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질
덮어놓고 엎어놓고 보면 보인다.
기적 같은 일이다.
한참 전의 일이다.
2013년과 2014년을 걸쳐 대구 극동방송에서 구성작가로 일 년 반을 봉사했다.
색깔 있는 찬양이야기 이름하여 색찬이다. 월ㆍ목ㆍ금 오전 9시부터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진행자의 멘트와 라디오 방송 청취자들의 유료문자로 (단문에 # 어쩌고 저쩌고 기억도 가물) 꾸며지는 색깔 있는 찬양이야기들, 인트로와 클로징 멘트 글과 대본, 진행자의 진행대사를 구성한 구성작가였다.
진행ㅇㅇㅇ 구성 박선희
옷쟁이로 성공한 것보다 더 뿌듯했다. 물론 옷쟁이 명성으로 인해 발탁되었지만 옷쟁이를 겸하면서 구성작가로 원고를 작성한다는 건 쉽지만은 않았다. 살림하랴 며느리노릇하랴 딸노릇 매장직원들 챙기랴 사회생활하랴 신앙생활하랴 1인 5역으로 걸린 방광염은 잊을 수가 없다.
꼭꼭 눌러 담은 오줌보를 비우려는데 한 방울만 찔끔, 오줌대신 눈물이 통증을 알렸다. 방광염은 처음 걸려봤다. 통증은 안 걸려본 사람은 모른다. 그 후로 자주 낌새를 느끼지만 곧바로 병원주사와 함께 쉼을 가진다.
힘들었던 기억보다 그때 남긴 사진들처럼 그때의 보람들을 간증한다.
세월이 흘렀지만 액자 속 나는 그대로다.
방송 구성작가인 나에게 신앙 간증하라고 했다. 생방송으로.
이 간증을 하고
살짝 예쁜 치매로 요양병원에서 요양 중이던 친정엄마에게 들렀다. 엄마가 내 간증 방송을 들었을 리 없는데 마치 들은 것처럼 그날따라 내 볼을 쓰다듬어 주었다.
살짝 엄마의 정신이 돌아왔다.
"니가 어쩌다 아들 다섯에 딸 하나로 태어나서... 거꾸로 딸이 다섯이고 아들이 하나였으면 나는 꽃방석에 앉았을 건데... 우리 딸 고마버..."
그날은 간호사들의 만류에도 병실복도에서 밤을 새웠다. 새벽 4시에 새벽기도하러 교회 가듯 그렇게 엄마는 천국을 가셨다.
항상 기뻐하라
또 세월이 흘렀다.
오늘도 감사로 시작하는 지금 이 새벽에도 글을 쓰고 읽고, 또 읽고 또 쓰고있다.
내게 있어 글쓰기는 중독이고 중노동이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한편 이상의 글쓰기를 한다. 1년째 기적이다.
브런치 내 서랍에도, 탭 문서저장 공간에도, 핸드폰에도 카테고리별로 차곡차곡 쌓인다.
이에 질세라 따라붙는 책 읽기는 다독가처럼 어느새 <책 읽는 할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건 자랑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