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한다. 또 악수한다. 축축한 손바닥으로 자리에 앉는다. 의자가 삐걱거린다. 17년 만의 첫 이사. 냉동창고에 들어온 기분이다.
"입사 후 처음이지? 고생하셨어"
어느새 팀장 김세전이 나타나 성과장의 어깨를 주무른다. 손아귀가 은근히 목덜미를 파고드는데 자꾸만 책상 아래로 밀어 넣는 기분이다. 이제 성인태의 바로 위 상사는 김세전이다. 직접 이 부서 기안문도 작성하고 결제도 올려야 한다. 동기, 김세전에게.
"오늘 점심이나 같이들 하시지. 에이스 새로 오셨는데"
그때도 그랬다. 입사 첫날. 사장은 없었지만 임원들이라는 사람들과 점심을 먹었다. 옆에는 김세전. 그들은 군복 대신 양복을 입은 이등병처럼 상사의 숟가락보다 반박자 느리게 움직였다가 동시에 멈추었다. 그런데 김세전은 지금 대대장이 되어 있고 성과장은 아직 분대장이다.
* * *
간장게장과 고등어구이, 소불고기가 테이블 위에 올려진다. 사장님 비서까지 포함해서 경영지원팀 인원이 전부 모였다. 새로 온 성과장까지 8명.
김 부장이 맥주병을 들더니 성과장의 잔에 가득 따른다. 거품은 정확히 잔 끝에서 멈추었다.
"밀알 하나 땅에 떨어지면 열매 엄청 열린다잖아요. 사장님이 아니라 성경 말씀입니다, 성경. 우리 모두 밀알 하는 겁니다. 성 과장님도 오케이? 건배!"
허전한 배속에 찬 맥주가 들어가니 속이 쓰리다. 그러다 고기와 밥이 들어가자 속이 뜨근해지고 눈이 풀린다. 사장 신임 부서라 그런지 법인카드 쓰는 것도 자유롭다. 퍽퍽한 뻥튀기 같은 옛날 과자만 먹다 호텔 과자를 먹는 기분이다.
언제나 말이 많은 송기후가 떠들어댄다. "저는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성 과장님이 저희 팀에 오신 게. 사실, 우리 요즘 너무 바쁘잖아요. 팀장님도 그 이카루스인가 뭔가 신사업팀 일에 빠지셔서……"
김 부장이 눈을 치켜뜬다. 다른 사람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아무 대꾸도 없이 밥만 열심히 먹는다. 갑자기 싸해진 분위기에 맥주만 홀짝대는 송기후.
"그, 부장님도 이번 거 결재에 들어가시는 거죠?"
성과장이 나지막이 김 부장에게 묻는다.
"지금 소속이 어디시죠?"
"경영지원팀입니다."
"그럼 본인 업무만 하시면 됩니다"
김 부장은 어제와 달리 말이 거의 없다. 성과장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가끔 수저를 드는데, 자꾸 스마트폰만 쳐다본다. 무슨 말을 할까 젓가락만 빨고 있던 성과장은 스마트폰을 든다.
'어제는 제가 정신이 없어서 좀 늦었습니다. 월세는 오전에 이체해 드렸습니다'
전송버튼 누르자마자 읽음 표시! 들깨 대신 산초를 들이부은 기분이었다.
6개월 전에 성과장 전셋집의 주인이 바뀌었는데 그게 김 부장이었다. 김 부장 지시를 받으며 이 사람 일을 해주는 데 이 사람에게 월세로 돈도 줘야 한다. 집주인이자 상사, 임차인이자 부하직원. 매월 회사에서 들어온 월급 중 60만 원이 그의 구멍 난 통장을 거쳐 김 부장에게 흘러간다. 집에 가도 회사 책상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연간으로 환산하니 통장이 뜯어지는 것 같았다. 1,440만 원.
'회사에 집중합시다'
김 부장의 메시지. 너나 먹으라는 듯, 덜어준 소불고기가 다시 돌아온 기분이었다. 성과장은 반대편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이 보기 싫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