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전은 첫 잔 내려놓기도 전에 민정희를 설득해 달라고 야단이다. 지원팀 중 하나는 꼭 필요하다며, 민정희가 팀장은 아니지만 CPA 자격이 있어 적격이라며.
묵묵부답으로 넥타이를 풀어놓는 성과장. 김세전이 애원하듯 말한다
“걔 처음 감사실로 입사했을 때부터 과장님을 큰오빠처럼 생각했잖아요. 과장님이 부사수처럼 여러 가지로 챙겨 주셨고. 우리한테나 그렇지 예전이나 지금이나 과장님 한마디면 껌뻑 죽잖아요”
그때 “낮에는 실례가 많았습니다”라고 말하며 합석하는 최상견. 성인태의 눈이 커진다. 최상견이 뒤통수가 보일 정도로 고개 숙여 인사한다.
“어, 최팀장 이리 와 이리, 요새 비트코인으로 좀 벌었다며?”
“아유, 말씀 마세요. 고생고생해서 번 거 이틀 만에 다 날렸어요”
“그래도 꽤 짭짤했잖아.”
“회사일이나 집중해야죠. 코인이 아니라, 여인이 문제예요 여인. 내가 그 결재 때문에 그 어린애 하나 때문에 살이 쪽쪽 빠집니다.” 나지막이 “참조, 참조…”라고 중얼거린다.
“뭐 방법이 없을까”
“중간결재 안되면, 참조 정도로 얘기하면 어떨까요. 그냥 구색 맞추는 거니까. 사장도 오케이 하지 않을까요.”
최상견이 이어간다. “과장님 저, 하나만 여쭤볼게요. 중간결재도 아니고 그냥 참조란 한 번 누른다고 민과장 CPA 자격에 기스나는 거 아니잖아요?”
“걔가 원래 비협조적이야. 왜 그렇게 새가슴인지 모르겠어, 여자라 그런가”
김세전이 한 마디 덧붙이면서 최상견에게 소주병을 넘겨준다. 최상견은 성과장 잔을 들어 공손히 술을 따르며 말한다.
“우리 성 과장님 반의 반만 따라가도 좋은데…”
김세전이 갑자기 술잔을 내려놓고 성과장을 지그시 보며 말한다.
“근데 성 과장님, 그거……우리 과장님이 해 주면 어떨까. 최팀장 하고 민과장하고 계속 티격태격하는 거 모양새도 좋지 않고.”
“감사팀이 무슨 영업부 결재에 관여합니까”
“그러지 마시고……”
김세전이 목소리를 가다듬는데, 최상견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끼어든다.
“과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그동안 소주나 두어 번 따라드린 거 외에 따로 대접해 드린 것도 없어 면목없습니다. 그런데 과장님, 클릭 한번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어차피 중간결재도 아니고 참조인데요. 정말 송구스럽지만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우리끼리 얘기지만,”
최상견은 소주 한 잔을 자작으로 털어 넣으며 말한다.
“과장님도 아시죠, 사장 그거, 그 새끼가 하도 지랄지랄해서요…아 왜 지가 하라고 해 놓고선 결재 안 하고 밑에 사람들 괴롭히냐고!”
갑자기 목소리가 높아지는 최상견. 곧바로 자세를 고쳐 앉으며 성과장에게 말한다.
“죄송합니다. 과장님, 송구스럽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갈팡질팡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찔러도 바늘 하나 안 들어갈 것 같다던 최상견이가 이렇게 숙이고 나오니 성과장은 약간 무안스럽기까지 하다. 담배나 피우러 가야겠다는 생각에 가방을 뒤적거리는데 “카톡”, 메시지 알림음이 들린다. 민정희다.
‘과장님, 아까는 죄송했어요. 괜히 저 때문에 곤란해지신 것 같아서요. 신경 쓰지 마세요.’
얘는 이런 점이 마음에 든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는 성격. 성과장이 반쯤 일어나면서 “그...”라며 입을 떼려고 하는데,
“그래 고맙다 동기야!”
“이모, 여기 등심 3개 추가하고 시원하게 소맥 좀 말아줘”.
“네!”
김세전과 최상견과 주인아주머니의 삼위일체. 성과장은 무장해제 당한 포로처럼 주저앉는다.
최상견은 물수건으로 자기 잔을 닦아 성과장의 손에 쥐어주며 소주를 따르고 있다. 성과장이 엉겁결에 소주를 마시며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최상견이 벌써 고개를 숙이고는 두 손을 내밀며 소주잔 받을 준비를 한다.
‘얘도 이런 표정을 지을 줄 아나. 약간 근천스런 미소까지 나오네’
‘민정희는 편해지겠지’
‘인사팀장이 부탁한 거니까, 뭐 나중에 기억은 해 주겠지……근데 왜 이리 술이 안 취하냐’
성과장도 웃으며 술을 따라주었고 곧이어 김세전이 “건배”를 외친다. 세 개의 술잔은 그렇게 부딪히고, 부딪히고, 부딪혀가며 품의 이야기를 묻어버렸다. 성과장 승진 이야기는 엊그제 팔린 술처럼, 보이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