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肅
나는 개가 싫다.
개를 싫어하는 이유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개가 무섭다.
예닐곱 살 때쯤 기억이다.
친구집에 놀러 갔다가 벌어진 일이다.
친구 하나가 사다리 놓인 담을 넘어갔고, 따라서 다른 친구들도 담을 넘었다. 나도 따라 사다리를 다시 고정시키고 두 칸을 올라가는데 갑자기 개집에 묶여 있던 큰 개가 내 다리를 물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정확하게 오른쪽 뒷 장딴지를 물었고, 소스라친 고함소리에 친구 엄마가 나왔고, 바로 깨갱 되던 개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집으로 도망치듯 울며 힘껏 달렸다.
5,60년대 5남 1 여로 자라던 나는 우리 집 고명딸이었다.
애지중지하던 엄마에겐 날벼락이었다. 비누도 안 좋다고 보리쌀 삶은 물에 머리 감기고. 수세미 물 받아 스킨로션 대신 해 주던 엄마다.
엄마는 당장 그 집으로 달려가 딸을 물은 개의 털을 잘라와 국자에 참기름 넣고 연탄불에 보글보글 끓여 개에게 물린 자국을 메꿨다. 그 민간요법이 효과가 있었는지 광견병은 안 걸렸다. 아직 흐릿하게 상처는 남았다.
어릴 적 기억치곤 가장 오래 생생하다. 그래서 나는 반려견을 더욱 이해 못 한다. 지금도 산책 나온 개들을 피해 다닌다.
아무리 미화하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 중 하나다.
글을 통해 나의 표정이 읽히고 있다.
언제부턴지 기억은 없지만 무심코 쓴 글이 나를 바꾼 시점부터다.
들켰다 싶으면 도망치던 아이가 아니다.
변명조차 미루고 뻔뻔해지기로 길들이던 억척 아줌마가 된 지 오래다.
허락도 없이 희끗희끗해진 머리카락 사이로 까만 기억 하나가 솟는다.
이건 또 뭐지?...
그 해 4월,
한창 흐드러지게 핀 벚꽃길에서 문득 멈춘 걸음은 '키스', 그의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는 추억 한 방울.
점점 더 번져 나간다.
"선희 씨, 우리 결혼하자!"
"서로 아끼는 것 하나씩 꺼내자."
꺼낸 건 똑같은 독일제 만년필이었다.
그 우연을 하늘이 내려 준 필연처럼 여기고 둘만의 약혼식으로 이어갔다.
그렇게 둘은 결혼을 했다.
그는 외동에 노총각, 선희는 꽃띠. 둘은 홀시어머니 배 아플 정도로 밤낮 뜨거운 사랑을 했다.
허니문 베이비 아들과 연이은 딸,
그 시절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국가 슬로건에 이바지했다.
독일제 만년필의 잉크는 마르기 시작했다.
그동안 써 왔던 사랑에 물을 쏟았다. 주워 담을 수도 없다. 잉크가 번졌다.
아내가 때리면 손이 아프지 않냐고 묻던 무던한 그였다.
평생 손에 물 묻힐 일 없고, 눈에 눈물 뺄 일 없을 거라며, 아무것도 염려 말라하기에 진짜 그럴 줄 알았다.
부도와 부도덕 연이은 무책임은 오롯이 선희 몫이었다.
해마다 그 벚꽃 다시 피지만
기습적 입맞춤은 기억도 가물, 어쩌다 툭 튀어나왔다.
기억이라는 건 쉽게 미화되고 변질되며 사람의 연약한 부분을 건드려 여지를 만든다는 것을, 그 가능성을 믿고 다가갔다간 금세 후회한다는 것을 일전의 경험을 통해 배웠다. by. 박스테파노
나는 무엇을 진짜라고 믿고 싶은가.
그래도
후회는 없다. 사랑이 뭐길래... 아픈 만큼 성숙한단다.
성숙, 성숙, 성숙, 自肅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