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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우 Mar 01. 2022

벤처기업인 다빈치

세르주 브람리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벤처기업인이었다.”

인터넷 벤처 혁명기였던 서른 살 무렵, 그렇게 떠들고 다녔습니다. 뭔 X소리냐며 누가 이유를 물으면, 저의 대답은 다소 엉뚱했습니다.


벤처생태계는 좋은 벤처기업과 좋은 벤처투자자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17년 동안이나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서, 엄청난 예술적·과학적 기술개발을 할 수 있게 지원한 스포르차 공작은 혜안 있는 ‘벤처캐피탈’ 같았습니다. 다빈치가 공작에게 보냈던 자화자찬 소개서는 벤처기업인이 투자를 받기 위해 작성하는 ‘사업계획서’가 아닐지요.  


물론 르네상스 시대에는 법인 설립, 사업자등록, 벤처기업 인증 등은 없었겠지만, 다빈치는 자기 자본 없이 벤처캐피탈의 지속적인 투자를 받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  벤처기업인이었습니다. (투자자 스포르차 공작이 만족할 만한 EXIT를 했다고 생각했는지도 문득 궁금해지네요.)

아무튼 지금 생각하니 웃음도 나오고, 다소 부끄러운 논리입니다.


탁월한 예술가이자 과학자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많이 흠모했습니다. 얼마나 좋아했는지 새로 창업한 회사명에도 '다빈치'를 넣었습니다. 주식회사 다빈치어쩌구... 사명은 거창한데 별 주목할 만한 성과를 보지 못하고 폐업했으니 결국 그분의 이름에 먹칠을 한 게 아닌지 죄송스럽습니다.


당시 직접 만든 회사소개서도 아직 생각나네요. 회사 이름에 다빈치가 들어간 만큼, 다빈치의 정신도 회사 비전에 담고 싶었습니다.  내친김에 하드를 뒤져보니... 사업계획서가 아직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예술의 7원칙이 당당히 회사의 방향성으로 명기되어 있네요.


     * 호기심  *실험정신  * 감각  * 불확실성에 대한 포용력 * 예술/과학  * 육체적 성질  * 연결관계


세르주 브람리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생애와 작품 등 ‘다빈치의 모든 것’이 담긴 책입니다. 사실 ‘모나리자’ 한 작품만으로도 그의 업적은 만만치 않습니다. 하지만 분야 불문 만능이었던 그는 모든 면에서 차원이 달랐던 ‘천재’였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흠모했지만, 진정 그를 알게 된 것이 이 책부터였다는 사실은 또 부끄러움입니다.


또 한 명의 천재인 프로이트는 다빈치에 대해서 이렇게 경탄했다고 합니다. 다빈치의 업적에 대한 실로 천재적인 요약입니다.

 “과학 탐구력과 예술 창조력을 성공적으로 병합했다.”


다빈치는 한 사람의 육체와 영혼에 깃든 너무나도 다양한 재능이자 인격이었습니다. ... 화가, 건축가, 과학자, 군사기술자, 요리연구가였고. 물리학, 식물학, 수학, 광학, 수력학, 천문학, 해부학 등 온갖 학문에 능했고, 스포츠, 시, 작곡, 노래, 악기 연주, 만담, 연극 연출까지 탁월했던 희한한 존재!


그런데 책의 역자는 다빈치에 대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불멸의 천재가 아닌, 끊임없는 노력으로 새로움을 창조한, 자신의 결함과 자기모순에 괴로워하고 두려움과 욕망에 떠는 평범한 인간”으로 요약합니다.


그랬을 것 같습니다. 상상 이상의 욕망과 그 이상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업적들이니까요. 인간인 이상, 그 과정 과정에서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괴로움도 많았을 것입니다. 당연히 동감합니다.


한때 '다빈치는 벤처기업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다시 생각해보니... 만약 다빈치가 현세에 부활한다면, 아마도 ‘영화’를 그냥 두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영화는 다빈치가 추구했던 모든 장르가 혼합된 종합예술이자, 한편으로는 인류가 이룬 기술적, 과학적 성취의 끝없는 지원으로 인해 성장한 독특한 콘텐츠이기 때문입니다. 프로이트가 정리했듯이 '과학과 예술의 병합'이 만든 대표적인 창조물이라고 생각됩니다.


코로나 팬데믹과 OTT 플랫폼의 시대를 맞아 영화 산업은 큰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우리는 그간에도 많은 영화를 반드시 대형 스크린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즐겨왔습니다. 극장 산업도 시대에 맞는 새로운 형태로 변화할 것이고, 영화라는 콘텐츠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되고 재창조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다빈치 이래로, 인류의 선배 예술가들과 과학자들이 일해온 방식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빈치어쩌구였던 회사는 일찍이 접었고(밀린 세금 갚느라 오래 고생했습니다), 그 후에는 차마 그의 이름을 회사명에 차용할 용기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다빈치 예술의 7원칙은 여전히 마음속에 담고 일하고 있습니다. 변화의 시대인 요즘은 그중 두 가지에 대해서 특히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불확실성에 대한 포용력' 그리고 '연결관계'


다빈치 같은 스타일로 계속 일하겠습니다. 우리는 다시 이겨내야 하니까요.




경향신문에 실린 <내 인생의 책> 원고를 '많이' 수정 보완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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