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바보 같은 서명>
텅 빈 치과
나 홀로 우두커니 서서 잠시 멍을 때렸다.
늘 함께 아침을 준비하던 최쌤, 신쌤, 실장님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원장님이 누구라도 데려오지 않을까 했지만.. 당연히 그 옆엔 아무도 없었다.
말도 안 돼.
정신을 놓고 있을 틈이 없었다.
시간이 없었다.
기계를 켜고, 수도를 열고, 체어(환자 진료용 의자) 전원을 넣고, 진료실 물품을 채우고, 멸균 기구들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진료 시작 10분 전이었다.
아, 데스크 준비는 아직 못 했다.
허겁지겁 자리로 돌아와 예약 환자 리스트를 훑었다. 다행히 대부분은 진료 마무리 단계이거나 드레싱 정도였다. 큰 진료는 없었다.
원장님과 나는 그 흔한 아침 회의 한마디 없이 진료 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원장실의 원장님은 조용했고, 나는 차트를 정리하고 있었다.
원장님 발자국 소리가 나에게 다가오며
조용했던 치과의 적막을 깼다.
“김 선생님.”
원장님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그 손에는 근로계약서가 들려 있었다.
“오늘부터 새로 시작하는 거니까, 계약서 작성하시죠.”
“아, 네네…”
우리는 상담실로 자리를 옮겼다.
계약서를 펼치니 연차는 11개, 내년엔 15개.
… 그래봤자 쓸 수 있을까?
직원이 나 혼자인데 쉬고 싶을 때 쉬는 게, 과연 가능할까.
기대감은 이미 잦아들고 있었다. 연봉은 이전과 같고, 3개월 뒤에 재협상하자는 말만 덧붙여졌다.
기대, 희망… 그런 단어들은 내 마음속에서 오래전에 지워졌던 것 같다.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이게 맞는 걸까?’ ‘지금 이 조건으로 또 3개월을 버텨야 하는 걸까?’
그래… 어쨌든 어떻게든 다녀보겠다고 한 거잖아. 그 약속은 지켜야 하니까.
그동안 조용히 다른 병원이라도 알아보자.
그렇게, 또 무모하고 무리한 다짐을 하며 서명했다.
펜을 떼는 순간, 내 이름 대신 ‘바보’라고 적힌 것만 같았다.
그 자리에서 협상제안을 한 번쯤 요구해 볼 수도 있었을 텐데..
한 번쯤 다른 조건을 제시해 볼 수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눈앞에 닥칠 현실 앞에서 그런 생각은 아예 떠오르지도 않았다.
어쩌면 떠난 선생님들이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너무 순진하게,
게으르게 순응한 건 아닐까.
약지 못한 내 선택이,
그 순간 한없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바보 같은 서명으로
무모한 선택을 했다.
“안녕하세요~”
무모한 난
찝찝한 마음을 품은 채,
첫 환자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