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회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밤

by 혜림

“성수 금요일 7시 어때?”


윤재다. 고등학생때도 3년 내내 학교회장을 빼놓지 않던 아이였는데 어쩜 이렇게 하나도 변하지 않았을까.


얼마 전, 평소처럼 회사에서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는데 “2학년 3반”이라는 단톡방 알림이 울렸다. 스팸 문자인가 싶어 무시하려다 익숙한 이름들이 보여 들어가 봤더니, 오랜만에 얼굴도 볼겸 고등학교 동창회를 하자는 이야기였다. 현생이 너무 바빠 무슨 동창회냐 싶다가도, 어느새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에 문득 애들 근황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연락은 따로 안해도 SNS로 간간이 근황을 알고있던 친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연락이 끊긴지 오래였다. 나 역시 졸업하자마자 취직해 어느덧 7년 차 직장인인데, 다들 어떻게 살고 있는지, 결혼은 했는지 괜히 궁금해졌다. 서울에서 자취 중이었고 성수라면 멀지도 않아 얼굴이나 볼 겸 가기로 결정했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옷장으로 향했다. 대학교 때까지만 해도 어떤 향수를 뿌릴지, 어떤 옷을 입을지 매일같이 고민하던 나였는데, 그 많던 옷은 어디로 갔는지 눈에 띄는 건 세 벌 밖에 없었다. 회사야 상하의를 돌려가며 입으면 되니까 별로 신경 안썼는데 나름 중요한 모임에 차려입고 갈 옷이 없었던 것이다. “동창회 날짜를 이틀 전에 알려주면 어떡하라는거야..” 입을 삐죽 내밀고 거울 앞에 서서 노란색 트위드를 걸쳐봤다. 다행히 얼마전에 사두었던 코트가 있어 입고, 밝은 톤으로 맞춰 액세서리도 몇 개 꺼내봤다. “나름 7년 차 직장인인데, 커리어우먼 느낌은 나야하지 않겠어.” 중얼거리며 방구석 패션쇼를 마쳤다.


나는 심심하지만 나름 내 일상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엄청난 커리어는 아니었지만 퇴근 후에는 집에서 요리를 하고 맥주를 마셨고, 주말엔 가끔 친구도 만나며 소소한 행복을 즐기고 있었다. 내세울 것도, 그렇다고 꿀릴 것도 없는 삶이었다. 그렇게 기대 반, 긴장 반으로 잠에 들었다.

출근하자마자 “어머 과장님 오늘 어디 가시나봐요?”라는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렇게 늘 거지같이 입고 다녔나 싶어 대충 멋쩍은 웃음으로 대답했다. 퇴근 후에는 특별히 향수를 챙겨 화장실에서 몇 번 칙칙 뿌리고, 마지막으로 거울을 확인한 뒤 성수로 출발했다.


약속보다 5분쯤 일찍 도착해 두리번 거리고 있었는데, 저 멀리 손을 흔드는 윤재가 보였다.

“윤재! 진짜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윤재는 어쩜 달라진게 하나도 없었다. 누가봐도 자신감 넘쳐 보였고, 위아래 수트로 깔끔하게 차려입고 머리도 말끔히 넘기고 앉아있었다.

“채림이구나. 단톡방에서는 말 없더니 올 줄 몰랐네?”

아직 묻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회사에서 요즘 너무 바쁘다”, “프로젝트가 세 개나 겹쳐 죽겠다”며 벌써 대기업 영업사원으로 잘나간다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 중, 처음 보는 얼굴 하나가 눈에 띄었다. 큰 키에 모델처럼 보이는 사람이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누구야?”

웅성웅성대고 있던 와중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안녕 얘들아, 나 희라야. 기억나지?”


사실 나는 희라 근황이 가장 궁금했다. 희라는 나랑 꽤 친했었는데 고등학교 2학년때 유학간다고 갑작스럽게 미국으로 떠나고 연락이 끊겼던 친구였다. 조용하고 말수가 적은 친구로만 기억했는데, 세월이 많이 지나긴 했는지 얼굴도 분위기도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차려입고 또각또각 걸어오는 모습이 낯설었다.


“양희라? 양희라 맞아?”

다들 휘둥그레진 눈으로 쳐다보자 희라는 아무렇지 않은 듯 가볍게 웃었다.

