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말해봐

코가 길어졌어요

by 나철여

딱히 소원이 떠오르지 않았다.


"갖고 싶은 게 뭐야?"

(...)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으면 대답했을 건데!'


8년 차 남편의 보호자로, 든 아내가 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던 남편이 달라졌다. 감사하다는 표현을 자주 한다.

나도 달라졌다. '왜 나만 남편 병수발에 주 중 육아로 늙어서까지 쌩고생이냐?' 했던 나지만,

"당연하게 하는 거" 라며

고맙다는 남편의 말에 손사래를 친다. (코가 길어졌다)


또 보너스 같은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

나 몰래 남편이 아주 의미 있는 일본 동경여행 신청을 했다.

내년 3월이 기다려진다.





"할머니가 산타야?"

"아니, 내가 갖다 둔게 아닌데..."

"할머니의 코가 길어졌어요!"


산타할아버지가 등장할 때면 이 할미도 바빠진다.

작년과 달리 리 밑에 두고 온 선물을 보며 꽤나 깊은 생각으로 묻는 초2 손자 기준이의 질문에 답하다 피노키오 멘트를 한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나도 깊이 생각 중이다.


병뚜껑으로 만든 길이다. 함께 보낸 시간들이 길이 되었다.

분리수거에도 그냥 버리기 아까운 생수병뚜껑으로 만든 길은 우리부부의 힐링이 되는길이기도 하다 마지막 다 빠져나와서 넘어지는 생뚱맞은 명장면, 작년이맘때 할미가 찍어 둔 영상.

영상은 폰에 담고 귀여움은 가슴에 담는다.


작년 어린이집에서 한 살 더 먹더니 해 유치원생이 되었다.

가장 어린 씨앗반이다.

매일 아침 민준이의 등원길에도 큰 사거리 신호등이 있다. 다섯 살 민준이가 초록불이 켜질 때까지 기다리며 학원 유리창에 붙은 과 누나의 작품들을 일 감상한다.

민준이는 느새 틈새여유가 몸에 젖어있다.

매사 두르기만 하는 할미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파란불이 켜졌다.

"다녀오겠습니다 할머니"

씩씩한 인사는 또 하나의 숨 쉴 구멍, 나에게 매일의 섕기를 불어넣어준다. 단숨에 깡충거리며 유치원으로 뛰어간다.


내일부 유치원도 방학, 내년에는 며늘님도 육아휴직, 나에게 주어졌던 주 중 육아도 우선 멈춤의 시간으로 더 여유롭게 신나게 보낼 거다.

코가 길어지더니 입꼬리도 올라간다.


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