와 줄 수 있을지 물었다. 그가 영국에 도착할 날을 계산하여 시간이 괜찮으면 피카딜리 서커스 에로스 상 밑에서 저녁 일곱 시에 만나자고 국제 등기 우편으로 편지를 보냈다. 


   상인은 어스름한 저녁시간 그 사람 많은 데서 그를 알아볼 수 있을까 걱정을 하며 피카딜리 서커스 에로스 상 앞에 앉았다.  어둑해진 피카딜리 서커스 에로스 상 근처는 낮처럼 사람들이 바글거리지 않았다. 에로스 상 아래 계단에 앉아 상인은 담배를 한 대 피워 물며 소호 백화점에서 떼로 몰려나오는 일본인 관광객을 구경하고 이었다. 

  그때 ‘상인’ 류우키가 그녀를 불렀다. 아직 쌀쌀한 사월인데 그는 청색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어둑한 불빛 아래 청색은 검게 보였고 그의 몸을 더욱 호려 보이게 했다. 

 일 년 반만의 만남이었다. 그는 상인에게 악수를 청하려는 듯 오른손을 손을 내밀었다. 상인도 손을 내밀었다. 반가움에 둘은 손을 잡고 연신 웃기만 했다. 악수는 자연스럽게 포옹으로 이어졌다. 상인의 어깨를 살포시 두른 팔뚝과 상인의 눈이 일직선을 이루었다. 그의 가는 팔목과 달리 팔뚝엔 힘줄이 솟아 있었고 상인의 턱에 그의 단단한 알통이 닿았다. 그의 팔뚝의 근육은 상인에게 묘한 쾌감을 주었다. 둘은 트라팔가 광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둘은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손을 맞잡고 걷고 있었다.      

   해가 바뀌어 겨울의 기세가 약해진 2월 류우끼는 선물을 보내왔다. 상자엔 소녀 모양의 대형 구도 초콜릿과 하트를 단 목걸이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작은 카드에는 딱 한 줄 적혀 있었다.

Please Be my Valentine. 

상인은 혹시나 카드사에서 다량으로 찍어낸 글자인지 손가락 침을 묻혀 콕 찍어보고 들여다보았다.  인쇄된 글씨가 아니었다. 

“나의 밸런타인이 돼 달라. 손 글씨네,  체, 너 이거 나 염장 지르려고 일부러 들고 왔지” 수혜가 뾰로통하게 말했다.           

     그해, 여름휴가를 받아 류우끼가 서울에 왔다. 그리고 그가 상인에게 청혼을 했다. 사실 정식 청혼이었는지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와 상인은 영어로 대화를 나눴다.  류우끼는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Where do we have our wedding ceremony?  If possible, I would like to held the wedding in both Korea and Japan. Isn't it great?"

결혼식 장소를 밑도 끝도 없이 묻는 류우끼를 보며 상인은 심장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거 청혼이라기보다는 왠지 너 꼬시려는 바람둥이 멘트 같아." 수혜가 상인의 들뜬 마음에 초를 쳤다. 

“야, 이미 뿅 넘어갔는데 뭘 꼬시냐?” 상인은 기를 쓰고 반박했다. 

“그래도 돌다리도 두드려보라고 혹시 아냐 서로 모국어가 아닌 제 삼국 언어로 의사소통하는데 뉘앙스가 전달이 안 될 수도 있잖아.”

“너는 네가 신맛 좋아한다고 아무 데나 초치냐.” 상인은 서운함마저 느끼며 말했다. 수혜 역시 아차 싶었는지 진지한 표정으로 바꾸며 말했다. 

“우리 언니가 일어를 거의 완벽하게 구사한다고 생각해도 형부하고 문화 차이로 서로 이해를 못 해서 괜히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를 봐서, 국제결혼은 신중해야 하는 거니 그러지. 어쨌건 네가 참 부럽다.” 진심 부러워하는 듯한  수혜의 눈을 보자 상인은 발끈했던 마음이 가라앉다 못해 푹 꺼져 버렸다. 수혜는 여전히 오른손과 다리에 남은 마비 증세로 고생했다.  장애와 싸우느라 날카로워진 성격과 자격지심으로 아니 그녀의 고통을 감싸 안을 자신이 없어하던 남자와 이별을 한 후, 수혜는 새로운 사람 만나기를 두려워하고 또 스스로 다가오는 남자들을 차단했다. 


  결국 상인은 류우끼 마음속에 들어가 보지 못하고 다음이라는 기약 없는 기약을 하며 헤어졌다. 그러나 밸런타인데이 즈음해서 언제나  ‘내 밸런타인이 되어 주오’라는 카드와 함께 선물을 보내왔다.  


 수혜와 헤어지고 돌아온 그날 저녁 상인은 남편에게 이번 달은 한 푼도 내놓지 못하겠다고 선언했다. 상인은 남편에게 여행 좀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준형은 “알았어”라고 짧게 말하고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그 밤 인터넷 검색을 하고 개인 맞춤형 가이드도 섭외를 했다. 그리고 상인은  12년 전 류우끼가 준  쪼개진 반쪽 하트를 여행 가방에 챙겨 넣으며 지갑에 일본 가이드의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넣었다. 

