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업무보고 시간. 사장실 문을 열자마자 에어컨 냉기가 목덜미를 파고든다.
"김팀장은?"
진사장이 뒤에 선 김미진 대리를 쳐다보고 묻는다. 성과장이 내민 보고서는 넘기지도 않는다.
"코로나 확진으로 자가격리 중입니다. 김팀장 대신 보고 들어왔습니다."
진사장이 성과장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의자를 당기고는 보고서를 넘겨본다.
"지난달 채용 현황입니다. 총 3명 입사했고..."
성과장이 꾹꾹 눌러가며 말하는 동안, 진사장은 말없이 볼펜으로 책상만 툭툭치고 있다.
“보고는 됐고, 상장준비용으로 외부 회계법인 모의감사를 받아야 하는데, 거기 TFT 좀 지원해 주셔, 이만.”
쪽지시험 끝내자마자 전국 모의고사다. ‘잘한 건가’라는 질문에 대한 김미진 대리의 대답, ‘아유, 그 정도면 훌륭하죠 그나저나 큰일이네… 송기후도 없고, 팀장님도 안 계시고’. 김대리의 한마디가 여름철 매미처럼 울어댄다. ‘그 정도면, 그 정도면…’
자리에 돌아오자 부재중전화를 알리는 메모지가 책상 앞에 한가득이다. 감사팀장, 회계팀, 외부 회계법인 회계사들……전화하는 와중에 열어본 메일함에는 읽지 못한 메일들 수십 개가 쌓여 있다. 며칠 전에 감사팀으로 이동한 송기후는 통화할 때마다 울기 직전이고, 김미진 대리는 화난 큰누나처럼 소리 지른다.
TFT 회의실에서 이야기하다 감사팀장 옆자리로 호출당하고, 다시 경영지원팀 본래자리에서 전화하고 이메일 확인하고는 사장실 중간 보고 갔다가 외부 회계법인 방문하고……며칠째 성과장은 자기 자리에 앉아 본 기억이 없다. 어느 틈에 자리가 3개가 되었다.
TFT 중간점검일. 회의 시작 40여분 뒤에 나타난 사장은 스마트폰을 책상에 던지고는 회계팀장과 감사팀장에게 소리부터 지르기 시작한다. 인원을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는 둥, 그 돈으로 변호사와 회계사를 뽑아야 한다는 둥 사방으로 손가락질을 해대며 침을 튀긴다. ‘회계법인 다 멍청한 놈들이야, 이 따위 보고서 다 집어던지고 내 말대로만 해’……한참을 누군가를 욕하더니 나중에는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딴생각 말고 이거만 물고 늘어져. 회계사들이 뭐라고 하면 시키는 대로 토씨 하나 틀리지 말고 다 맞춰주라고, 나든 당신들이든 우리가 뭘 알아, 전문가 말 들어야지. 성 과장하고 민정희는 좀 튀지 말고!! ’ 누워서 침 뱉다 발 만지고 얼굴 닦는 인간이다.
* * *
3주 뒤, 모의감사 결과보고를 마치고 경영지원팀으로 돌아오자, 김세전 팀장이 새로운 명함을 건넨다.
“사외이사들이 꼼꼼하다고 저런 인재가 왜 아직 과장이냐고 엄청 칭찬을 하셨다더만. 사장님 지시사항이야. 일단 부팀장 찍힌 명함으로 바꿔주래”
김세전은 성과장의 자리를 자기 앞으로 옮기도록 지시한다.
“자리도 바꾸고, 앞으로 사장님 보고 들어갈 때는 같이 갑시다, 부팀장님”
김미진 대리가 새로운 명함을 성과장 자리에 올려놓는다. 지갑에 새로 들어가는 명함들이 제자리 찾았다는 듯 달라붙는 기분이다.
"조만간 명함 다시 파야 되잖아? Senior Manager로"
"그건 내가 직접 파드릴 거야. 금장 박아서."
김세전이 웃으며 나간다.
“금장 말고……난 차장이면 되는데……” 엄과장이 흥얼거리며 다가온다.
"들었냐? 이카루스팀 확장한다는 거”
"뭐라고?"
"김팀장이 거기로 간다는 소문이 있어. 김팀장, 요새 이카루스 관련 회의 맨날 들어가잖아.”
엄과장이 책상 위에 성과장의 명함을 들더니 ‘부팀장’ 부분을 톡톡 치며 말한다.
“지금 이 ‘부 뭐시기’가 중요한 게 아니야. 징검다리 만드는 거야. 경영지원팀장 자리 빌 때 대비해서.”
“헛소리 그만하자. 정신없다” 성인태가 엄과장이 들고 있는 명함을 뺏으며 말한다.
“헛소리인 건 알고 있냐. 그래도 기분은 좋잖아, 나도 좀 끌어주라” 엄과장이 돌아가며 말한다.
성과장은 달력을 확인한다. 승진발표까지 8주. 한 달 전만 해도 밀어내기 당하는 기분이었는데, 로프 반동받은 것처럼 다시 앞으로 튕겨나가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