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나로부터
괜히 돌아서 집을 가고 싶은 날, 하필 수많은 갈림길 중 모교를 지나간다던지, 하필 교복 입고 자주 가던 분식집을 지나간다던지, 하필 친했던 친구의 옛날 집 근처를 지나간다던지. 수많은 하필의 연속은 순수함을 그리워하는 너의 핑계일 수도 있겠다.
네가 처음 남자아이를 밀치며 소리쳤을 때를 기억한다. 왜 그렇게, 무엇이 화가 나 제 또래만 한 아이를 밀쳤을까. 옆에 있던 여자아이는 너의 팔을 붙잡고 남자아이를 보며 한 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상대의 반응에는 힘이 있어서 그럴까, 아니면 내가 옳다는 확신 때문이었을까. 마치 추진력이라도 붙듯, 당당하게 쏘아붙이던 어린 시절의 네가 말했다.
‘자꾸 놀리면 얘가 힘들잖아.’
누가 봐도 순수한 초등학생의 대화였다. 걸어오는 싸움에는 응당 반응을 취해 줘야 하고, 어른들이 봤을 땐 귀엽다고 생각할지언정 그때의 우리는 의리 빼면 시체인 조막만 한 용사이다.
그렇게 본인 일도 아닌 친구의 슬픔을 등에 업고 한바탕 쏘아붙이고 나면 스스로 뿌듯해하던 너를 기억한다. 그때의 넌 왜 그랬을까.
친한 친구를 괴롭혀서? 당연하게 보였어야 할 행동이라서? 그게 옳은 행동이니까?
그 시절 우리의 세상은 부모와 친구, 단 둘 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세상에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본인이 들어갈 자리에 친구라는 자리를 더 넓히고 있었다. 아마 그들의 감정이 본인 것이었을 순간들이었다.
친구의 고통은 나의 고통, 친구의 슬픔은 나의 슬픔.
본능에 가까운 흡수력은 그 감정이 ‘나’의 감정이라고 착각하게 만들기도 했을 것이다.
애초에 어린아이의 경험은 어른에 비해 한없이 적다. 경험이 있다는 건, 스스로의 의지를 바탕으로 자신을 보완하고 성장시킬 수 있지만, 생각이 많아 스스로를 한없이 작게 만들어 주저함을 심어준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그들은 때론 본능적이고, 때론 지나치게 솔직하며, 또 때로는 이름 모를 감정에 이유를 갖다 붙이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우리는 그 감정이 내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것이라 한들, 중요하지 않은 사실이었다.
그들의 주저하지 않는 곧은 눈빛과 말투는 지금의 우리가 감히 흉내 낼 수도 없는 부러움의 영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