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아니라서 그런가

하지만 나는 작가다

by 나철여

뭘 쓰지 하고 고민한다는데

나는 뭘 안 쓰지 하고 고민한다.

오늘도 쓸 게 너무 많아서 고르고 고른다.


글 잘 쓰는 작가는 어떤 고민을 할까

나는 고민이 없다.

잘 쓸 줄 모르니까 고민 없이 그냥 쓴다.


언젠가

역전의 한방이 날아들면 어쩌지, 고민 아닌 고민이다.


심하게 흔들릴 때도 있다. 매일 안 쓰는 결심도, 아예 쓰지 말자는 결심도, 조용한 상승기류를 탄다.




동경과 요코하마의 4박 5일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나리타 공항에 내리니 입춘을 알리는 봄 부슬비가 우릴 조용히 맞았다.

두 시간 반 짧은 비행이지만 새벽부터 비워둔 위장은 아우성, 첫 끼 브런치는 우동끼데스?.

면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신 있게 드러냈다. 이어지는 국물, 국물맛이 면발을 이길 것 같은 예감이다.

토핑선택부터 망설이는 건 마치 글 쓸 때 뭘 넣고 뭘 빼지 망설이는 것과 닮았다. 줄 서있는 뒷사람들에겐 '쓰미마셍'하며, 쫓기듯 눈가는대로 그냥 얹는다. 가끔 너무 깊이 생각하는 건 늘 기대에 못 미칠 때가 많았다. 동경에서의 첫끼는 일단 성공. 비도 그쳤다.


저녁은,

사업가인 일본교포가 우릴 극진히 대접했다. 본 현지인들도 부모님께 효도대접하고 싶을 때 큰 마음먹고 오는 곳이란다. 샤부샤부에 마음까지 사부작 녹아든다.


늦은 시간 5일 동안 묵을 호텔로 왔다. 텔이름이 '아파'다. 아파도 이길 수 있어서 APA Hotel 인가.

체크인하는 동안 일본총리와 트럼프의 만남 요미우리 신문 1면 중앙 헤드라인에 번역기를 갖다 대니

다이단 (기업 이름) 원유와 광물 조달 협력,
대미 1조 엔 초과 투자 합의,
중동 정세 안정으로 일치,
"일본 NATO와 다르다"는 트럼프, 일본 총리평가는 '국제 연계의 한 걸음 내디딜 수 있었다'로 알쏭달쏭 아리까리?한, 미일 정상 회담.

모르겠고, 나는 BTS 광화문 공연이 더 궁금했다.


객실 TV를 켰다. 호텔 주변 안내도 티브이를 켜면 바로 뜬다. 세상이 바코드 시대로 바뀌니 휴대폰이 없는 세상은 상상도 안된다.


그래도

여행은 여행에 집중, 도쿄 하면 신주쿠와 시부야는 가봐야지.

지하철도 타봐야지.

손주들 선물은 보이는 대로 바로 산다.

신주쿠에서 돈 키호테는 이미 관강객들에게 너무 잘 알려져 있어 내겐 매력 없다. 패스.

지하철에서 난 멋쟁이, 찢어진 청바지의 새로운 버전인가, 얼른 찍어 나도 응용해 보기로. 27년 옷쟁이 눈에 들어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이다. 작가병도 생겼다.

브런치 작가 몇 분이 내 머릿속에 늘 따라다닌다. <한국에서 온 남자 일본에서 온 여자> _아호파파 B 작가 <여보, 나 도쿄 갔다 올게>_문정 작가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 씨, 카메라맨 세키네 시로 씨는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려다 목숨 잃은 숭고한 정신과 용감한 행동을 영원히 기리고자 동 일본 여객철도 회사에서 글을 남겼다.

신주쿠역 동판에 새겨진 글을 읽고 나니 같은 한국인의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된다.


도쿄 하면 또 시부야, 시부야역 앞에 위치한 충견, 하치코 동상은 시부야의 상징이자 유명한 만남의 장소다.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아키타견 '하치'의 감동적이고 슬픈 실화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하치는 도쿄제국대학 교수였던 주인을 매일 시부야역에서 배웅하고 마중 나갔다. 주인이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사망한 후에도, 하치는 주인이 돌아오기를 바라며 약 10년 동안 매일 같은 장소인 시부야역 앞에서 주인을 기다렸다.) 충견 동상의 발 나도 만져보았다.

