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by lightjc

오늘도 늦게까지 누워있는 인태.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각방을 쓰고 있는데, 인태의 방에서는 이제 막걸리가 아니라 소주 냄새가 빽빽하다. 전기청소기로 방문 앞을 밀고 있는데 “쿵” 하며 뭔가가 문에 부딪힌다. 곧이어 들리는 “시끄러!”하는 괴성. 전기청소기를 끈 세진은 거실 소파 쪽으로 걸어간다.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전화를 하려다, 문자 메시지를 남긴다.


‘어머님 정말 죄송한데, 언제 저희 집에 한번 와 주실 수 있나 해서요.’

세진은 전기청소기 대신 걸레를 들고 집안을 닦기 시작한다. 몇 분쯤 지나 다시 스마트폰을 보지만 아무 응답이 없다. 스마트폰을 덮고 다시 걸레질……


‘어디든, 나가는 게 좋을까? 진아 데리고 친정이나 갈까?’


이리저리 생각을 하다 한숨을 내쉬는데 답장이 온다.

‘그래, 그러지 않아도 할아버지 하고 한번 가려고 했어. 지금 출발한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인태가 방문을 열고 나오더니 물을 마시고 있다. 세진이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인태가 말한다.


“뭘 쳐다봐?”


세진이 묻는다.

"다 끝났어요?"

"뭐?"

"화풀이 시원하게 다 끝났냐고요!”

“뭐라고 떠드는 거야. 미쳤냐?”


세진은 바닥을 훔치던 걸레를 던지면서 말한다.

“사람들한테 화풀이 실컷 하고 있냐고! 아직 다 안 끝났냐고!"


"이게... "

인태는 세진의 멱살을 휘잡는다. 티셔츠가 구겨지고 브래지어 끈도 튀어나왔다. 상체가 심하게 흔들리는 세진은 똑바로 인태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바뀐 게 뭔데. 사람들 때려놓고 합의한다고 아버님 통장이나 거덜내고.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당신한테 잘못했다고 빌었어? 그 회사가 당신을 받아주기나 했어? 회사는 계속 잘 돌아간다며...... 나갈 사람 나가고 들어올 돈 계속 들어온다며. 도대체 뭐가 바뀐 건데! 우리 보증금은 어디 있는데! 가게는 어떻게 할 건데! 우리 진아는 도대체 어떻게 할 건데!"


멱살 잡은 손으로 그대로 세진을 밀어버리는 인태. 숨도 안 쉬고 다시 다가간다. 세진을 잡아 일으킨 인태는 두 손을 더 힘껏 치켜든다. 세진의 얼굴이 시뻘게지는 순간, 손을 놓고 뭐 집을 거라도 찾는 듯 고개를 좌우로 돌려본다. 두리번거리다 벽에 등을 바짝 대고 굳어 있는 진아를 발견한다.


성큼 걸어간 인태는 벽에 걸린 가족사진을 떼서 들어 올리더니 세진을 돌아본다. 세진이 벌떡 일어나 달려가다 넘어지며 인태의 다리를 붙잡는다.


“이건 아니잖아, 이런 건 아니잖아 진아 아빠 미안해, 잘못했어”


다리로 팔을 밀어내며 두세 걸음 물러난 인태. 세진과 진아를 번갈아 쳐다본다. 진아는 소리도 못 내고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것 같은 동그란 눈동자로 쓰러진 엄마를 쳐다보고 있다. 액자가 한 번 더 위로 솟구치는 순간, 세진은 고개만 쳐든 채 인태를 바라본다. 인태의 눈이 시뻘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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