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ft side piggy, Right side hedgie
나에겐 올 여름 고1이 되는(국제학교 첫학기는 여름부터 시작) 예쁜 딸(둘째)이 있다.
중국 천진(天津)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터 아빠를 닮아 고지식하고 차분한 성격인 딸은 크면서도 엄마아빠 속 한 번 썩이지 않은 속이 깊은 아이 이다.
손위 오빠와는 달리 작고 아담하게 태어나 아기 때는 잘 먹지도 않고, 잘 울고 보채곤 했었지만, 아빠를 잘 따르고 애교가 많은 사랑스런 아이 였다.
내가 어디 출장이라도 다녀오면 마치 강아지 꼬리처럼 한쪽 다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한 달음에 기어와 안아달라고 조르곤 했다.
조금 더 커서는 “아빠, 내가 얼마나 보고싶었는지 알아?” 하며 달려와 내 볼에 그 작고 귀여운 입술로 뽀뽀라도 쪽 해주면, 세상 모든 피로와 걱정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
유난히 겁이 많은 아이 이기도 했지만 그런 딸이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물론 우리집 막내이기도 하고 ) 와이프와 나는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같은 침대에 데리고 잤었다.
그러던 어느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를 위해 우리는 별도 침대 방을 꾸며주어 혼자 자도록 방을 내어 주었다.
처음엔 씩씩하게 혼자 자겠다는 아이가 이내 울먹이며 우리 부부의 방으로 들어왔다. “엄마, 아빠 나여기서 같이 자면 안돼? 귀신나올까봐 무서워…”
아이는 한손엔 어릴적 자기 별명이기도 한 핑크색 아기돼지 인형을, 또 한 쪽엔 얼마전 입학 선물로 받은 회색 고슴도치 인형을 꼭 안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우선 아이를 달래보기로 했다. “엄마 아빠가 이렇게 바로 옆방에 있는데 뭐가 무서워. 이리와 봐, 아빠가 귀신 따위는 전혀 무섭지 않을 방법을 알려줄게…”
나는 아이를 다시 방으로 데려가 따뜻하게 꼭 안아준 다음 말했다. “자, 이렇게 반듯이 누워서 왼쪽 머리 맡엔 핑크돼지, 오른쪽 머리맡엔 고슴도치를 놓으면, ‘좌돼지 우도치’ 가 되어 엄마 아빠 대신 너를 지켜 줄거야. 알겠지?“
아이는 한 층 밝고 편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로도 아이는 항상 이 두 인형을 끌어안고 잠이 들었고, 무난하게 독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학교에서 중요한 시험이 있거나, 친구들과 다소 속상한 일이 있을 때에도, 항상 이 좌돼지 우도치 주문의 힘(?)으로 이겨내곤 하였다. 그 간첩보다 더 보다 무섭다는 중2가 되던 해, 우리가족 모두가 중국을 떠나오기 전까지는…
그러던 아이도 중학생이 되고 사춘기에 접어드니 아빠와는 서먹한 관계가 되었다. 나는 그것이 내심 많이 속상하고 아쉬웠지만 와이프의 말로는 그 나이 때는 아빠를 포함한 세상 모든 남자들에 대한 혐오와 거부감이 있을 때니 그냥 정신발작 상태라 생각하고 놔두라는 것이었다. 사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행동을 바꾼다 해도 바뀔 건 없다 싶었지만, 같은 일이라도 엄마한테 하는 태도와 반응이 나와는 180도 다른 것 같아 사실은 알게모르게 무척이나 서운했다.
더구나 직장을 그만두고 처음 이 곳 자카르타에서 구직 활동을 시작 했을 때에는 아이가 이런 나의 상황 때문에 행여 상처 같은 걸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더욱 예민해 질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어쨌든, 얼마 전 아이는 이 곳 새로운 학교에서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했다. 첨엔 나도 그냥 그런가 보다, 그럴 수도 있지 했는데 몇 개월이 지나니 핸드폰 바탕화면도 남친 어린시절 사진으로 바꿔놓고, 주말에도 방에서 소근소근 수시로 남친과 통화를 했다.
‘분명 온 세상 남자들에 대한 혐오와 거부감을 느끼는 거라 했는데…’
와이프랑 둘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이가 이번엔 남자친구를 참 맘에 들어하는 구나 했다. 그래도 두살 터울의 지 오빠는 어려서부터 잘 따르고 막역하게 지내는 편이라, 어느 날 오빠가 아이에게 물어봤다.
“야, 아직 중학생이 연애질 해도 돼? 걔가 그렇게 잘 생겼어? 나보다??“
아이가 생각할 여지도 없다는 듯 대답 했다.
”당연하지!“
듣다 못한 나는 끼지 말하야 할 대화에 무리수를 던지고 말았다.
”아빠 보다도 더??!“
아이가 대답했다.
”아빠, 지금 장난이지?“
…
며칠전 방과후, 그 남자 친구 집에 처음으로 저녁을 먹으러 간다고 전날 저녁부터 어수선을 떨었다. 나는 그것이 내심 귀엽기도 하고, 첫사랑은 이루어 질수 없는 것이라 했는데 아이가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나중에 마음의 상처라도 받으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다.
당일 새벽, 혼자 커피를 마시며, 식탁에
앉아 조용히 업무를 정리하고 있는데,
아침에 학교 갈 준비를 하던 딸아이가 평소와는 다르게 쭈뼜쭈뼜 내 옆으로 다가왔다.
“아빠… 친구 집에 처음 인사를 갈 때는 부모님께 뭐라고 인사를 해야해?”
나는 “아… 뭐 그냥,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하면 되지!
“응, 그럼 나올 때는? 저녁 해주시기로 했는데…”
그럼, ”오늘 저녁 너무 잘 먹었습니다. 다음에 또 인사드릴게요~.” 하고 나오면
되지! 하고 대답했다.
아이는 다시, “아니, 저녁먹고 한 두시간 정도 더 놀다 올건데, 그냥 그렇게만 말하면 되는거야?”
…
아놔! 무슨 상견례하냐?
지 아빠한텐 그렇게 쌀쌀맞게 대하면서…
아마도 시집을 보내긴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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