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부서로 옮겨가기.
연고지로 돌아온 후에 나름 다시 종합병원도 담당하게 되고 부모님과 함께 편안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부모님은 지방의 한 광역시에 살고 계셨는데 아무래도 여러 스토리(?)상 일단은 서울이 아닌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가야 했다.
역시나 좋은 점은 해주시는 밥을 먹고 편하게 다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밥, 청소, 빨래 걱정도 없고, 주거비도 별도로 지출이 필요 없었다. 당연히 저축은 더 많이 할 수 있었다.
또 하나 좋은 점은 집 근처에 거래처가 있다는 것이었는데, 마음만 먹으면 걸어서도 갈 수 있었다.
영업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대학병원의 경우 고객들의 일정과 동선만 잘 파악하면 하루에 3-4시간만 활동하고도 하루의 할당 방문을 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인간은 욕심이 끝이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영업만 하기 위해서 제약회사에 들어온 사람도 없을 것이다. (영업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영업직으로 정년까지 하는 많은 멋진 분들도 계시다. 하지만 젊을 때는 영업에서도 지점장등의 관리자로, 혹은 마케팅 등의 내근으로 옮겨 가고 싶은 목표가 많이들 있었으리라.)
난 사실 문과였고 정확히 말하면 상경계였다. 처음에 삼성에 지원했을 때도 마케팅 부서에 지원했듯이 당시에는 상경계 학과를 졸업한 사람들은 당연히 마케팅을 목표로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생각하면 철이 없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병원에서 나이 많은 영업사원들이 젊은(아니 어린) 전공의들에게도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하는 걸 보며 나이가 들어서 영업을 계속하는 것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참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굉장히 일찍부터 사서 고민하는 성격이 그때도 유감없이 나타났다.
35세 전에 지점장이든 내근(마케팅) 직이든 직무를 옮기고, 대학원 MBA 학위를 따고, 결혼까지 한다.라는 게 목표였다.
그리고 목표가 중요한 이유는 내가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방향성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명확한 목표를 세우기 전에 여러 가지 방황도 했었다. 영업은 힘든 직업이다. 접대도 많고 사람 스트레스도 많고 체력적으로도 힘들다. 제약회사 영업을 한다고 하면 약 팔러 다니냐는 얘기도 듣는 것도 싫었고 (심지어 약을 들고 다니시냐는 얘기도 들었다), 소개팅할 때도 약간 급을 낮춰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게 싫었다. 비록 내가 그들보다 돈을 두 배 가까이 벌 지언정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은 때였기 때문에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 경우도 많았다. 그때만 해도 젊었으니 그러려니 해주자.
그래서 학교 다닐 때 못다 이뤘던 꿈인 공사를 지원하려고 한 때 주경야독을 했다.
당시 목표는 그나마 대우가 좋은 수자원 공사였다. (공무원은 너무 박봉이라 처음부터 열외였다.)
수자원 공사 경영직 쪽에 지원하려면 몇 가지 조건 & 어드벤티지가 있었다. 높은 영어 점수, 기사 자격증 (가산점을 위함), 전공과목 점수였다.
토익은 영어가 아니다. 물론 기본적인 영어는 필요하지만 높은 토익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짧은 시간 안에 기계적으로 문제를 풀 수 있어야 한다. 그전에도 이미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맞아본 노하우(?)가 있었으므로 2달 정도 다시 열심히 공부해서 나름 만족스러운 점수를 받았다.
