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행열차 1.

누리로

by 나철여

달려가는 인생, 돌아볼 시간이 많다는 건 뭔가 가까워지고 있다 는 거다.


하루를 완행열차로 시작했다. 나를 지키는 것들과 함께.

이 글 덕분이다.

얼마만인가,

가끔 그랬지만 빠름이 가져다준 느림의 미학이다.



영감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이번 기차여행 친구는 이 책 한 권이면 족하다.

이 책은 영감 부자를 만드는, 하루 한 문장으로 쉽게 읽힌다. 그렇다고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어떤 날은 종일 맴돈다.

매일이 똑같아진 나를 흔들고 뒤집어 깨워준다.


아무튼, 시작이 반이다.

여행의 시작이 평온하다는 건 기차 레일을 멍하니 바라보며 리로를 기다리는 순간부터였다.


무궁화가 누리로로 객차교체 중이라 한다. 탑승장소는 동대구역 중심부가 아닌 서쪽 끝에 있었다.
KTX에 밀린 완행열차 리로 (=무궁화호),
평일엔 출발 직전에도 좌석 차지 할 표가 충분했다.


비둘기호는 무궁화호에 밀리고
통일호는 비둘기호에 밀려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갔다.


'야, 디자인은 물론 기차색부터 갬성이 다르잖아.'
순간, 레트로 감성이 물씬 올랐다.

자리를 잡고 책을 폈다.


별을 보려면 하늘을 보지 마세요. 당신의 발끝 1센티 앞을 보세요. 그곳이 별이에요. 당신도 별에 살지요.

너무 가까이 잘 보이지 않는 지구라는 아름다운 별에 살지요.

우리 눈은 지독한 원시,

가까이에 있는 아름다움은 오히려 잘 보지 못하지요.

가까이에 있는 사람도,

가까이에 있는 행복도.

(영감 달력 중에서)


서서히 움직인다.

동대구역에서 강릉까지 가는 열차다. (포는 동대구에서 강릉까지 딱 반 거리다. 강릉 당일치기를 위한 준비단계로 ,.) 뿌~~~칙폭 칙칙폭폭~~~

시간부자들이 탄 완행열차는
더 바쁘게 달리는 열차 Ktx를 먼저 지나가도록 여유롭게 기다려준다.

KTX는 볼 수 없는 풍경과 동해의 해안선이 문드문 펼쳐진다.
이미 마음은 저 바닷가를 걷고 있다.

오늘은 누리로선희마음 부자다. 역시 마음이 따뜻하니까 영하의 깡추위도 문제없다.


시선이 땅을 향하고 있으면 날개가 있어도 날아오르지 못한다. 길은 바라보는 쪽으로 열린다. (영감달력 2월'길')


아... 겨울바다
음... 바다내음

바닷가에서 행복을 잡았던 손에서는 단내가 난다. 오래전 아주 잠깐 잡았는데 그 단내가 오래간다.


천천히 달리는 기차가 빠르게 느껴진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아이만 남기고

디어를 지우개로 지우세요.

아이 생각으로 돌아가세요. (영감달력이 말을 건넨다)


지금 선희도 아이다. 노춘기 아이. 딱 중간에 있다. 에취!

혼자서는 한 번도 못해 본 기차여행을 한다. 과 함께.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울진 후포로 끊었다. 어라, 경로우대를 해주다니... (착하게 오래 살아야겠다.)

내 손에 들려진 기차표도 놀라고 있었다. 새삼스러울 게 없다. 사춘기 때도 맥락 없이 놀랐던 게 어디 한두 번이었나.

이마 쪽 흰머리가 뒤쪽으로 넘어가니 상상으로도 해 본 적 없는 기차여행을 하고 있다. 어디 숨어 있다가 툭 튀어나온 건가. 선명해졌다.


"선희 씨, 같이 갈려고 했는데 일이 생겼어."

셋째 올케언니의 그 일이 고맙게 느껴졌다.


통화 중의 의미,


"여보, 잘 가고 있지? 완행열차가 그렇게 타보고 싶었어?"

감성이라곤 1도 없는 남자, 아니 환자지... 내가 참지.


(예의를 차리는 것과 표정은 늘 별개였다.)


남편 : "여보, 사람이 갑자기 안 하 하면 죽는다던데..."

나 : '남편, 차라리 제사를 지내셔!'

(하트 뿅 대신 흥칫뽕이다.)


배는 왜 이리 꼬록 대는지
평소 점심은 거의 점만 찍는데 그래도 여행이다 싶어 삶은 계란 귤 두 개 찰떡 한 조각이랑 원두 내린 커피를 준비했다.

삶은 계란을 까먹는데 하필, 앞 옆줄에 군복 입은 군인이...

선희 없음 못 산다는 그 육사생이랑 겹쳐졌다. 오빠들의 찬물 세례로 흑역사가 된 추억... 단지, 군인이란 죄목으로.

기차가 좀 더 천천히 갔으면 좋겠다.

완ㆍ와안ㆍ완행열차로...




한동안 나는 드라마공모전에 빠져 있었다. 법 한번 배운 적 없으니

기***카페도 가입하고, 블로그에도, 스***에도 가입했다.

고배를 마시면 마실수록 문턱이 높아졌다. 한동안 글을 쓸 수 없는 이유가 다분했다.


국문과 나온 딸이 말했다.

"엄마, 그냥 소설 써"


"그냥 소설?"

(소설 같은 내 인생을 소설처럼 쓰란다. 불효막심...)

"배운 도적질이라곤 옷쟁이뿐인데?"

딸 : "그거 얼마나 좋은 텐츤데." (불을 지핀다...)


그 중독에서 헤어나려면 또 다른 충격이 필요했다.

한동안 브런치의 글소통 재미에 빠져 에세이 길들여진 지 딱 1년. 슬슬 소설 쪽으로 기웃거리고 있다. (팔랑귀...)


모픽,

모피도 아니고 모픽에 눈이 번쩍 떠졌다. 픽, 도 이제 알았으니 직 잘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은거 같다. (첫 작품 완독 후 무료라니...) 운 좋게도 첫 작품이 술술 읽혔다.

제목부터 확 끌렸다. [이혼 후 돈벼락]


부부사이에 불륜은 어디나 숨어 있다. 완행열차에도 불륜커플이... 차는 떠났지만 소설은 남는다.

소위작가의 소설 따라가다가

소위, 소설이란 걸 쓰고 있다. 소설 밖, 선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