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견이 재빨리 자판기에서 음료수 4개를 꺼내 온다. 김세전과 두 개씩 나눠 들고 각자 민정희와 성인태에게 건넨다.
“아까 사장님이 말씀하신 거… 구두승인까지 다 끝난 거 아시잖아요.”
최상견이 민정희의 목에 걸린 펜던트를 응시하며 말한다.
신사업 준비과정에서 필요한 외부업체와의 용역계약 체결건. 최상견이 주도하고 사장이 밀어붙이는 건이다. 3억으로 제법 큰 계약이라 다른 팀도 중간결재에 포함시키라는 것이 사장 지시다.
“신사업 관련 이야기하면 간첩이라면서요. 자기들끼리만 소곤대더니, 왜 일개 간첩한테 부탁해요?” 민정희가 펜던트를 풀며 말한다. 이번에는 최상견의 시선이 목덜미를 더듬는다.
“그냥, 중간결재 한번 부탁드립니다.”
“어떻게 계약하자마자 1억이 나가냐고요, 첫 보고서 받자마자 잔금 다 나가고. 거기 작년 매출이 얼 만지는 아세요?” 민정희가 팔로 머리를 길게 쓸어 넘기며 뒷목을 잡고 말한다.
“역시 민과장님, 다 파악하고 계시네. 그러니까 다들 민과장님만 찾지”
김세전이 말하는데 최상견이 반 발짝 앞으로 다가간다. 텁텁한 숨결이 민정희의 머리카락을 흔든다. 시선이 아래로, 아래로 쏠린다.
“관심 없어요. 그만 좀 얘기하시고……”
“……그리고 넌 좀 꺼져 이 느끼한 새끼야!”
민정희가 손에 든 캔을 쳐든다. 성인태가 가까스로 막았지만 손에서 빠진 캔이 최상견의 얼굴을 때리고 땅바닥에 떨어진다. 입도 안 댄 노란 음료들이 최상견의 구두를 둘러싸면서 하수구에 빠져든다.
“과장 승진하더니 다이나믹해지셨어. 언변도 화끈하시고” 최상견이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는다.
“민과장 왜 그래, 부드럽게 가자고 부드럽게” 김세전이 땅에 떨어진 음료수를 주우려다 말고 말한다.
민정희가 성인태의 팔을 끈다.
“아이, 찌끄레기 건드릴 뻔했네, 성 과장님 고맙습니다. 근데 이 쓰레기들은 누가 치워요?”
“회사가 어디 있어 회사가. 그냥 돈 나오는 ATM이지. 적당히 경력 쌓다가 기회 되면 이직하고, 또 적당한 놈 나타나면 결혼하고, 그러는 거잖아.”
“야, 안 그래!”
최상견이 손수건을 쓰레기통에 내던지며 말한다.
김세전이 최상견을 막아서고는 민정희를 보고 말한다.
“자자, 우리 너무 흥분하지 말자고. 최팀장이 무슨 감정 있겠나, 민 과장이 일 잘하시고 신임받으니까 부탁하는 거잖아”
“매번 하는 소리가 그런 거죠, 다른 레퍼토리 없어요? 왜 맨날 회계팀만, 나한테만 그래요? 다른 팀은 없어요? 감사팀은 팀 아니에요?”
“우리가 무슨 천 원짜리야. 캔 2개 가지고 뭐 하자는 거야”. 민정희는 성과장이 들고 있는 캔도 빼앗아 쓰레기통에 던진다. 캔 머리통이 찌그러지며 게거품을 뿜어낸다. 성과장이 버려진 캔을 쳐다보는 사이, 또각또각또각……구두소리가 점점 희미해진다.
성인태가 바닥에 떨어진 캔을 쳐다보고는, 두 발로 번갈아가며 꼭꼭 눌러댄다. 새로 산 담뱃갑을 꺼내는데, 손바닥으로 탁탁 치는 소리가 시끄럽다.
성인태가 혼자 흡연구역으로 이동하는데 김세전이 따라간다.
“과장님, 오늘 저녁때 바쁘세요?”
“아니요 뭐…”
“소주나 한잔 하시죠. 입사 동긴데, 이런 날 제가 한잔 사도 괜찮잖아요”
“……”
“그냥 오랜만에 동기끼리 한잔 하시죠. 기분도 그런데”
“……그러시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