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다. 고요한 공기를 선호하던 내가, 긴 침묵에 숨 막히는 그런 날이 있다.
습관처럼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틀 때면 신나는 가요보단 감성적인 노래를 찾아 듣는다. 하지만 그런 취향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대개, 20대는 밝고 신나는 노래를 들을 거라는 편견 아닌 편견을 보이기에. 물론 나 또한 기분에 따라 신나는 노래를 찾아 듣기도 한다. 다만 취향과 그날의 기분은 다른 것이다. 잔잔한 노래, 감성적인 노래, 슬픈 음악 그러한 것들 사이에서 남들이 생각할 내 모습에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을 스스로가 예상될 때면 입을 닫고는 한다. 편안하고 균일한 감정에 안정감을 느낄 뿐, 우울하다거나 어두운 성격은 결코 아니다. 그저 사색에 잠겨 잠시 다른 세상의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즐기고, 숨 막히지 않을 정도의 고요한 시간과 공간으로의 여행을 기대하는 것이다.
어느 날의 나는 자그마한 오두막 안에서 드넓은 강을 바라보고, 어느 날의 나는 나무 위에서 잠을 청하다 원숭이가 던진 사과에 머리를 맞기도 한다. 또 과거의 어느 날은 서럽게 울고 있는 여인을 발견하기도, 입이 찢어져라 웃는 어린아이를 마주하기도 한다. 상상 속의 나는 다채로운 표정을 짓고, 숨김없는 말을 건네며, 자유로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나를 만난다.
현실로 돌아와 지하철 차창에 비치는 나의 얼굴은 無. 어느새 사람이 가득 찬 지하철 속 나의 감정은 無. 사람들의 귀에는 나와 같은 이어폰이 꽂힌 채, 나와 같은 얼굴의 無. 무엇을 보고, 어떤 노래를 듣던 그 사람들의 표정은 차창 속 나와 닮아 있었다. 그때 옆 칸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모든 사람의 눈이 일제히 같은 곳을 향했다. 시선 끝자락에는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한 남성이 있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으리라.
‘이상한 사람’
신기한 듯 쳐다보는 시간 단 5초, 그 후에 오는 감정이란 눈살을 찌푸리며 민폐라는 불편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내 드는 의문에 외면했던 남성을 몰래 곁눈질로 다시 바라 봤다.
‘그와 내가 다른가’
조금 전까지의 나는 다른 세계로 던져져, 맨발로 초원을 뛰어다니고, 운명적인 사람과의 첫 만남을 경험하며, 그 어떤 곳의 나보다도 솔직한 나를 보았다.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다른 세계의 나와, 지금 이곳의 남성. 그가 마주했을 시간과 공간은 어쩌면 내가 먼저 다녀온 그곳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