“뭘 그렇게 놀라. 맞아, 나야. 오랜만이다.”


희라는 우리 테이블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마치 오랫동안 이 자리를 기다린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앉았다. 가까이서 보니 손목에 걸린 시계며 핸드백이며 하나같이 값이 어마어마해 보였다.


윤재가 호기심을 못 참고 제일 먼저 말을 꺼냈다.

“야 너 지금 뭐 해? 완전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희라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냥… 뉴욕에서 패션이랑 이것저것 하고 있어. 한국 들어온 건 한 달 정도 됐고.”

확실하게 뭘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괜히 더 있어 보이는 말투였다. 다들 속으로는 더 궁금해졌을 것이다.


희라가 내 쪽을 슬쩍 보더니 말을 걸었다.

“채림아, 너도 잘 지냈지?”

나는 왜인지 모르게 움츠러 들었다. 나는 바로 알아볼 정도로 변하지 않은건가 싶어서.

“응, 잘 지냈어. 너는… 정말 많이 달라졌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 다 바뀌지 않나.”

희라는 어딘가 모르게 차가운 말투로 대답했다.


희라는 그렇게 말하곤 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 그 뒤로는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고, 대신 누가 질문을 던지면 짧게 대답하고 다시 잔을 채우는 걸 반복했다. 어느새 웃음기도 점점 사라져 보였다.


시간이 흐르자 분위기는 훨씬 시끄러워졌다. 윤재는 여전히 자신의 프로젝트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고, 듣는 사람들의 눈은 이미 동태가 되어 있었다. 슬슬 집에 갈까 싶을 즈음, 밖에서 몇 명이 담배를 피우며 수군대고 있었다. 나도 답답해 잠시 밖으로 나가겠다고 자리를 떴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해?”

다가가자, 한 친구가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주변을 힐끔 보며 불렀다.

“채림아. 희라 말이야… 너 혹시 들었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쟤 한국 들어온지 3년도 넘었다던데. 아까 저쪽 테이블에서 누가 희라 영등포 근처 옷가게에서 일하는 거 봤다더라.”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까 봤던 희라의 시계, 가방, 차가운 말투까지 동시에 떠올랐다.

“근데 본인은 절대 그런 얘기 안 할 거야. 자존심이 워낙 세잖아. 옛날부터.”


창문 너머로 희라가 여전히 술을 마시고 있는 게 보였다.

“희라 아직도 마시네? 내가 좀 보고 올게.”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를 뜨고 희라 옆에 앉았다.


“야, 너 술을 왜 이렇게 많이 마셔. 누가 보면 너 술고래인줄 알겠다.”

아무일도 없었던것처럼 나는 희라 팔을 툭툭치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희라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채림아, 우리 잠깐 얘기할래? 할말도 있고.”


희라는 내 팔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 말고… 밖에 좀 나가자.”

성수의 밤공기는 생각보다 차가웠다. 가게 앞에 서자 희라는 코트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담배를 꺼냈다. “이놈 참 대단하지. 끊으려고 해도 자꾸 생각나.”


“너 나 유학 가고 싶어 했던 거 기억하지?”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너 뉴욕 얘기만 하면 눈이 동그래지던데?”


희라는 피식 웃었다.

“그거 그냥 말만 한 거 아니었어.”


졸업 후 알바를 미친 듯이 했다는 이야기, 남들 놀 때 돈을 모았다는 이야기, 그리고 뉴욕.

“그래서 갔어.”

“근데 1년 만에 돌아왔어.”


“왜?”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희라는 꿀꺽 침을 삼켰다.


“내가 현실을 몰랐던 거지. 돈은 계속 나가고, 일은 안 잡히고… 내가 또 머리가 뛰어나게 좋은것도 아니잖냐.”

피식 웃었지만, 웃음기는 금방 사라졌다.

“아, 그리고… 우리 가족이 또 언니 바라기잖아. 언니 유학 비용 다 지원해주니까 남는 돈이 없대.”


그제야 희라의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래서 그냥 접었어. 나 혼자 발버둥 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알바로 모은 돈도 거기서는 6개월 만에 바닥나더라.”


