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희는 멍하니 5개의 통을 바라본다. 성 과장님을 회사에서, 전셋집에서, 상가에서 내쫓고 인생을 거덜 냈던 인간들이다. 그건 알겠는데, 나는 왜지? 난 뭘 잘못했지? 여기서 뭐 하라는 거지? ……민정희는 고개를 흔들더니 뒤돌아 앉는다.
얼마나 됐을까. 몇 시간이 지났을까 아니면 하루가 지났을까…… 아늑함이고 뭐고 점점 정신이 막걸리처럼 혼탁해진다. 왜 들어왔는지는 나중에 생각하자. 일단 나가자. 그녀는 두 손으로 자물쇠를 잡고 뚫어지게 쳐다본다.
인생을 초기화시킨다?
0000
끝?
9999
2848? 1818? 8949? 4949? 7777?
아무거나 눌러본다.
제길, 뭘 눌렀는지 기억도 안 난다.
성 과장님 입사일? 퇴사일? 생일?
내 생일?
사장 생일??
일리가 없고.
그래도 눌러보지만, 역시 그럴 리가 없다.
생일!
이건 진아가 제일 좋아하는 사자인형 자물쇠!
그래, 과장님한테는 딸이 최고니까.
그래도,
나에게는 기회를 주셨겠지.
나는 저 앞에 있는 5개 통들과는 다르잖아. 나한테는 저런 펌프 같은 것도 없잖아. 나는 다른 취급이잖아. 나한테는 자물쇠를 주셨잖아. 열어보라는 뜻이잖아…… 11월 2일, 그래 11월 2일이었어.
1,1,0,
2.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