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요지부동 속에

숨 쉴 구멍

by 나철여

꼼짝 않고 의자에 앉아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자리를 옮기는데 저분은 오늘따라 굼뜨네.'

'모두가 자리를 뜨는데 뭘 하지?'

그제야 남편이 손짓을 했다.

귓속말로
"나 × 쌌나 봐"
"또?"


너무 다정하면 늘 긴장한다.

유난히 비위가 약해 자동발사 되는 건 나의 찌푸려진 인상이다.

"힘들게 해서 미안해 여보야" 하는 남편에게,
"괜찮아 늘 그랬으니" 하며 직사포를 날려야 속이 풀린다.
풀린다는 건 1% 반성차원일 뿐.

며칠 전, 세탁 후 건조까지 끝내고 빨래를 개다가 남편의 팬티에 이상한 얼룩이 남아있어 혹시나 하고 물었는데 역시나 ×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나왔다나... 그냥 빨래통에 슬그머니 넣어둔 것이었다.
그때 충격이 너무 컸는지, 오늘, 꿈 마지막즈음에 진짜같은 꿈을 꾸다 깼다.

'아무튼, 다행이다 꿈이었으니'






하던 사업을 모조리 접은 것도 남편의 폐암선고 때문이었고, 그때부터 남편의 보호자로 주 중 손주 육아까지 겸하게 된 지 만 7년이다.

나는 부러움 투성이다.
건강했던 남편이 골프채 대신 지팡이를 짚은 그 순간부터다.

3층 중증센터에서 일반 병실로 옮기는 환자의 보호자가 부러웠고,

일반병실에서 먼저 퇴원하는 환자의 보호자가 부러웠고,

입원치료에서 정기적인 외래진단받는 환자의 보호자가 부러웠다.
그렇게 부럽던 외래로 정기 진단받는 환자의 보호자가 되었는데 여전히 부러운 게 있다.


1년 수명을 7년으로 늘렸음에도,

5개 과 (호흡기내과 신경과 순환기내과 비뇨기과 감염내과) 진료에서 감염내과를 뺀 4개 과 진료로 줄였음에도,

혼자서 지팡이 없이 잘 걷는 환자의 보호자가 부럽다.

오랜 항암과 투병의 부작용으로 지독한 손발 저림이 남아있어 어디서든 자주 넘어진다.

암은 보이지 않아 완치판단을 앞두고도 여전히 불안하다.

항상 '이만하면 됐다' 싶을 지점에 찾아온 불행들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항상 지고 사는 게 몸에 베인 터라 부러우면 진다는 말도 낯설지 않다.

실은, 져 준다.

지는 게 이기는 거랬어, 울 엄마가.

자다 깨서 또 이상하고 냄새나는 넋두리를 오래 하고 있다.


친구들 부부가 한 달 동안 크루즈여행을 떠난다고 자랑해도 부럽지가 않은데, 글 잘 쓰는 브런치 작가들을 보면 부럽다. 잉크 찍은 펜촉이 조금만 더 매끈해진다면 이제 더 부러울 게 없겠다.

늦었지만, 그래도 이곳이 숨 쉴 구멍인 게 맞나 보다.

다행이다. 요지부동 속에 숨이 트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