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전 부장은 한 번도 안 왔지요? 사장은 말할 것도 없고”
“그렇지 뭐”
”직원들이 회사 회식 때마다 여기로 오자고 난리도 아니에요. 근데 김 부장이 매번 반대해요. 아주 쌍심지를 켜요.”
인태는 김세전이 보낸 주택 전세계약 갱신거절 문자를 찾아본다.
“왜 그런지 몰라. 이 가게에 뭐 문제 있나”
“……”
“정희 씨, 나 먼저 진아랑 들어갈게요. 우리 진아아빠, 응원 좀 많이 해 주세요”
“네, 언니 또 봬요. 진아도 안녕”
마운트업 경력직원 둘만 남았다. 민정희는 터질 것만 같았던 회사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 * *
추석 연휴를 일주일 앞둔 9월 초. 며칠째 진하게 퍼붓던 비가 그치고 맑게 갠 가을 하늘 위로 가슴은 부풀어오를 것만 같다. 회계팀, 업무지원팀 직원 몇몇이 생맥주 한 잔씩하고 있다. 여직원 하나가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는데, 이틀째 안 보이던 사장이 어기적거리며 걸어오더니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옆에 있던 민정희가 깜짝 놀라 몸을 움츠린다. 진형세는 마운트업 사장답게 탄탄한 하체를 들이민다. 진한 소주 냄새가 확 풍겨온다.
반대편 남자 직원이 일어나며 “사장님, 안쪽으로…”라고 하자 진형세는 “앉아 앉아, 번거롭게 뭘, 여기가 회산가”라고 하더니 민정희 잔에 맥주를 따르며 말한다.
“나도 한잔 줘야지”
“그래, 주고받아야지. 오는 정, 가는 정”
김세전이 추임새를 넣듯 말하고 민정희가 마지못해 따라준다.
“와 시원하다”
한잔 다 마신 진형세는 민정희 젓가락을 집어 음식을 먹는다. 젓가락을 빨아대다 민정희를 쳐다보며 ‘히히, 히히히’ 웃는다. 그러더니 넥타이를 풀어내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본다.
민정희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노려보자 사장이 말한다.
“내가 너무 질척거리지? 알아, 나 문제 있는 거. 그런데 말이야, 후우……우리 딸내미가 보고 싶은 건 어떡하면 좋냐. 민과장만큼 이쁜, 시카고에 있는 우리 딸. 얘가 요새 전화를 안 받네? 전화 열 번 하면 오는 게 “I’m Okay” 이게 다야. 그 위의 아들놈이랑은 언제 통화했는지도 모르겠고……얘들 엄마는 사실, 이제는 얼굴이 잘 기억이 안 나.”
‘또 감성팔이 하고 있네’
‘근데 이게 진짜……’ 진형세가 말하면서 슬며시 다리를 벌려 앉는다. 매일 러닝 한다는 그의 두껍고 느끼한 허벅지가 짓눌린다. 민정희는 당장이라도 일어날 기세다.
"요즘 나 같은 인간을 ATM이라고 한다며? 그래, 내가 바로 그 현금 자동출금기야. 현금출금기. 여러분들이 열~씸히 일해서 준 돈, 다 미국으로 넘어간다!! 히히, 그건 미안. 근데 말이야, 내가 가져가는 건 별로 없어. 그건 알아줘야 되는 거야!"
"내가 지난겨울 미국 가서 뭐 하고 온 줄 아냐. 매일 눈 치우고 강아지 똥 치우다 왔다. 보름동안 식구들 얼굴 한 두세 번 본 거 같애. 나, 너무 불쌍하지 않냐. 안 그러냐 민정희 과장님아”
한참을 떠들던 진형세가 이마를 테이블에 붙이고 숨을 헐떡인다. 김세전이 슬며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간다. 벌떡 일어난 진형세가 따라가더니 양 팔로 김 부장의 목을 잡고 뛰어올라 그의 등에 올라탄다. 김 부장은 잠시 휘청거렸지만 한 두 번 있는 일이 아니라는 듯 자세를 고쳐 잡으며 진사장을 들쳐 올린다.
“어이, 우리 동지끼리 뭉쳐야지 어디가. 김 부장도 혼자 살잖아, 작년에 이혼했다며?”
갑자기 신이 난 듯 진형세는 다리를 흔들고 상체를 들썩거린다. 김세전의 등이 더 구부러진다.
“근데 말야, 이혼은 한 거야 당한 거야? 나도 대비 좀 해야 할 거 같아서… 히히”
김세전이 허리를 세우자 그의 등에서 미끄러진 진형세가 휘청거린다. “에이 씨…” 입술이 움찔거리던 김세전이 한마디 한다.
“당했습니다. 됐습니까. 퇴근하면 소파에서 TV나 보고 있고 뛰어나오는 건 개새끼밖에 없고, 이 여자는 아침에 애들 밥도 안 차려줘요. 나도 ATM이었고 밥 지어주는 기계였다고요”
“니가 바람 폈잖아, 근데 뭐”
김세전이 울먹거리자 진형세가 그와 어깨동무를 하며 말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동지야. 불우이웃 동지”
민정희가 가방을 챙겨 들고나간다. 직원 몇 명이 따라나간다. 진형세가 팔을 잡자 민정희가 뿌리치며 말한다.
“네네, 불우이웃 인정해요. 힘드시겠죠. 근데 본인들 불쌍한 건 아는 분들이 왜 다른 사람은 모른 척해요? 이런 회식, 성 과장님 댁에서 하면 뭐 문제 있어요? 요새 장사도 어렵다는데 그런 분들은 눈곱만큼도 생각 않는 사람들이 왜 되지도 않는 감성팔이예요?”
“맞아요, 거기 자리도 넓고 볼거리도 많아요.”
“우리 가면 서비스 안주도 많이 주시는데”
직원 몇몇이 맞장구친다.
“시끄러!”
김세전이 갑자기 소리친다. 모두들 놀라서 말이 없다.
“자자, 이러지 말고 우리, 성과장 가게 가서 2차 하자. 어때 민과장, 좋지? 전화해 봐, 지금 우리 간다고”
진형세가 또 신이 난다는 듯 말한다.
“안가, 안 간다고!! 내가 거길 왜 가”
김세전이 자리에 주저앉으며 소리친다. 소주를 한 잔 따르더니 마시려다 말고 울기 시작했다.
누군가 다가가 김세전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한다. “그만 우시고…근데 왜 그렇게 성과장네 가게만 가자면 싫어해요…” 김세전은 대답 없이 계속 흐느낀다. 진형세가 다가가 말한다.
“김팀장, 왜 그래, 술 많이 먹었어? 오늘 우리집 가서 잘까?”
한참을 울던 김세전이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말한다.
“그 가게, 우리 아버지 가게였어.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