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새로운 출발>
재협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어쩔 수 없이 했던, 책임과 무기력 그 어느 사이에 했던 바보 같은 서명이 아니었다.
이번엔 담담히 내 이름 세 글자를 다시 적었다. 연봉과 직책이 달라진 계약서를 받아 들고 나니, 그래도 조금은 버틸 연료가 생긴 셈이었다.
"잘 부탁해요."
원장님은 잔잔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새로운 출발이었다.
물론,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나도 직원 없는 이곳에서 실장이라는 직책은 사실상 무의미했다.
나는 진료실 스태프이자, 실장이자, 코디네이터이자, 청소 담당이기도 했다.
그래도, 좋았다.
환자분들과의 유대감이 조금씩 생기고 있었고, 원장님과 나는 진료실에서 손발이 정말 잘 맞았다. 무언가 걸리는 것 없이 진료는 매끄럽게 흘렀다.
가끔 뒷정리가 많아 근무시간이 길어지는 날도 있었지만, 그런 날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지치는 건 맞지만, 몸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된 건 아니고, 여전히 집에 가면 지쳐 쓰러지기 바빴다.
"면접 보러 올 거예요."
어느 날 아침, 진료 준비를 하던 내게 원장님이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그 말은 굉장히 설레는 한마디였다.
드디어?! 드디어 면접이라니!
"정말요? 언제요? 언제 오세요?!"
너무 기쁜 나머지 알코올 솜을 채우다 말고 캔에 툭툭 넣으며 원장님께 계속 질문을 던졌다.
"점심 전에 올 거예요."
원장님은 반가워하는 나와 달리 무덤덤하게 대답하셨다.
"진짜요? 너무 좋네요! 어떤 분이실까 궁금해요."
"면접을 봐야 알죠."
냉정한 한마디를 남기고, 원장님은 곧 방으로 들어가셨다.
나와는 반응이 다르지만, 속으로는 원장님도 살짝 기대하고 계신 게 아닐까?
혼자 생각하며 남은 준비를 마무리했다.
흥얼거림이 절로 나왔다.
드디어 면접, 드디어 이 병원에 누군가가 온다니! 비록 바로 채용되는 건 아니지만, 면접 가뭄이었던 이곳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설렘으로 오전 진료를 마무리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고 그랬던가.
설렘은 곧 허탈함으로 바뀌었다.
면접 시간 10분이 지나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길을 못 찾는 걸까? 차가 막히는 걸까?
시계를 바라보며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노쇼예요."
또 10분쯤 지났을 무렵, 원장님은 데스크로 나와 나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아... 노쇼요?"
"하... 이런 건 또 처음 겪네요. 연락도 안 되고."
원장님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허탈하게 웃으셨다.
면접 노쇼가 있다고는 들었지만, 말로만 들었지 나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말도 안 돼요... 너무한 거 아니에요?"
"그러게요. 안 올 것 같으니 저는 점심 먹으러 나가볼게요."
말을 마치고 원장님은 병원을 나가셨다.
허탈했고, 허무했다.
그렇게 몇 번, 이력서가 들어왔고 원장님은 면접 일정을 잡으셨지만 원활하게 진행된 적은 드물었다.
노쇼, 간 보기 식 이력서들...
정말, 직원은 안 구해질 수도 있겠구나.
그렇게 체념하던 어느 날, 원장님이 다시 면접 일정을 알려주셨다.
예전처럼 들뜨거나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딸랑.'
진료 중 들려온 문 여는 소리에 나는 반사적으로 데스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낯선 여자의 뒷모습.
환자는 아닌 느낌이었다.
면접자다!!!
속으로 외쳤다.
"안녕하세요."
그 뒷모습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또다시, 인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는, 첫인사와 함께
겪어보지 못했던 수많은 일들을 향한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