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나 돌멩이나 거기 있으면 날리고 밟히는 거지

by lightjc

민정희의 말을 듣고도 인태는 놀라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걸 보냈구만”

인태가 스마트폰으로 캡처된 ‘상속 한정승인 결정문’을 보여준다.

“이게 뭐예요”

“이 가게가 어떤 할아버지 소유였는데 얼마 전 경매에 넘어갔거든”

“경매라고요? 그럼 장사는 어떻게 해요? 보증금은요?”

“이리저리 알아보고 있는데, 그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고. 알아보니 그분 아들이 김세전이었어.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지. 아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전화해도 받지를 않더라고. 그래서, 당신이 상속인이니 내 보증금도 당신이 돌려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문자를 보냈더니…이런 것만 보내왔어. 자기는 책임 없다는 거지”


“나쁜 새끼. 과장님 보증금이고 월세고 그 할아버지 생전에 김세전이가 다 챙겨갔을 거 아니에요?”

“그랬겠지. 내가 바보지. 진아 엄마한테는 얘기도 못하고 있고”

막걸리가 다 비워졌다. 민정희가 소주 하나를 가져와서 인태에게 따라준다.


“감사팀장한테 매일 욕먹던 송기후는 김세전 부장한테 매달리는가 싶더니 어느 날 퇴사했더라고요. 친구가 하는 스타트업에 이직했다고 하고……그리고 최상견씨… 원래 무슨 캐피털인가 금융권에 있다가 우리 회사 들어왔잖아요. 다시 거기 가서 근무한다더니 요즘에 또 사장하고 통화 많이 한대요. 주로 경매 관련해서”


“빨대 꽂아 넣는 거겠지. 누구 하나 또 나자빠지겠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인태가 혼자 소주를 마시는데, 말없이 막걸리잔을 이리저리 돌리던 민정희가 말한다.

“죄송해요 과장님”

“뭐가?”

“결국 이렇게 됐네요. 최상견은 다시 사장 옆에 붙고, 과장님은 이렇게 되시고…… 시작이 저 때문이잖아요. 표창장 받으시던 날……제가 감사팀은 팀 아니냐고 쓸데없는 말을 해서. 그 한마디 때문에 과장님이 저 대신 결재 떠안으시면서 퇴사하시고 경매당하고……”


인태는 한동안 손에 든 소주잔만 바라본다. 민정희는 입술이 바짝 마르는 것 같다. 차라리 비난이라도 해 줬으면 좋겠다는 심정이다.


“뭐, 나비효과 도미노효과 이런 거 말하는 건가.”

“전부 이기적인 인간들이에요. 저도 마찬가지고. 그 사람들이 저를 엮으려 하길래 감사팀은 팀 아니냐며 옆에 계셨던 과장님을 끌어들인 거죠. 전부 똑같아요.”

민정희가 고개를 숙이며 양 팔로 머리를 감싼다.


“정희 씨, 여기까지 오다 개미를 몇 마리나 밟았을까?”

“네?”

“개미 밟은 게 민정희 씨 잘못인가”

“......”

“그냥 개미가 그 자리에 있었던 거지. 당신은 거길 지나간 거고.”

“누구도 뭐라 안 해. 사실, 아무도 관심 없어”

“그래도……”

“그런 거야. 개미나 돌멩이나 거기 있으면 날리고 밟히는 거지”

“……”

“이제 가셔야지. 다 본인들 문제니까. 신경 쓰지 마시고”

“정말 죄송해요”

“뭐, 어떻게든 되겠지……일어납시다”


민정희가 떠난 후 가게는 문이 닫히고 안에서 불이 꺼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인태가 혼자 어두운 골목을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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