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의 인파 속에서도, 혹은 모두가 잠든 퇴근길의 정적 속에서도 문득 세상의 모든 불이 꺼지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것은 단순히 빛이 없는 어둠이라기보다, 발밑에서부터 차오르는 끈적한 늪에 가깝다. 보이지 않는 사방을 향해 팔을 휘저어보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오직 서늘한 공기와 깊이를 알 수 없는 막막함뿐이다.
한동안은 이 지독한 어둠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줄 알았다. 이제 겨우 뭍으로 올라와 마른 땅을 밟고 있다고 믿었는데, 불청객처럼 찾아온 우울은 예고도 없이 나를 다시 허우적거리게 만든다. 육교 위를 지날 때면, 난간 너머의 허공이 유독 달콤해 보일 때가 있다. 저 아래로 나를 던져버리면, 나를 짓누르는 이 모든 어둠과 소란으로부터 단번에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위험한 유혹이 발끝까지 차오른다.
하지만 그 끝없는 낙하의 상상을 멈추게 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내가 지켜야 할 얼굴들이다. 집 현관문을 열기 전, 혹은 약속 장소에 들어서기 전,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낡은 비상용 손전등 하나를 꺼낸다.
두 손으로 꼭 쥐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로운 빛이지만, 나는 그 빛을 내 얼굴에 비추며 어둠의 흔적을 지워낸다. 가족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고, 사람들 속에서는 평범한 농담을 던지며 내 안의 늪을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손등에 힘을 주어 손전등을 꽉 잡는 그 행위는, 어쩌면 나를 감추기 위한 기만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나의 마지막 배려이자,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처절한 사투다.
비상용 손전등의 건전지는 영원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나는 매일 밤 그것을 충전한다. 온 세상이 깜깜해질 때마다 내가 켜는 것은 단순한 전등이 아니라,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에게 무사히 도착하고 싶다는 간절한 의지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어둠 속에서 손전등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무거운 육교를 건너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