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음이었다. 세 번째 누락이라 사람들 얼굴도 마주하고 싶지 않다. 성과장은 빠르게 들어와 자리에 앉자마자 컴퓨터 부팅버튼부터 누른다. 곧이어 떠오르는 메시지, “결재 문서가 도착했습니다”.
어제 김 부장을 만나고 나서부터 계속 날파리 몇 마리가 윙윙대는 기분이다. 양손으로 귀를 막아보는데, 이제 막 출근한 듯 민정희가 자기 자리에 서서 눈인사를 한다. 잠깐동안, 눈이 마주치길 기다렸나 보다. 뭐 할 말 있나?
‘이게 뭐지? 마운트업 유니버스? 메타버스에서 아바타로 캠핑하고, 신제품도 써보고…… 집에서 소꿉놀이 하냐?’
‘넥스트 리얼리티와의 긴밀한 협업?’
회사 홈페이지. 사진과 동영상이 가득하다. 자동화 S/W, 대용량 DB, 20년 경력……법인등기부에는…… 주식회사 넥스트 에듀, 넥스트 스포츠앤샵, 상호가 여러 번 바뀌었네? 교육사업, 스포츠용품 판매, 마지막엔 플랫폼 개발업체… 몇 번 망한 회사 인수해서 대충 상호 바꾸고 홈페이지만 얼버무린 거다. 20년 된 건 맞네. 설립연도가 2001년이니. 일어나서 민정희를 쳐다본다. 뒤통수로 뭔가를 말하는 듯.
'제품 3D 모델링, 가상환경 구축, NFT 연동……'
영업 1팀 엄과장 말이 이해된다. 돈지랄도 풍년. 이런 거 만들라고 3억을 쓴다. 그리고 또…… 돈을 어디로 빼돌리려는 건가? 그러기엔 너무 대놓고 하는 바보짓인데. 상장 욕심이 있다 보니 뭔가 후킹 할 만한 걸 찾다가 사장이 후킹 당한 것 같다. 그게 맞다.
그게 맞냐? 정말이냐? 아직 잘 모르잖아. 감사팀이라고 언제까지 지적만 할래. 이제는 순응하자, 순응 좀 해 보자.
사원 송기후가 지나가며 묻는다.
“과장님 뭐 하세요?”
성과장은 일기장 감추듯 재빨리 창을 닫으려다 실패한다.
“뭐예요 그게? 아, 이게 신사업이라는 거구나……근데 누가 집에서 등산을 해요. 스틱대신 마우스 클릭하면 정상이 보이나? 아아… 혹시 등산을 주제로 한 새로운 게임인가? 그럼……”
성과장과 눈이 마주치자, 송기후는 입을 다문채 고개를 꾸벅하고는 사라진다.
찬찬히 심호흡을 해 본다. 다들 차분하게 업무 중인데 혼자만 흔들리는 기분이다. 신입사원 때의 심란하고 망설이던 기분. 모니터가 꺼지면서 검은 화면에 비치는 자기 모습이 너무 어리숙해 보인다. 마우스를 움직이면서 다시 찬찬히 읽어본다.
시니어 매니저, 시니어 매니저, 김세전이는 경영지원팀장이자 인사팀장이다. 사장처럼 밀알 어쩌고 떠벌릴 것이 뻔하다. 차라리 어제 술을 안 먹었으면……글은 안 읽히고 김세전이와 최상견의 굽신거리던 얼굴만 떠오르는데, 누가 옆에서 고개를 들이민다.
"고? 스톱?”
“고!!!"
"이 자식이"
송기후다. 가을 모기도 이보다 귀찮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성과장은 자기도 모르게 일어나면서 송기후의 멱살을 잡을 뻔했다. 순간 십여 개의 눈이 집중된다. 송기후가 황망히 떠나간다.
성과장은 선 채로 그대로 클릭해 버렸다. 빠르게 닫히는 결재화면. 다시 결제창을 열어보지만 자기 이름란 부분은 클릭되지 않는다. 아직 아무도 클릭하지 않은 상태였다. 뭐 때문에 그렇게 조급했지?……모르겠다. 알아서 잘들 하겠지. 요즘 메타버스다 뭐다 난리니까. 뭐 잘 안되면 그것도 자산이고 다른 사업에 참고할 수 있으니까.
다시 윙윙대는 파리소리가 커져간다. 성과장은 마우스와 키보드를 여러 번 두드리며 빠르게 모니터를 활성화시킨다. 일이나 하자. 화면이 밝아지는데, 홈페이지에 새롭게 올라온 공지사항. 보직이동 인사명령.
어제는 안 보이던 이름이 등장했다.
‘전 : 감사팀 과장 성인태 후 : 경영지원팀 과장 성인태’
그는 아무런 안내도 받지 못했다.
오전의 클릭이 감사팀에서의 마지막 업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