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면 기분 좋아지는 그림

앙리 마티스

by 정상희

여러분은 예술의 기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예술의 기능이야 워낙 많아서 무엇 하나라고 꼬집어 말하기는 너무나 어렵겠지만, 어떤 작품이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작품이라고 한다면 일단 먹고 들어가는 거 아닐까요?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궁금하네요. 물론, 같은 것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기분이 좋아지고 어떤 사람은 기분이 나빠질 수도 있기 때문에 이 역시 뭐라 단정할 수 없는 문제이긴 합니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 하면 딱 떠오르는 것이 저에겐 마티스의 그림들입니다.


자, 이 그림 좀 보세요.

<The Open Window> by Matisse. 1905년 작품


색깔이 너무 이쁘지 않아요? 서로 대조를 이루며 벽과 창문에 칠해진 초록색에 분홍색에... 아직 추상 쪽으로는 가지 않아서 창 밖으로 바다와 배들이 보이는 예쁜 창가의 모습을 알아보기도 쉽고, 두껍게 휙휙 날린 듯한 붓자국들이 운동감도 주고, 보기에 참 재미있어요. 자유로운 붓터치 때문에 보면 볼수록 신이나서 어깨가 들썩들썩해지는 것 같아요. 그림에서 '즐거움'이 느껴진달까요?


유튭에서 본 어떤 미술 선생님 말이, 우리의 시선을 오래 잡아두는 그림이 잘 그린 그림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워낙 이미 화려한 색채들에 익숙해진 우리 눈에는 이 그림이 좋아 보일지 몰라도, 마티스가 세상에 이름을 내놓기 시작하던 1900년대 초에는 '보기 좋다'기 보다는 충격적이었죠. 너무 막나가는 색들을 너무 자유롭게 칠한 덕분에, 마티스에게는 조롱의 뜻이 담긴 "야수파"라는 딱지가 붙게 됩니다.


마티스와 동료들이 파리에서 연 공동 전시회에서, 그 당시 평론가 한 사람이 '적나라한 색깔들의 난교파티'라며 이 새로운 트렌드 화가들의 작품들을 '들짐승 (야수) fauves'에 비유한데서 나온 이름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짐승같은 그림들이란 뜻이죠.


<Woman with a Hat> by Matisse. 1905년 작품


하지만 마티스는 자신의 화풍을 꾸준히 밀고 나갑니다.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평생 가는 친한 친구가 된 피카소를 1906년에 만났고, 그 둘은 미국의 부동산 거부의 집안에서 태어난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과 그 집안 사람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어요. 스타인 집안 사람들은 대단한 아트 컬렉터였거든요.


게다가 거트루드 스타인의 친구였던 발티모어 출신의 콘 자매들까지 마티스를 꾸준히 지원합니다. 클라러벨 콘은 외과의사였고 에타 콘은 피아니스트였는데, '도금 시대' 미국이 부를 구가하던 20세기 초의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난 이들은 유럽으로 매년 긴 여행을 했습니다. 프랑스 파리를 거의 집삼아 살다시피 하던 친구 거트루드의 소개로 마티스를 만나게 된 두 자매는 마티스의 화풍에 폭 빠졌고, 이때부터 마티스의 실험적인 작품들까지 대거 구입하며 그의 작품 활동을 꾸준히 지원했답니다.


그래서 발티모어 아트 뮤지엄에는 콘 자매가 기증한 마티스의 작품들이 많이 있어요. 발티모어는 제가 사는 곳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가면 있는 도시라, 지난 여름에 친구들과 방문해서 작품 감상도 하고 사진도 찍었지요.

<Interior with Dog> by Matisse. 1934년 작품.


든든한 후원자들이 물심양면으로 보살펴주니 마음이 편안해서 그랬나...

마티스는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기분 좋은 그림을 주로 그렸습니다.


<La Blouse Roumaine> by Matisse. 1940년 작품


"내가 꿈꾸는 것은, 힘들고 우울한 것들이 없이, 순결함과 평온함이 균형을 갖춘 예술이다. 몸이 피곤할 때 편안히 쉴 수 있는 좋은 안락의자와 같이 마음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고 차분하게 해 주는 것이다." - 마티스


다시 저의 암스테르담 대학교 <20세기 모던 아트> 수업 얘기로 돌아갑니다. 마리아 선생님은 마티스가 남긴 위의 구절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학생들의 생각을 물으셨어요.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니? 예술이 이렇게 기분 좋은 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오... 이것은 이후에 펼쳐질 온갖 고난의 미술을 소개해 주시기 전에 뭔가 전조를 흘리신 거였어요. ㅎㅎ


여튼, 마티스는 점점 심플한 형태의 스타일을 발전시켜 나갔고,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노년에는 몸이 병들어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을 때에도 채색된 종이들을 가위로 잘라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Blue Nude II> by Matisse. 1952년 작품


작품의 형태들도 점점 더 심플해져가죠.

단순한 게 좋은 거에요.^^


<La Gerbe> by Matisse. 1953년 작품.


병상에 누워서도 이렇게 리드믹하고 밝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니...


게다가 그 엄청난 작업량. 아래 사진을 보시면 저 이쁜 작품들이 사실은 엄청 큰 작품이란 걸 알 수 있죠. 저걸 다 자르기도 엄청난 일이었겠어요.



지난번 포스트에서 말했듯이 제가 암스테르담을 도망치듯 떠나 밝은 햇빛을 찾아 남프랑스로 날아갔을 때, 비행기 도착지가 니스였어요. 여행책에는 니스가 아름다운 휴양지로 유명하다는데, 돈도 없는 학생이 멋진 휴양지에 가서 뭘 하겠어요. 심드렁한 마음으로 오로지 교통편 때문에 간 곳이었는데, 글쎄 알고 보니 여기에 샤갈 뮤지엄, 마티스 뮤지엄이 있는 거에요!


그래서 그 두 개의 뮤지엄을 둘러 봤었는데 너무너무 좋았었어요. 순백의 샤갈 뮤지엄은 깊은 푸른색이 많은 샤갈의 그림들과 정말 좋은 조화를 이루었고요, 강렬한 주홍색의 마티스 뮤지엄은 언덕 꼭대기에 있어서 내려다 보이는 니스의 푸른 바다와 시원한 대비를 이루었답니다.


니스의 마티스 뮤지엄 전경


그런데 그때는 몰랐던, 또 하나의 마티스 명소가 니스 근처에 있네요. 마티스가 말년에 디자인한 채플이 있는데 너무나 단순하고도 간결하게 검은 선으로만 표현된 성모자상과 찬란한 햇빛을 원색으로 듬뿍 받아들이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아래 뮤지엄 사이트를 클릭해서 한 번 보세요. 저도 언제 기회가 되면 꼭 가보고 싶어요!


https://www.musee-matisse-nice.org/en/the-artist/matisse-and-the-rosary-chapel/




작가의 이전글표현주의가 그런 거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