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10여 년 만에 백수가 되다.
의욕에 가득 찬 이직이 실패로 끝나고 백수가 되었다.
일단 다행인 점은 2년을 채 다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퇴직 위로금을 괜찮게 받았다는 점과, 아직은 젊은 30대 중반이라는 점, 그리고 나랑 같은 시점에 퇴직하신 분이 계셨다는 점이다. 이 분은 약사셨는데 끌어온 분이 먼저 퇴사를 해버리시고, 본인도 회사의 방향과 맞지 않아서 퇴사를 결정하셨다.
여담으로 제약회사에서 ‘약사‘ 라이선스의 힘은 강력하다. 신입사원을 뽑을 때도 서류통과는 거의 기본이요, 기초 지식이 풍부하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기본 인정받고 가는 부분이 많다. 게다가 영업, 마케팅, 의학부, 허가, 급여 등 다양한 곳으로 이동도 가능하다.
반면 너무나 강한 어드벤티지가 있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서는 굳이 버티지 않고 퇴사를 해버리는 경우들도 많이 있다. 잠시 쉬더라도 동네 약국에서 페이약사로 얼마든지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고 여차하면 약국을 개국하는 방법도 있기 때문이다.
퇴사에 대한 절차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퇴직에 대한 동의서와 퇴직위로금에 대한 설명, 비밀유지조항 등에 사인하고, 그래도 회사에서 퇴직하는 사람들의 제2의 인생을 위해서 전직지원서비스를 6개월 정도 이용할 수 있게 해 줬다. 이런 전직지원서비스를 잘 이용하는 것도 중요한데, 이들은 그래도 취업시장에서 여러 면접이나 직업서칭 노하우를 갖고 있으므로 회사에서 비용을 들여 지원해 주는 만큼 적극적으로 이용하도록 하자. 사실 난 지금도 당시에 만났던 담당자 분과 연락하고 지내고 있고, 회사에서 자리 이동 등의 이유로 면접을 보거나 할 때 조언을 구하고 있다.
퇴사할 때 꼭 챙겨야 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국민연금 납부 유예와 실업급여 신청이다. 국가가 치사(?) 한 것이, 국민연금과 같이 돈을 받아가야 하는 건들에 대해서는 득달같이 연락을 한다. 하지만 실업급여처럼 우리가 신청해서 수혜를 받아야 하는 건들에 대해서는 절대 먼저 연락을 주지 않는다. 결국 내 권리는 내가 찾아야 한다.
실업급여는 퇴직 전 평균임금의 60% 선으로 2025년 기준 최대 상한 금액이 일 66,000원, 최소 금액이 64,192원이다. 최소 금액 기준으로 총 120일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약 770만 원 정도 된다. 백수들에게는 결코 적지 않은 돈이니 꼭 챙겨야 한다. 게다가 퇴사 이후 12개월이 지나면 자동으로 받지 못하게 되니 그동안 내가 낸 고용보험료가 아까워서라도 악착같이 찾아서 받자.
이렇게 아주 간단한 절차를 거쳐 11월 말에 퇴사를 했다.
퇴사 후에는 당시 마지막 학기였던 MBA과정을 여유 있게 다니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거의 10년 만에 처음으로 얻은 비자발적 휴가를 즐기기 시작했다.
해외에 나 홀로 여행도 다녀오고 (백수 상태이니 완전 비수기를 골라서 최저가 항공권을 선택할 수 있었다.), 템플스테이도 해봤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는 주에 1-2회 전직지원 서비스를 받고 홀로 도서관이나 서점을 다니면서 자유의 시간을 보냈다. 그런 와중에서도 함께 퇴직한 분과도 주에 1-2번씩 만나면서 서로의 근황이나 취업 정보 등을 나누었는데, 그분께서는 “지금은 비록 마음이 불안하겠지만, 지나고 나면 이 시간이 그리울 거야, 앞으로 이렇게 한가한 시간을 보낼 기회는 아마 퇴직 후일지도 모르거든” 이라며 나를 다독이셨다. 약사 라이선스의 여유일 수도 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천성이 조금 여유로우셨던 것 같다. 물론 부부약사이기에 어드벤티지를 두 배로 갖고 계셨다.
백수 생활에서 배운 점은 하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혼자 밥 먹는 것조차 너무 어색하고 혼자 있는 시간에 뭘 할지 어쩔 줄 몰라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백수 기간 동안 혼밥에 혼자 쇼핑하고 서점도 가고, 영화도 보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줄 알게 되었다.
두 번째는 회사가 아닌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위기의 시기에 내편과 내편이 아닌 사람이 극명하게 갈린다. 나의 회사에서의 배경(별 것도 없지만)을 보고 가까이 지내온 건지 아니면 나라는 사람 자체를 생각해 주는 사람인지 말이다. 천명에 가까운 전화번호 중에 내가 백수일 때 연락을 주거나 내가 연락하고 싶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마지막으로는 내 삶에 있어서 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승진이나 연봉만을 보며 앞만 보고 달려왔었던 시간에 대한 허무감이 밀려왔다. 이왕 한 번 사는 거, 이왕이면 제약회사에서 근무한다면, 뭔가 내 일에 대한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곳에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1-2달은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가, 3개월째가 되면서 기대했던 몇 군데 회사의 지원서류도 탈락되는 상황들이 반복되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다국적회사들만 지원하다가 눈을 넓혀 일부 국내회사들에도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몇 군데 서류는 되고 면접까지 갔지만 최종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두어 번 반복되자 더욱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태어나고 와이프는 육아휴직 중이었으며 통장 잔고는 비어갔다. 이게 아마 미래에 준비 없이 나이 들어 퇴직을 했을 때의 느낌이리라.
수입은 없고 쓸 곳은 많으며 통장의 잔고는 점점 줄어가는 숨 막히는 느낌 말이다. 퇴직위로금으로 목돈이 있다고 해도, 계속 그 돈을 까먹는 건 왠지 모를 불안감이 있었다. 그래서 지속가능한 현금흐름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는 건가 보다. 이때의 경험이 지금 나의 재테크에도, 그리고 미래에 퇴직 후의 연금운용 전략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피가 말라가던 몇 개월이 지난 후 다행히 모 외국계 디바이스 회사에서 최종 면접 연락이 왔다. 다행히 최종 면접관은 과거에 일했던 회사 중 하나에서 같이 자주 뵈었던 분이었다. 일이 풀리려던 건지, 그와 동시에 2번째 다녔던 회사의 입사 동기 중 하나가 지금 다니고 있는 S사에 입사 추천을 할 테니 올 생각이 없느냐고 연락이 왔다.
S사에 면접을 보러 가자 면접관은 내 전 매니저의 친구요, 사장은 내 전 매니저의 매니저였던 마케팅팀 임원의 지인이었다. 세상 참 좁다. 특히 다국적제약회사는 손에 꼽을 정도로 숫자가 많지 않기에 어딜 가든 평판관리는 중요하다. 특히 퇴사할 때 기분 나쁘다고 개판 치면 뒷감당을 하기 힘들다.
두 명 모두 나에 대한 레퍼런스 체크를 했고 다행히 두 명으로부터 무난한 피드백을 받았던 것 같다. 내가 취업에 성공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4개월간의 백수 생활을 끝내고, 나의 4번째 회사에 입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