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 재협상>
치킨으로는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았다.
닭다리 하나를 곱씹으며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하며 일하는 게 맞는 걸까?
지금 당장 “그만두겠다” 말해도
구인이 어려운 이 시점에 바로 나갈 수는 없었다.
‘그래, 협상을 앞당기자.’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면,
타이밍을 봐서 이야기를 꺼내보기로 했다.
쉬는 날은 늘 그렇듯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안녕하세요.”
원장님의 출근에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마저 하던 정리를 시작했다.
‘언제, 어느 타이밍에 말해야 할까?’
결국 퇴근 무렵에 이야기하자고 다짐했다.
아침 진료 준비 시간이 지나자
예약 환자분들이 하나둘 내원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치료하신 부위는 괜찮으세요?”
“괜찮겠어요? 아직 불편해요.”
찌푸린 얼굴과 말투에, 참아왔던 불만이 묻어났다.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공감 모드에 들어갔다.
“네, 많이 불편하셨죠. 치료받는 거, 참 쉽지 않죠.”
불편했던 이유를 묻자, 환자분은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갔다.
“네, 자세히 적어뒀으니까요. 들어가셔서 원장님과 함께 보실게요.”
체력의 한계에 부딪혔다.
좀 더 친절하게, 여유 있게 환자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이런 식으로 오전 환자를 다 보다 보면
오후엔 영혼 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
진료 마무리를 도와드리던 중
“고생이 많네요, 혼자서 어떻게 다 해요?”
라는 한 마디에 영혼이 반쯤 돌아왔다.
“해야죠… 하하. 어떻게든 하고 있는데
정신이 없어서 제가 잘 못 해 드리는 것 같아 늘 죄송해요.”
그래도 고생하는 게 눈에 보였나 보다.
그게 뭐라고, 위로가 됐다.
알아준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분은 병원을 나가기 전
내 손에 초콜릿 몇 개를 쥐여주고 가셨다.
“다음 내원 때 뵐게요, 감사합니다.”
내 인사에 가볍게 눈웃음으로 답하시며
치과 문을 열고 나가셨다.
사실 마음이 갑갑했다.
한 분 한 분 정말 집중해서 잘 봐드리고 싶은데
너무 바쁘다 보니, 정신없이 일을 쳐내는 기분이었다.
마감을 끝내고, 원장님께 말할 타이밍을 가늠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지?’
왜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땐 늘 이렇게 심장이 뛸까.
책상 위에 있던 초콜릿 하나를 입에 넣었다.
그래, 이거 다 먹으면 가서 말하자.
달달한 맛이 입안에 퍼지자
긴장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까짓 거, 못할 말도 아닌데…
다시 미치고 싶어? 그건 아니잖아.’
초콜릿은 금방 녹아내려 목을 타고 넘어갔다.
그래, 가보자.
의자에서 일어나 원장실로 향했다.
‘똑똑.’
“원장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내 말에 원장님은 살짝 놀란 듯 날 쳐다보더니,
이내 평소와 다름없는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네, 말씀하세요.”
“사실… 지금 3~4명이서 할 일을 혼자 하고 있다 보니 많이 지쳤습니다.”
원장님은 말을 계속 이어 보라는 듯 조용히 기다렸다.
“그래서 말인데요,
3개월 뒤에 하기로 했던 협상을 다음 달로 앞당길 수 있을까요?”
몰라, 이미 다 말해버렸다.
잠시 고민하던 원장님은 곧 입을 열었다.
“좋아요. 다음 달로 합시다.
그리고 말인데… 실장직 하실 생각 없으세요?”
…?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나는 실장직은 따로 구인하실 줄 알았는데.
“이제 실장 할 연차도 됐잖아요.
지금 하는 거 보면, 따로 구인하는 것보다
선생님이 실장 역할을 해주시는 게 낫겠어요.”
책임만 커진 자리인가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내가 참고 인내해 온 걸 알아주는 듯한 그 말에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일해줄 직원이 어디 있어요.
잘하고 계세요.”
날카로운 인상이 부담스럽기만 했던 원장님.
그 말 한마디가, 이상하게 따뜻하게 들렸다.
“네, 해볼게요.”
그렇게 나는,
원장님과 재협상을 하며
처음으로 ‘실장’이라는 직책을 갖게 되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직원도 없는 곳에서 무슨 실장이야.’
하지만 나는 안다.
누군가는 이 작은 곳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누군가는 책임감 있게 일하고 있다는 걸.
그리고, 나는 그 ‘누군가’였다.
누가 뭐래도 원장님, 그리고 환자분 ,
제일 중요한 나 자신, 스스로가
나의 고생을 인정해 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