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계획이 있다

by lightjc

오전 10시 29분.


양직은 알람 울리기 1분 전에 일어났다. 정신이 팽팽한 빨랫줄처럼 긴장되어 있는 상태, 뭔가 앞으로 치고 나가는 것 같은 기분! 제로백 2.5초의 스포츠카를 타면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고아원을 처음 나왔을 때가 그랬다.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래서 홀가분했고 생각지도 않게 자립지원금이니 무슨 후원금이니 해서 700만 원을 거머쥐게 되었다. 그 후로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 번도 고시원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힘들었지만, 너무 힘들었지만, 그만큼 생각과 행동도 빠르고 분명해졌다. 고시원에서 원룸을 거쳐 아파트 전세를 얻자는 목표는, 원룸이고 뭐고 그냥 조그만 연립주택 하나 사자는 것으로 바꿔버렸다. 고아원, 고시원, 원룸, 전세…… 남의 그늘 아래 있는 것은 다를 바가 없었다. 무엇이든, 자기만의 공간을 갖고 싶었다.


세계위인전집에서 일하는 동안, 미끄러운 구름 같던 이런 생각들이 점점 반짝이는 차돌멩이로 만져지는 것 같았다. 월급에, 택시비에 추가봉투에, 가욋돈도 쏠쏠했다. 그리고, 그 지하층……사장이 1층을 맡고 자신이 지하 1층을 전담하게 되면서 쌍둥이 자매들을 부리는 동안 갑자기 사장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반짝이며 움직이는 5개의 통들이 그를 가장 높은 금빛으로 이끌어주고 있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젠장할. 뭔 놈의 경매라는 것에 걸려가지고…어느 하루 혼자 소주 마시며 연립주택 꿈은 멀찍이 뒤로 미뤄 버렸다…… 어쨌든 빨리 빠져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었다. 세상에 나와보니 자기 형편 모르고 다른 사람 생각하는 어리숙한 인간들이 많았다. 운 좋게 그런 사장 만나서 월급을 올려버렸고, 그걸로 새로 취직해서 결국엔 통장에 5,000만 원을 찍었다. 가게가 바로 망해버려서 숫자들이 다시 미끄러진 건 너무 허탈했다.



어제는 새벽 3시쯤 들어왔는데 너무 피곤해서 새우깡 몇 개를 곁들여 소주를 딱 반 병만 먹고 4시쯤 잠들었다. 점심 배달 시간에 맞춰서, 오늘도 11시 조금 넘어서 일을 시작했다. 얼마 전 일로 이마 쪽이 부어올라 헬멧을 쓸 때마다 망치로 짓누르는 느낌이 불편했다. 옆구리도 좀 결리긴 했지만 큰 이상은 없다고 하니, 이만하면 다행이었다. 감사팀 근무했다는 인간이 계약을 어설프게 해서 자기 사업 말아먹고 내 꿈까지 뭉개 버린 게 너무나도 병신 같았다. 그래도 본인이 쓸데없이 말이 많았고, 자식 이야기까지 해버린 것에 대해서는 솔직히 할 말이 없었다. 그걸로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하니 홀가분했다.


며칠 전부터 성사장이 보인다. 볼 때마다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데, 약간 안쓰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래도 계산은 해야지. 미끄러진 숫자들은 계속 올려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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