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주의가 그런 거였어요?!

역시 가슴으로 느껴야 알 수 있지!

by 정상희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교에 왔으니, 내가 듣고 싶은 수업을 마음껏 들어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궁금한 <20세기 모던 아트> 수업에 들어갔어요.


사실 그 동안 대학물을 몇 년 먹었으니 <서양 미술의 역사> 교양 수업을 모교에서 이미 들었었지만, 대형 강의실에 앉아 한 학기에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 책을 쭉 훑어가며 리포트 몇 장 쓰는 수업으로 미술을 깊이 있게 배우기는 어렵죠.


여기서는 어떤 수업이 펼쳐질까, 궁금한 마음으로 첫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일단, 수업 규모가 작고요.^^ 스무 명이 안 되는 학생들이 길다란 디귿자 모양의 테이블 주위로 빙 둘러 앉아 있길래 저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지요.


곧 강의 시작 시간이 되어 선생님이 들어오셨습니다. 자그마한 마른 체구에 짧은 머리를 하신 중년의 여자 선생님이셨어요. 근데, 강의실에 들어오자마자 테이블을 돌며 학생 하나 하나와 악수를 하며 자기를 소개하시지 뭐에요!


"Hi, my name is Maria. Very nice to meet you."


저와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악수를 하시는데, 와~ 저는 선생님에게서 아주 강렬한 인상을 받았어요.


그 분의 수업은 또 더더욱 인상적이었죠. 일단, 우리에게 아무런 설명이 없이 세 장의 그림을 슬라이드로 보여주셨습니다. 자, 보세요~


1번 그림입니다


2번 그림입니다


Screen Shot 2025-08-29 at 11.03.35 AM.png 3번 그림입니다


이렇게 세 장의 그림을 보여주시며, 학생들에게 각각의 그림에서 어떤 느낌이 나는지 말해보라고 하셨어요.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드세요?


제 느낌에, 1번은 상당히 우아하고 부드럽고 세련된 느낌이 듭니다. 2번은 아주 강렬한 느낌... 뭔가 화가 난 것도 같은 표정이라. 3번은 아주 밝고 따뜻한 느낌이에요. 여러분도 비슷한 느낌이 드시나요?


학생들이 자기 느낌을 이야기하자, 이제 선생님이 놀라운 사실을 말해 주십니다. 위의 세 그림이 모두 다 같은 한 여자를 그린 그림이라는 거에요!


우와~ 저렇게 서로 다른데? 세 그림 모두가 Marianne von Werefkin 라는 여성 화가를 그린 거랍니다.


1번은 동료 화가인 Erma Bossi가 마리앤을 그려 준 것이고요,

2번은 마리앤이 자기 자신을 그린 자화상입니다.

3번은 또 다른 동료 화가인 Gabriele Münter가 마리앤을 그려 준 것이라고 해요.


그런데 각각이 너무 느낌이 다르죠? 선생님 말씀이, 이게 바로 표현주의라는 거에요. 표현주의는 작가의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의 그림이라고. 사실적인 묘사와는 상관이 없이 말이죠. 특히 2번의 자화상을 보면, 얼굴에 빨강 파랑 노랑 등, 사람 얼굴 그리는 데에 전혀 자연스럽지 않은 원색들이 마구 들어가 있단 말이죠.


인상파가 대상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집중해 그 인상, 그 느낌을 캔버스에 재현해 내는 것과 달리, 표현주의는 대상에 대한 작가 자신의 느낌이 드러나도록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요.


와~ 그런 거였구나!


이전까지만 해도 "표현주의: 작가의 감정을 표현하는 사조. 대표적으로 독일의 키르히너가 있음." 이런 식으로 좀 기계적으로만 알고 있었고, 키르히너의 거칠고 원색적인 삐죽삐죽한 인물 그림들을 보며, 이런 식의 그림이 표현주의라고~ 하면서 외우는 식으로 미술을 배웠는데, 오늘 강의는 정말 가슴으로 다가왔어요.


선생님이 설명을 하지 않고 그림을 먼저 보여주셨잖아요. 그림을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느꼈는지 묻고 우리의 답을 들어주셨잖아요. 그리고 나서, 왜 그런 느낌이 들까, 그림의 어떤 요소가 우리에게 그런 느낌을 전달해 줄까, 같이 이야기 해 보도록 하셨어요.


1번 그림의 부드러운 곡선, 차분한 색채 등이 우리에게 우아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동료 화가를 프로페셔널하고 품위 있는 사람으로 "표현"해준 거죠. 2번 그림은 마리앤이 뭔가 분노에 가득 차 있는 감정이 붉은 눈동자와 강렬하고 부자연스러운 색들의 조합으로 아주 잘 "표현"되어 전달이 됩니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그 그림을 그릴 당시 마리앤이 자기 자신에게 매우 화가 나 있었다고 해요.) 3번 그림은 삼각형의 매우 안정적인 구조와 따뜻한 색감을 사용하여 친구에 대한 애정을 잘 "표현"한 그림이죠.


그런 게 표현주의군요... 너무 잘 알겠어요, 진짜.


그림은 가슴으로 배워야 하는 거군요. 역시.


마리아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된 것이, 선생님이 우리에게 여성 화가들을 많이 소개 시켜주신 거였어요. 보통 표현주의 하면 독일의 키르히너, 노르웨이의 뭉크 등 남자 화가들만 주로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 당시에 이렇게 많은 여성 화가들도 같이 활동하고 있었거든요.


참고로, 인터넷 검색을 더 해보니, 아래의 그림과 같이 마리앤이 그린 고전적인 풍의 그림도 있네요. 이걸 그린 사람과 위의 2번 자화상을 그린 것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 너무 신기하지 않나요?

Portrait of Vera Repin by Marianne von Werefkin


자, 그럼 그림을 알아가는 여정은 다음 편에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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