가산점을 위한 자격증은 지방에서 주재를 할 때 따놨다. 정보처리기사 자격증. 이걸 뭐 하러 따지?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는데, 지방에 혼자 있으니 너무 적적해서 자격증이나 하나 따보자 해서 시작했던 것이 이렇게 나중에는 도움이 되었다. 역시 사람은 뭐든 해 놓으면 다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는 전공 공부였다. 졸업한 지 몇 년 지나서 다시 두꺼운 경영학원론 같은 책을 다시 보려니 머리는 아팠지만, 영업사원이라는 힘들고 고된 일을 접고 조금은 편안해 보였던 철밥통인 공사에 지원하려는 마음으로 열심히 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는 몇 개월 실컷 준비하다 접었는데 이유는 또다시 ‘돈‘이었다. 제약 영업에 들어온 신입사원들에게 나는 지금도 얘기한다. 만약 다른 일을 하고 싶다면 최대한 빨리 준비해서 시도하라고. 제약영업은 초봉도 높고 활동비도 주고 인센티브도 적지 않다. 즉 ‘돈맛’을 알게 되는데, 이 생활이 오래되면 더 이상 전문직 정도를 제외하고 웬만한 회사의 연봉에 만족하기 힘들다. 하물며 공사면 훨씬 차이가 났다. 당시에 제약 영업사원 5년 차 정도였는데, 공사와 연봉(기타 수당 포함) 차이가 거의 두 배였다.
막상 지원해서 옮기려니 현실적인 이유가 가장 다가왔다.
이것저것 따져보면 공사를 다니면서 한 달에 50만 원, 아무리 많아봐야 100만 원 겨우 저축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1달에 제약회사 영업( 나중에는 뭐가 될지 모르지만)을 지속하면 최소 100에서 많으면 200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월급은 손도 데지 않고 활동비로만 한 달을 사는 것도 어려운 건 아니었고, 실적이 좋아 인센티브까지 넉넉히 들어올 때면 연간 몇 천 모으는 건 어렵지 않았다.
즉, 공사를 다니면서 20년 걸려서 모으는 돈이라면, 제약회사에서는 10년이면 모을 수 있다는 계산이 섰고, 차라리 10년 동안 바짝 모아 놓고 남은 기간은 차라리 하고 싶은 다른 일을 하자 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리고 처음 제약회사에 들어올 때 가졌던 해외 MBA의 꿈도 그때만 해도 아직 접지 않았었다. 해외에 가려면 돈이 아주 많이 든다.
그래서 고연봉인 제약회사에 다님과 동시에 영업직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도 끝내고 해외 MBA 지원을 위한 나이스한 이력서를 만들고자 영업 관리자 혹은 내근직으로의 기회를 찾기 시작했다.
당시에 지점장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 10년 이상, 아니 그 이상의 경력이 있어야 했다. 지금이야 훨씬 젊은 나이에 되기도 하지만, 당시만 해도 어느 정도 연차가 차야 지원할 자격이 생겼다. 그래서 내근직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상경계에게 가장 가능성이 높은 마케팅 부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조금 덜하지만 당시만 해도 영업과 마케팅 부서 간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영업사원 중 마케팅직에 지원하는 직원은 약간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 처음에 마케팅에 지원했을 때 본사 영업부 총괄 이사님에게 다이렉트로 전화가 왔었다. 겨우 3-4년 된 직원 나부랭이에게 저 높으신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으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이유는 위에 적어놨듯이 “너 뭐 하는 짓이야”라는 일갈과 함께 나는 바로 지원서를 철회했다.
그런 이후 낙심한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일도 했지만 동시에 다른 회사 마케팅 자리에 끊임없이 지원했다. 면접까지 간 적도 한두 번 있었지만 계속 낙방이었다. 지금의 용어로 조용한 퇴사? 정도였으리라.
많은 젊은 사람들이 마케팅을 가고 싶어 한다. 나름 멋있기도 하고 영업이 힘들기도 해서다. 그런데 영업에서 마케팅으로 가는 사람들의 숫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일단 절대적인 숫자가 마케팅이 적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단 마케팅 직군으로 넘어오면 거기는 또 그들만의 리그가 있다. 즉 처음에 영업에서 마케팅으로 넘어가는 건 힘들지만, 일단 넘어가면 그 안에 있는 여러 회사, 제품들 간 마케팅 직군들을 옮겨 다니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즉 한 번 들어가면 그다음에는 상대적으로 원하는 회사, 자리로 가는 건 쉬운 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마케팅에 가기 위한 조건은 결국 일을 잘하는 (실적이 좋은) 것이었다. 물론 영어는 지금이나 예전이나 기본이다.
