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작 그만!

by lightjc


“전부 그만!”


번쩍이던 불빛과 소음들이 일제히 꺼진다. 어둠 속에서 진형세가 소리친다.

“세전아, 너 펌프질 100번 하는 동안 몇 방울이냐 먹었냐. 너 2방울 먹는 동안 주양직이 저놈은 버리는 막걸리가 한 통이야. 왜 죽 쒀서 남 주냐. 전부 그만해. 아무것도 하지 마!”


김세전이 힘없이 대답한다.

“바뀌는 건 없어. 이대로 기다리는 게 답이야......”

최상견이 다시 손잡이를 잡으며 말한다.

“아무것도 안 하면, 우리부터 먼저 죽는 거야. 정신 차려 인간아”


“펌프질 해도 우리부터 죽는 거야, 정신 차려 인간들아!”

“막걸리는 1, 2번이 다 먹고, 그전에 니들은 체력 바닥나서 먼저 쓰러질 거고. 집행관 오기 전에 니들부터 말라죽는 거라고!”


“집행관 오기 전에?”

“집행관 오기 전에 우리부터 죽는다고?”

최상견이 소리치고 김세전이 펌프 손잡이를 잡아 뽑듯 당기며 말한다.

“안 해”

“그래 안 해”

“그래 전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거야. 버텨보자!”

최상견, 김세전, 진형세가 주저앉아 버린다.


“그래라, 바보들아.”

“니들은 굶어 죽기 전에 숨 막혀서 질식해 뒤질 거야”

주양직과 차영치가 대답하며 펌프질을 시작한다. 그런데, 펌프 손잡이가 잘 내려가지 않는다.

“이거 왜 이렇게 뻑뻑해졌냐”

차영치가 팔에 힘을 주고 손잡이를 내리며 말한다.

“야, 난 지금……몸통으로 누르고 있어”


펌프 손잡이가 쇳덩이처럼 무거워졌다. 최상견이 웃으며 말한다.

“멍청한 것들. 5명이 누르던 걸 2명이 하니 힘든 게 당연하지”


차영치도 몸통으로 손잡이를 누르며 말한다.

“아유, 아래 사장님들, 같이 살아요.”

“웃기지 마! 한번 내려가면 끝이야. 계속 버텨!”

주양직이 소리친다.


“니들 둘만 하니까 몇 배는 더 힘들지? 더 느껴봐라 이것들아”

진형세는 처음보다 더 목소리가 커졌다.


한참 동안 금빛과 보랏빛 통만 반짝거렸다.

“아, 목말라 뒤질 것 같아”

주양직이 관에 입을 대고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차영치도 펌프질을 그만두고 관을 물고 있다.


“막걸리를 그렇게 마셔댔으니 목이 더 마른 거지. 먼저 말라 뒤지는 건 저놈들이다.” 최상견이 강의하듯 떠벌린다.


“빨리 말라 뒤져라, 막걸리 아끼게”

김세전이 덧붙이는 사이, 진형세는 살짝 펌프질을 하며 막걸리로 목을 축인다.


한동안 떠들던 최상견, 김세전, 진형세가 조용해진다. 숨이 막히는 듯 헐떡거린다. 주양직, 차영치의 펌프질도 현저히 느려졌다.


흐르는 막걸리는 줄어들어도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언젠가부터 5개의 색깔들이 이리저리 뒤바뀌며 깜박거리더니, 불빛이 점점 희미해져 갔다.



* * *



주양직은 ‘나 사장이야, 이놈들아 술 가져와 술’하고 소리 지르더니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펌프를 눌렀다. 팔에 힘이 풀리며 손잡이에 얼굴을 부딪히더니 그대로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그 후, 차영치는 한 번도 펌프를 누르지 못했다. 잘근잘근 관만 물어뜯더니 그대로 쓰러지고……그렇게 금빛과 보랏빛이 사라져 버렸다.


손잡이를 거꾸로 잡고 ‘집행관, 집행관’을 중얼거리던 최상견은 몇 번 펌프질 해서 막걸리를 오물거리다가 다 뱉어버리고는 주저앉아 버린다.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3개의 불빛이 사라지자 백색과 회색통이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파업이고 연대고 없다. 진형세는 선두를 고수하기 위해, 김세전은 원래 자리를 되찾기 위해 손바닥이 벗겨질 듯 손잡이를 잡아당기고 누른다. 펌프질 소리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갑자기 진형세가 펌프질을 멈춘다. 가늘게 흘러내리는 막걸리만 받아먹고 있는데, 계속 펌프를 눌러대던 김세전의 입에서 맑은 신물이 쏟아진다. 한동안 혼자서만 펌프질 했던 것을 알게 된 그는, 허탈하게 웃으며 주저앉아 버렸다.


혼자 남은 진형세는 그대로 앉아있었다. 그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한동안 펌프질을 하지 않아 체력을 비축했고, 틈틈이 몰래 펌프질을 하면서 배도 채웠다. 그런데 숨이 좀 차올랐다. 갑자기 구토가 시작되면서 다 토해내었다. 냄새가 너무 싫었다. 뚜껑을 밀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냄새는 가시지 않고 이상한 가스 때문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펌프를 누르지만 1cm도 눌리지 않는다. 주양직, 차영치, 최상견, 김세전처럼 한동안 소리 지르고 손잡이에 올라타고 관을 이빨로 씹어대던 진형세는 마지막 펌프질에서 미끄러져 유리벽에 머리를 부딪히고는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5개의 막걸리통은 더 이상 반짝거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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