나는 희라의 슬픈 눈을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평소에 공감왕이라고 불리던 나였는데 위로를 해야할지, 그러다 동정처럼 보일까 봐 입이 딱 붙어버렸다.


희라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언니가 나보다 똑똑한 건 맞지. 원래 주식도 희망이 보여야 투자하는 거잖아.”

“근데 웃기지 않냐. 인스타 스토리도 그렇고, 이런 모임 나올때도 다들 잘나가는 얘기만 하잖아. 잘나도 욕하고 못나도 욕하니까… 차라리 잘난 척하는 게 낫지 않나 싶어서. 나올까 말까 수백 번 고민하다가 애들 얼굴도 볼 겸 왔는데, 나 또 이러고 있네.”


“근데 있잖아.”

희라가 조용히 말했다.

“나 원래 자존심 되게 센 거 알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희라는 어릴 때부터 그랬다. 힘들어도 절대 먼저 말 안하고, 괜찮은 척을 제일 잘하던 애였다.


“그래서 말은 안 했는데… 우리 집이 좀 언니한테 몰빵한 건 맞는 것 같아.”

“언니가 공부도 잘했고, 똑똑했고… ‘투자할 가치’가 보였겠지. 나는 그냥… 가능성 없는 애였던 거고.”


그 말이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더 아팠다.


“그래서 내가 뉴욕 간 것도, 솔직히는 증명하고 싶어서였어. 나도 할 수 있다는 거. 나도 포기할 애는 아니라는 거.”

희라는 코웃음을 쳤다.

“근데 막상 가보니까, 세상은 그런 증명 기다려주지도 않더라. 돈 많은 사람은 넘쳐나고, 그걸 넘어 똑똑한 사람도 있는 거니까.”


그제야 나는 이해했다. 희라가 왜 그렇게 비싼 가방을 들고, 세상 자신감 있는 사람인 척 이 자리에 나타났는지. 그건 자랑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붙잡고 싶은 자존심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힘들었겠다. 근데 있잖아, 그거 실패 아니야. 해본 거잖아.”


희라는 바닥을 보다가 천천히 나를 올려다봤다.


“세상이 원래 그래. 과정은 중요하게 안보고 결과만 보잖아. 시도했다가 안 되면 실패라고 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건 다 무시해버리잖아.”


어느새 희라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나, 진짜 열심히 살았거든.”


그 말에 나는 희라 등을 토닥이며 조용히 휴지를 한 장 꺼내 건넸다. 희라는 잠시 그걸 바라보다가, 아주 작게 웃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늘 화장 좀 덜 할 걸.”


“근데 채림아. 나 사실, 여기 오기 전에 수백 번 고민했어. 안 올까도 했거든.”


“그래도 왔잖아.” 내가 말했다.


희라는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건… 맞네.”


희라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나는 최대한 담담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을 이었다.


“너는 최선을 다했어. 결과가 따라주지 않더라도, 삶의 방향을 조금이라도 배웠잖아. 포기 안 했고. 이런 일 생기면 바로 도망치는 애들도 있는데 뭘.”

나는 창문 너머 시끄럽게 떠드는 애들을 바라보았다.

“저기서 저렇게 떠들어도… 다들 속사정 하나씩은 있을껄?”


잠깐의 침묵. 멀리서 동창들 웃음소리가 들렸고,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 들어갈까?” 내가 말했다. “너 없으면 애들 또 별 얘기 다 할걸.”


희라는 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고, 다시 담담한 표정을 만들어냈다.

“그래. 근데 오늘은 네 옆에 앉을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창회가 있고 일주일 후, 희라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그날 와줘서 고마워.”


나는 한참 그 메시지를 보고만 있었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서라기보다는, 그 한 마디에 담긴 말들이 너무 많아 보여서였다. 그날 이후로 희라의 인생이 갑자기 나아졌을 리는 없고, 나 역시 여전히 같은 회사로 출근해 같은 하루를 살고있었다.


그날 밤을 떠올렸다. 화려한 가방도, 자존심도, 눈물도, 모두 잠시 내려놓았던 그 순간을. 사람들은 여전히 결과로 서로를 판단하고, 우리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은 어른이지만 적어도 그날만큼은 누군가에게 그 밤이 조금 덜 아픈 기억으로 남았기를, 나는 조용히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