밤에 찍은 일본 도쿄의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점은 여전히 화려하고 낮보다 분주한 모습, 항공샷으로도 찰칵.

인파를 구경하러 나온 인파들은 거의 젊은 외국인들이었다.


다음날도,
또 먹자.

일본여행에서 시는 꼭 먹어줘야지, 왕이면 최고급으로!

평생 못 잊을 맛, 평생 먹을 거 다 먹은셈이다. 평생 기쁠 거 같다.

저녁에도 사시미 정식, 성게알이랑 좋은 생선은 전량 일본으로 수출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때 그 시절 한풀이라도 하듯 고급생선 실컷 먹어봐야지 했다.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30년쯤 뒤쳐졌을 시기, 가깝고도 먼 사이였지만 지금은 거의 어깨를 나란히 한다.


하루일정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고물상, 일행의 재촉걸음 때문에 사진만 얼른 찍고 다음날로 미룬 게 지금도 아쉽다.


다음날,

요코하마 여행 중 빠뜨릴 수 없는 와세다 대학 탐방은 내게 있어 더 특별하다. 일제강점기 저항 시인 윤동주(尹東柱, 1917~1945) 기념비가 있다.

윤동주 시인은 와세다대학에 다닌 적이 없으며, 일본 유학 중에는 릿쿄대학(立教大学)과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学)에서 수학했다고 한다.

하지만, 와세다대학의 오무라 마스오 교수가 1985년 윤동주의 묘를 발견하고 연구를 이끌면서 윤동주와 인연을 맺었다니 기념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지. 기념비에는 시인의 사진, 약력, 그리고 시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쉽게 써진 시'가 한국어 원문과 일본어 번역본으로 함께 새겨져 있어, 그의 문학적 발자취와 평화에 대한 염원을 기리고 있다.


마침 공연장도 개방되어 있었다.

당분간 나의 글 대문사진으로 쓰일 사진 한컷한컷 폰에 담고 나니 부자 된 느낌이다.


요코하마 항구로 가는 날 아침 또 부슬비

비가 오면 비 오는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여행은 여행이니까. 이런 모습은 늘 쫓기듯 살았던 시간들에게 새로운 나를 보여 주는 거다. 패키지가 아니라서 더 좋았다.


저녁은 소고기 화로구이다. 때깔만큼 맛깔스러워 계속 생각날 거 같다. 돌ㆍ밥 돌ㆍ밥 삼시세끼 밥상 안 차리는 것만 해도 어딘데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 싶었다.

한우가 최고라는 고정관념 버린 계기가 되었다. 든든하게 먹어뒀으니 애국심은 더 단단해진 거라 우긴다.


이 나이가 되면 남편은 1도 걱정 안 한다. 십 년 전만 해도 친구들이랑 해외여행한다고 하면 제재가 심했다. 나이 들었다고 무시하는 건지 믿는 건지 모르지만 나도 믿고 있었다. 여하튼, 잘 있을 거라고.


요코하마 기념으로 에코백 하나랑 친구에게 줄 사쿠라 라테를 챙겼다. 그리고 에코백엔 손주들 줄 선물이 오밀조밀 들어있다.



투어 마지막 저녁은 동경에서 온천으로 몸풀기, 노천온천탕 들어가기 전 냉모밀국수와 튀김을 먹다. 덴뿌라가 일본말인지도 모르고 좋아했던 튀김음식도 나이 들면서 자제했으나 이럴 땐 혼또?로 먹는다. 내 몸 구석구석까지 온천으로 매끈해졌다.

매일 아침 현지인처럼 이른 산책으로 호캉스, 눈호강 입호강이었다. 숙소점검 후 마지막 조식뷔페까지 5일 동안 배탈 걱정 없이 믿고 먹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일본 벚꽃의 개화를 뒤로하고 나리타공항으로

어쩌면 제주보다 일본을 더 자주 갈 것 같다. 어딘들 어떠랴! 글 안 쓸 결심으로 남기는 글과 사진. 그래도,


여행은 일단,

가자

찍자

먹자

쓰자

Goodbye 도쿄 요코하마, 아리갓또 고자이마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