다시 내 얘기로 돌아오면, 당시에 직통으로 친절히 전화까지 주셨던 그 이사님은, 후에 내가 영업을 잘해서 전국 최상위 랭크에 오르자 따로 연락을 주셨다. 곧 마케팅 자리가 뜰 거니까 지원해 보라고. 역시 자리는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의지가 넘쳐도 결국 자리가 있어야 갈 수 있는 거고, 가기 위한 순리적 단계라는 것이 있는 거였다.
사실 당시에 지원했던 자리는 마케팅 정식 포지션은 아니었고, 당시에 영업직의 커리어 개발과 마케팅의 커리어 개발(영업을 해보지 않은 마케터들이 너무 많아서 현실을 알게 해 주기 위한 목적)에 대한 니즈가 맞아 생긴 상호 교환 포지션이었다. 영업과 마케팅이 서로 자리를 교체해서 영업사원은 주니어 마케터 역할을 하고, 마케터는 세일즈 담당자 혹은 직급에 따라 세일즈 매니저의 역할을 1년간 하는 거였다. 당시에 영업사원=주니어 마케터, 세일즈 매니저=마케터 정도의 레벨로 맞췄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알게 모르게 영업직군보다 마케팅에서 영업으로 교환을 오는 마케터들의 직급을 더 높게 쳐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1년 후에는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조건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마케팅을 가고 싶었기에, 비록 1년 파견이라고 하더라도 밑져야 본전이고 운이 좋으면 마케팅 경력을 인정받아 이직도 가능한 자리였기에 치열한 경쟁이 있었다. 나보다 스펙이 훨씬 좋은 친구들도 많았다. 하지만 결국 합격하였는데, 주요 원인은 일단 첫 번째가 실적이었다. 영업 쪽 라인의 높은 분께서도 인정해 주셨기에 마케팅에서도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고, 영어도 나름 점수가 좋았기에 언어적인 부분도 합격이었다. (물론 다시 말하지만 토익 점수가 좋다고 영어를 잘하는 건 아니다.!! 지금도 초등영어를 쓴다.) 두 번째는 그 자리를 지원하는 동기의 정당성이었다. 함께 지원했던 지원자들 중 최종까지 올라왔던 친구는 마케팅 자리를 쓰기 전에 이미 다른 내근 자리 1-2개를 지원했던 전적이 있었던 것에 비해 난 처음부터 끝까지 마케팅 자리만을 고집했다. 결국 진정성의 측면에서 내가 점수를 더 받았고 합격하게 되었다. (라고 생각한다. 하하)
가끔 내근으로 지원하고자 하는 주니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가고 싶은 포지션이 있다면 일관적으로 꾸준히 노리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 지원했다가 저기 지원했다가 하는 모습을 보이면 좋지 않은 인상을 주게 되고 한 번 박힌 나쁜 인상은 상당히 오래간다. 원하는 포지션이 있으면 일관되게 밀고 가고, 제발 미리미리 매니저와 상의를 하자. 요새는 IDP (Individual Development Plan)이라는 절차를 통해 커리어 개발이나 원하는 자리에 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는 프로세스가 있다. 말도 없이 갑자기 지원했다가 왜 떨어졌는지를 괴로워하지 말고 순서를 거쳐서 가야 함을 기억하자.
제약회사에 입사한 지 거의 7년이 다 된 시점이었다. 당시에도 30대였던 나에게 이미 마케팅을 가기에는 조금 늦은 나이라고 했지만, 난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필사적으로 매달렸고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 지금은 당시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영업사원들도 마케팅으로 많이 온다. 심지어 40대에 새로 오기도 한다.
이제 나이는 정말 숫자일 뿐이다. 나이 먹었다고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일단 도전해 보자!! 이건 남에 대한 조언뿐만 아니라, 나에게 해주는 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