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행열차 2.

기차는 떠났지만 소설은 남는다

by 나철여

완행열차를 타고 선희는 행복이란 단어를 실감한다. 항복이라 여겼던 행복을.


이번 생에 행복은 없다. 내가 항복한다. 지독한 어린 시절보다 더 지독한 노년을 맞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그런데 웬 떡. 소설 속 선희를 따라가다 소설 쓰는 선희로 행복열차를 탔다. 주름진 내 인생에 미소가 걸린다.




여태 남북통일도 안 됐는데 통일호는 사라졌다.

비둘기호 하면 짐 보따리까지 이고 지고 뽁딱대던 승객들 사이로 욱여넣던 사진들이 떠오른다. 지금은 살만해도 너무 살만 한 세상이다. ktx에 이어 itx마음도 있다.

선희는 무궁화호를 찾았지만 누리로가 나타났다. 같은 몸값으로 체급을 올리고 있는 누리로다. 브랜드가 지방간선 기차에도 붙어있는 줄 몰랐다.


가장 빠른 시간에 올라타야 당일치기가 가능하다.

6시 기차를 타려면 새벽부터 서둘러야 했다. 평소 선희라면 새벽기도를 가는 시간이다. 평생 새벽기도하는 엄마를 흉보다 닮아버린 선희의 새벽기도는 힘든 옷쟁이시절도 거뜬하게 이겨내게 했던 기도줄이다.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닌데 일찍 결혼해 일찍 아들 딸 낳고 딸은 딸 둘, 아들은 아들 둘을 낳고, 낳았다. 항상 '이제 됐다' 싶을 즈음에 또 다른 역경은 찾아왔다. 남편의 폐암 선고다. 너무 기가 차면 혀 찰 노릇이다. 3년은 환자에게 올인, 크게 세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니 선희가 죽을 지경, 온몸이 종합병원으로 세팅되어 있었다. 뇌하수체 종양도 뇌경색도 원인 모르면 신경성이라는 진단을 하는 거 같다. 틀리지만은 않다. 스트레스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 몸이 전투태세로 바짝 긴장한단다. 이러다 선희가 먼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3년이 더 지나고서야 알게 되었다.


또 3년이 지난 지금 9년 차 보호자로 살면서 그 깨달음을 행동으로 옮긴다. '나도 살아야지' 선희는 표정부터 바꾸고 글로 다지기로 했다. 벌써 1년,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부터 생각도 밝아졌다. 기도도 바꿔졌다. 기ㆍ승ㆍ전ㆍ결 기도다.


기, 기쁠 때 감사하고

승, 승리했을 때도 겸손을 구하고

전,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의탁하면서

결, 결론은 늘 하나님이 공평하게 내리실 거라 확신한다.


'어때, 내기도?'

'멋져, 부럽!'


선희의 자문자답은 오랜 습관이다. 터무니없는 비난을 받을 때도 어이없지만 살아남기 위한 자문자답이다.


선희는 가끔 혼자가 되는 날을 상상해 봤지만 남편 두고 혼자 기차 여행을 갈 거라곤 상상도 못 해본 일이다. 계속 이어질 거란 확신도 든다. 동대구역에서 강릉까지의 노선은 선희를 위한 노선이었다.

내려서 강릉 두시간 남짓 오후1시50분 기차를 타면...

차 기름값에 비하면 껌값이다.

'운전대를 안 잡는것 만 해도 어디야.'

늘 남편과 함께 직접 승용차로 운전해 봄꽃놀이며 단풍여행 다니던 선희에게는 그저 호사다.

혼자서? 책과 함께? 기차에서 글 쓰는? 이런 호사가 주어지다니... 이런 용기는 굳이 출처를 따질 이유 없다.

선희는 혼자 행복하다.


출처모를 그림이 내게로 왔다

왜 만날 이유가 없는지 굳이 말 안 해도 선희는 안다. 찌푸린 얼굴로 온갖 넋두리를 늘어놓고 남 탓만 하는 친구를 만나고 나면 기 빨리고, 골프가 잘 안 된다는 둥 주식이 떨어졌다는 둥 자랑만 늘어놓고 자랑이 아니라고 하는 친구를 만나고 나면,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혼미해지기 때문이다.


열차 칸과 칸 사이 연결 통로에 서있는 선희는 찬바람이 차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마음이 따뜻해졌다. 일단 후포는 후덕한 포구라 해석하고 후포로 정하기도 했지만 강릉까지 거리의 딱 반 거리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선희의 용기도 딱 절반.

어느새 후포역 도착했다. 예전 같으면 시계를 몇 번이나 들여다봤을 텐데 벌써 다 왔다. 내렸다.


오롯이 혼자 걷는다.


다음은

강릉까지 당일치기로 정했다. 선희는 그다음이 너무 멀게만 느껴지지만 오늘도 매일 안 쓰는 일기를 매일 쓰며 다독이고 있다.

일기장을 매일 감사로 덮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