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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제약회사 신입 영업사원 열두 번째

나는 왜, WHY가 있는가?

by 러블리 이지



나는 WHY 가 있는가? 아니 있을까?


사이먼사이넥의 책 제목이다.


WHY -> HOW-> WHAT , 모든 일을 할 때 왜 이것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과 신념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여러 복잡한 좋은 얘기들을 기억하기는 어렵지만 심플하게 생각을 해보면 의외로 간단하다.


우리는 어른이 되어 취업을 하고 은퇴까지 수십 년간 가장 많은 시간을 일을 하면서 쓴다. 하루에 기본 8시간, 즉 1/3을 사용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가장 근로시간이 긴 나라 중 하나이므로 8시간 이상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자명하다.

나의 하루는 소중하다. 철학자인 소포클레스는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 하루는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하루이다'라고 했지 않은가? 사람은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이왕이면 한 번뿐인 유한한 시간 동안 뭔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게 맞지 않을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인 월요일 저녁에도 난 월요병으로 어제 가족과 함께 하는 황금 같은 일요일 오후를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었고, 아직 오지도 않은 월요일(오늘)에 대한 걱정으로 짜증이 가득했다. 난 참 미숙한 사람임이 다시 한번 증명되었던 하루였다.


뭔가 거창하게 얘기했지만 회사를 쉬는 동안 나름의 깨달음이 있었다고 할까? 물론 회사는 '돈'을 벌기 위해 다닌다는 기본 전제는 바뀌지 않았다. 난 아무 조건 없이 환자들을 위해 일합니다라는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백수가 된 지 3개월이 넘어가는 시점에서는 경제적인 압박감에 취업을 서둘렀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현금흐름의 중요성에 대해서 배웠던 시간이라고 애써 스스로를 위안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왕이면, 비록 돈을 벌기 위해서 회사를 다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직장생활에 무엇인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싶었다.

그래서 입사한 곳은 희귀 질환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였다. 그전에 다녔던 회사들은 전부 삶의 질을 개선하는 약물들을 중심으로 하는 회사였다. 즉 있으면 좋지만 없다고 해서 사람이 죽거나 하지는 않는 질환들에 사용되는 제품들이다. 즉 내가 있으나 없으나, 내가 뭔가 하더라도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올리기 위한 싸움에 집중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시장에는 이미 수많은 제품들이 있었고, 지난 수십 년간 내가 담당하는 제품이 없이도 아무 문제 없이 환자들은 별 탈 없이 치료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겨우 30-40명밖에 없는 질환. 치료제가 있어도 수억 원의 고가이거나, 심지어 치료제가 제대로 있지도 않은 질환. 환자들을 진단하기 위해 수많은 병원을 떠돌며 수십 년간 진단받지 못해 떠도는 질환들 말이다. 우리는 잘 모르지만 이런 희귀한 질병으로 관심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주변 곳곳에 숨어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종종 제약회사가 악역으로 나온다. 좀비 바이러스를 개발하거나 불법임상시험을 하거나 하는 식으로 인류를 멸망시키기 직전까지 몰고 가거나 온갖 이상한 질병을 퍼뜨려 지구를 파괴하고 약자들을 괴롭히는 최종 보스로 악덕제약회사의 사장님이 뒤에서 부하들을 조종하면서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른다.

제약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1인으로서 사실 좀 억울한 부분도 없지 않다.


언론에서는 회사가 엄청 돈을 좇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환자 숫자가 적을수록 약가가 비싼 건 당연하고, 쉽게 생각하면 개발비가 100억이라고 하면 환자가 100명이면 1명당 1억에 팔아야 하고, 1000명이면 1000만 원에 팔아야 한다. 물론 개발비에 인건비에 개발하다 실패한 약들에 대한 비용까지(실제로 임상에서 최종 허가까지 성공하는 비율이 10%가 안 되며 매 임상마다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다.) 제약회사도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수익을 남겨야 한다. 일단 수익을 원하는 만큼 남기지 못하면 CEO는 바로 퇴출된다. 주주들에 의해서다. 그리고 그 주주는 직간접적으로 우리들이 될 수도 있다.

여러 분이 갖고 있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주식들이 그런 힘을 갖는다. 비록 수가 적어서 제대로 작동이 안 될 뿐이다.


웃긴 건 엔비디아 같은 회사는 엄청난 GPU 수요에 힘입어 2024년 4분기에는 순이익률이 50%가 넘었다. 연구개발비, 인건비, 판촉비 등 모든 걸 다 쓰고도 매출의 절반이상이 순이익으로 남았다는 것이다. 제약회사는 많아야 20%대, 적게는 10%대의 순이익이 남는다. 하지만 유독 제약회사만 악마화되는 게 현실이다. 물론 과거에 잘못된 임상시험 등 자초한 부분도 있기는 하나 무조건 돈을 좇기만 하는 비윤리적인 회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돈을 벌어야 약도 개발할 것이 아닌다. 그런 이유로 희귀 질환처럼 수요가 없는 약제들에 대해서는 세금지원등이 있는 이유다. 여하튼 제약회사의 존재의 이유는 매우 윤리적이고 숭고한 목적이나, 그 과정에서 일부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과 판단으로 인해 평판이 망가질 때가 많이 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왕이면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고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그리고 우리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물론 국제봉사기구에 가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겠으나, 거긴 월급을 제대로 안 주고 난 먹여 살려야 하는 가족이 있다.


이렇게 맨날 돈돈 거리는 나도 이왕이면 내 삶에 의미를 주고 싶은데, 나보다 더 젊고 현명한 여러분들도 이왕이면 하는 일에 좋은 의미를 부여하면 좋지 않을까?

나도 좋고 사회에도 좋고, 윈윈 할 수 있는 일 말이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이고, 어차피 시간 들여서 하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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