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뉴브강의 신발들

by 보내미 이 복 희

다뉴브강의 신발들*


쇠로 만든 신발 여러 켤레가
군데군데 흩어져 있다

악령에 시달리는 바람만 떠돌고
강물은 그런 바람이 싫다는 듯
서둘러 흘렀던 그 날 그 자리

사람이 사람을 장난감처럼 총살했던 다뉴브강의 신발들 앞에 섰다

독일에서 흑해까지 흐르는 다뉴브강
강은 국경도 없고 민족도 없는데,
저 신발들, 여기에 잠들어 있다

아리아인은 무엇이고 비아리아인은 무엇인가

엄마 치마폭도 안전하지 않았던 꼬맹이 운동화, 출근길 넥타이 매고 끌려온 셀러리맨 구두, 데이트 시간 기다리는 멋쟁이 하이힐, 분노조차 할 수 없이 짝 잃은 슬리퍼, 단란한 가정과 맞바꿀 기름때 낀 작업화, 발목을 잃어버린 부츠, 군복과 함께 내던져진 군화

비바람 얼룩진 신발들이
미처 강으로 따라 들지 못한 신발들이
어처구니로 남아 있다

누군가 놓고 간 꽃들
여기서도 제대로 꽃피지 못하고
불꽃을 삼킨 촛농처럼 제자리에 내려앉았다

강물은 무심하게 유람선을 띄우고
세체니다리 불빛을 찰방거리며 흘러간다

돌아오지 않는 강, 되돌릴 수 없는 강


* 다뉴브강의 신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학살당한 유대인을 기리기 위해 터키 영화감독 칸 토카이와 헝가리 조각가 귤라 파워가 세운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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