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함
결혼 45주년에 부부가 아닌 올케언니랑 여행 떠났다.
모두가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지만 여행도 그렇다.
모든 걸 제대로 갖춘 여행 방식은 아니었지만, 돌아보니 나만의 완벽한 여행을 했다.
멤버도 좋았고 타이밍도 좋았다.
무엇보다 항암 부작용으로 함께 가지 못한 남편의 무탈함이 더 감사했던 여행이다.
가장 더웠던 올 여름, 8월에 갔던 캐나다 로키투어는 시애틀로 시작해서 시애틀로 끝맺었다.
https://brunch.co.kr/@58ab10bb53d9448/308
우연인지, 여행사의 의도였는지 시애틀에 도착해 맨 먼저 들른 곳이 스타벅스 본사였고, 캐나다 로키투어를 마치고 귀국하는 마지막 날도 시애틀에 있는 스타벅스 1호점 투어였다.
여행일정동안 쾌청한 날씨를 새삼 깨닫게라도 하듯 투어 마지막날 호텔을 나와 차를 타자마자 살짝 비를 뿌렸다.
이동 중이니 흐린 날씨마저 낭만이 된다.
스페이스 니들에 도착하자마자 비는 그쳤지만 패키지여행의 단점인 다수결에 의해 니들 타워에 탑승도 못해 본 아쉬움이 남아있다.
기념품 샵에서 손자에게 줄 니들 Toy 하나 겨우 건졌다.
이어 부두를 낀 퍼블릭 마켓으로 우릴 안내했다.
퍼블릭 마켓하면 이미 관광 필수 코스처럼 되어있었다. 100년 전통으로 연간 천만명 이상 관광객이 방문한다는 가이드의 안내로 우리도 그 대열에 끼인 것, 그 유명세 속에 스타벅스 1호점이 있어서일까.
초행길이라 해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유명세를 증명이라도 하듯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부둣가답게 해산물이 많았고 쇼핑객을 위한 깜짝 퍼포먼스 넋 놓고 구경하다 앗차 하며 허둥지둥 찍었다.
일단, 스벅 1호점은 대기줄 옆에서 폼 잡아 사진만 찍고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정해진 시간이라 차로 돌아오는 길에 봐도 여전히 스벅 1호점 앞 줄은 더 길어져 있어, 우린 커피대신 납작 복숭아랑 바게트 빵을 샀다.
야외 테이블에서 먹는 생애 첫 납작 복숭아의 맛은 달고 과즙이 추릅추릅, 지금 이 순간도 침이 고인다.
납작 복숭아가 완벽한 맛처럼 여겨지는 건 여행의 맛이 가미된 거라 더 달고.
여행 중 뒤늦게 알게 된 스타벅스의 커피맛은 여행 중독으로 이어지고,
마치 여행작가가 된 것처럼 글을 썼었다.
여행을 마치고 함께 동행했던 올케언니와의 거리는 친언니처럼 더 가까워졌다.
내가 그토록 기대하던 여행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
지금 가진것마저 더 이상 잃지 않으려 발버둥 치며,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 것들은 거칠게 모자이크
처리했어.
수많은 질문을 남기면서 말이야.
삶이란
여행이란
희망이란
모든 게 마음먹기 나름.
다시 못 사 먹을 사탕이라면 천천히 녹여먹는 것처럼, 지금도 달디 단 여름 로키 투어는 아주 천천히 녹여먹는다.
로키에서 찾은 인생뷰 포인트는
단순하다.
그저 단순한 것이 아니라
복잡함을 품은 단순함,
궁극의 단순함이어야 한다.
시도 인생도 사랑도
_ 박노해 / 걷는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