   다음날 아침 회사에 들려 휴가를 낸 후 인천으로 향했다.  일본은 크리스마스가 휴일이 아니란 소리를 진작에 새겨들었으면 더 좋았지 모른다. 일본의 큰 회사들은 대부분 12월 27일 시무식을 하고 새해를 맞을 휴가에 돌입한다는 말을 듣고 26일 밤새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직장에서 한소리 듣고 간신히 27일 정오 비행기를 탔다. 

   나리타공항에 마중 나온 가이드는 본래 직업이 사진사라고 했다. 상인은 사진사라고 말하는 젊은 제일교포의 나이와 안 어울리는 언어 선택에 웃음을 터트렸다. 어찌 보면 류우키도 포토그래퍼, 아니 사진사였다. 그녀가 처음 류우키를 만났을 때 그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가자로 입사를 앞두고 남은 기간 여행 중이었다. 그리고 삼 년 전 류우끼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을 그만두고 개인 스튜디오를 열었다고 말했다. 

   이제서 상인은 왜 그때 축하전화 한 통을 안 했을까 후회를 했다. 언제나 주기만 했던 류우끼와 늘 받아가기만 하는 남편. 언제나 애틋했지만 말 안 통하는 이국 생활의 부담과 늘 배려로 일관되어 아무 요구도 없던 류우끼는 평범한 듯 가까이하기가 어려웠다. 

   상인에게 남편은 처음부터 편한 상대였다. 동갑으로 공감대 형성도 빨랐다. 영화 동호회에서 만난 준형은 아톰과 요술공주 새리를 보고 자란 동갑이라는 것 외에도 동호회에서 영화 관람을 위해 표를 살 때도 영화 선택에 이견이 생겼을 때도 그 누구보다 조정을 잘했다. 상인의 말이라면 사소한 것 하나도 주의를 기울여 열심히 들었고 맞장구도 잘 쳐주었다. 상인은 남자와 이렇게 편하게 수다를 떨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식성 까다로운 수혜를 만날 때처럼 고민하거나 싫은 일은 절대로 못하는 고집과 그녀의 장애를 배려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만난 지 일 년째에 상인에게 준형이 고백을 했다. 좋아한다. 그러나 그때 상인은 그냥 친구로 잘 지내자는 진부한 답을 남겼다. 하지만 고백을 받고도 만나기 고민스럽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일 년 지나며 동호회는 와해 되었지만 준형과 상인은 편하게 연락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세른 다섯이라는 나이가 버거워지고 있었다. 

  아침 6시 알람이 필요 없는 토요일은 상인이 실컷 늦잠 한번 자보자며 꿈나라를 여행할 때 방문이 덜컥 열리는 소리에 이불속에서 그녀가 움찔했다. 상인의 아버지가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그녀는 몽중인의 상태였다. 

“해가 중천에 떴다. 허리 부러진 사람 모양 여태 누워 있어!”

 방금 담배를 피우고 들어와 가래가 가시지 않은 걸걸한 목소리로 그녀의 아버지가 고함을 쳤다. 부스럭거리며 일어나 시계를 봤다. 이제 일곱 시가 좀 지난 시간이었다. 그녀가 이불을 끌어 다시 누우려 하자 아버지가 다시 고함을 질렀다. 

“어서 안 일어나! 쉬는 날이면 엄마 아침 차리는 것 좀 도와라.” 이렇게 시작된 아버지 훈수를 듣다못해 일어나 침대 정리를 하며 상인이 작은 소리로 그러나 뚜렷하게 말했다. 

“그러는 아버지는요.” 상인이 화약고를 건드린 것이다.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서둘러 아침을 먹고 밖으로 나왔다. 당일치기 여행이라도 할까 했지만 영하 십 도가 넘어가는 날씨에 만사가 귀찮아져 수혜에게 전화를 했다. 

  식탁 앉아 두 여자는 오전부터 밤 아홉 시가 다 되도록 화장품, 직장 상사,  지도교수를 하나씩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침 튀기며 난도질을 해대고 이었다. 그때 상인의 휴대폰이 울렸다. 

      준형의 눈은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눈초리가 축 쳐져 있지만 그는 눈을 껌벅이며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려 노력한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주 어쩌다 가라도 그대가 나를 찾아주면 좋겠습니다.'” 준형은 어디서 들어본 듯 한 유행가 가사 같은 말을 꼭꼭 곱씹고 이었다. 그러나 술 취한 남자와 단둘이 있다는 것은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혼자 횡설 수설 하는 소리에 귀를 쫑긋하고 있어야 하는 인내가  그녀에게 없었다. 

“나 돈도 학벌도 백도 후지지만 정상인 좋아하는 마음은  최고인데........ 넌 내가 후져서 싫으냐?”

“이게 정말 사람 후지게 만드네!”

“넌 보석이 이야.  변치 않는 값어치가......”

“유치하긴.......” 상인이 그렇게 쏘아붙였지만 비틀리며 상인의 두 볼을 꼭 잡는 준형을 뿌리치지 않았다. 

   설렘이 시작되고 사랑으로 옮겨가기까지 짝사랑은 조바심이 나지만 자기 소멸적 증상 대신 주는 만큼의 대가를 받는다. 상대의 작은 반응에도 충분히 기쁘고 만족스러우니까. 하지만 그 사랑이 전달되지 못하거나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사랑은 방향을 잃는다.  새로운 가능성, 준형은 가능성을 부여잡고 놓지 않았다.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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