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잠든 얼굴 위로 "사랑한다"는 말을 내려놓는다. 신생아 시절부터 습관처럼 건네온 이 말은 실은 아이에게 주는 선물이기보다, 하루를 간신히 버텨낸 나 자신에게 거는 주문에 가까웠다.
"00이 아빠가 사랑해요, 00이 아빠 아들이어서 고마워요, 00이 아빠 보물이에요"
이 한마디를 뱉고 나면 비로소 전신을 짓누르던 '가장'이라는 외투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곤 했다.
문득 깨닫는다. 아빠로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누군가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은 흐릿한 수채화처럼 번져간다. 가족의 안녕을 위해 내 감정의 순번을 자꾸 뒤로 미루다 보니, 어느새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그저 듬직해야만 하는 '역할'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럴 때면 오래전 아버지가 보인다. 어린 시절, 장난감 코너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끝내 빈손으로 나를 이끌던 아버지의 거친 손마디가 이제야 아프게 읽힌다. 그때의 나는 아버지가 인색하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그 자리에 서보니 알겠다. 갖고 싶어 하던 아들의 눈빛보다, 사줄 수 없는 형편을 삼켜야 했던 아버지의 마음이 몇 곱절은 더 너덜너덜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내게 아무렇지 않게 주어졌던 평온한 저녁 식사와 따뜻한 잠자리는, 아버지가 매일 밤 어둠 속에서 홀로 감내했던 무수한 포기와 침묵의 결과물이었다.
퇴근길,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얼굴 위로 낯익은 주름이 겹쳐진다. 젊었던 시절의 아버지와 지금의 내가 닮아가는 것을 보며 생각한다. 어쩌면 인간은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 아버지가 되는 먼 길을 돌아오는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여전히 아빠 품이 그리운 어린아이이면서, 동시에 내 아이의 세상을 지키는 단단한 울타리여야 한다. 내 안에는 서러운 아들과 강인한 아버지가 한 방에 살며 서로를 보듬고 있다.
오늘 밤도 아이의 작은 손을 잡으며, 나는 나지막이 내 안의 아버지에게 안부를 묻는다. 당신도 이토록 고단하고, 이토록 눈물겹게 행복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