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회사 임원이 되면, 그다음은?
제약회사에 입사해서 20여 년이 지나면 대부분 남아있는 고인 물(?)들의 케이스는 정해져 있다.
아예 초반에 본인만의 다른 길을 찾아서 떠난 사람들. 의외로 이런 친구들 중에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 지금 이름만 대도 모두가 알만한 회사의 창업자이거나, 모두가 알만한 회사의 CEO 이거나, 모두가 알만한 유튜브 운영자이거나. 다양한 영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회사에서 일을 못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무능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은 책에서 뿐만이 아니라 나의 경험으로 충분히 증명되어 있다. 그러니 회사에서 일 좀 못한다고 구박하거나 무시하지 말자. 밖으로 나가면 그 사람이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모른다.
다음은 영업직에서 담당자로서 꾸준하게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의든 타의든 지금의 자리에서 한 그루의 소나무처럼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Change라는 선택을 굳이 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본인의 전문성을 살려서 담당자로서 열심히 하고 있고, 다가올 ERP (Early Retirement Plan)로 얻을 수 있는 조기퇴직위로금을 기다리거나 정년까지 최대한 버티는 것이 목표이다.
생각해 보면 이들도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가며 현재의 자리를 사수해 온 사람이다.
회사 내에서는 모르겠지만 여기 해당하는 분들 중 개인적으로는 성공한 분들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부동산 투자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제약회사에서 대부분 알짜부자들은 영업부 사람들이다.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세상을 보는 눈도 넓고( 회사 내에서의 넓은 눈은 아닐지라도), 다양한 지역을 다니면서 돌아볼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시간을 내어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 그래서 부동산 법인을 세워 월 500만 원 이상씩 꾸준하게 임대소득을 얻거나, 강남 한복판에 재개발 아파트에 올인해서 수십억 대의 부자가 된 사람도 있다.
회사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결국 ERP를 받고 나가셨지만, 알고 보니 수십억 대의 주식 혹은 부동산 부자더라 라는 얘기는 뜬소문 만은 아니다. 내가 알던 분들 중에도 경기도에 건물이 있는 분들도 계셨고 부동산 투자로 한 달에 수백만 원씩 따박따박 받는 분들이 꽤 있으니 말이다.
나머지는 그나마 회사에서 어느 정도 성공가도를 타서 임원 혹은 매니저 자리에 오른 부류이다. 물론 정말 승승장구해서 위로 높이 높이 가는 분들도 있다. 한국에서 사장을 하거나 해외 본사 혹은 다른 나라의 지사장으로 간 분들도 있다. 다들 회사에 올인해서 달리는 혹은 달렸던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Work & Life balance 보다는 성취감과 자기 동기부여로 가득 찬 사람들이다. 끊임없는 에너지와 열정, 목표의식이 참으로 부러울 따름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나처럼 임원까지 올라오기는 했지만 무조건 앞을 보고 달리기에는 잡생각이 너무 많아진 부류이겠다. 과연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이다음 나의 커리어를 위해서 앞으로 더 갈아 넣어야(?) 하는데 충분히 준비되어있는지 이런저런 고민으로 잠시 멈춰있는 사람들이다. 해외로 가자니 내가 굳이 외노자(외국인노동자)의 길을 가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고, 한국에서 다음 포지션을 위해 달려가자니 현재의 삶에서 더 일에 올인해야 하는 사실이 내가 원하는 삶과는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이다.
사실 제약회사 임원이라고 해봐야 별게 없다. 삼성이나 SK 대기업처럼 급여가 아주 높은 것도 아니고, 뭔가 혜택이 엄청 좋은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내가 무엇을 더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해 보는 시간도 필요하다.
임원자리에 가면 소위 말하는 사측이 된다. 그럼 필연적으로 노측인 직원들과는 거리가 생기게 된다. 그런데 결국 모두는 월급쟁이일 뿐, 십여 년이 지나 정년을 하고 나면 그냥 사람과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사측인 척(?) 하지만 난 사실 마음속으로는 노측이다. 가끔 회사에서 불합리한 일들이 벌어질 때 노조 소속 직원들에게 제대로 회사에 의견제시를 하라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결국 이 시점은 나의 삶에 있어 만족이 어디서 오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승진에서 오는 성취감과 금전적인 보상에서 오는 만족감, 그리고 직원들을 밑에 두고 부리는 권력욕 같은 것들 말이다.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지만 이제 와서 생각을 해보면 임원과 직원 사이에 뭐가 그리 큰 차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글로벌 전략에 맞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과연 그것이 꼭 나의 행복과 일치할까? 일을 수단이지 목적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기에 더욱 고민이 많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도 지금 그 수많은 고민을 정리해 보고 또 적어보는 과정을 겪고 있고, 아마도 많은 동료, 후배들이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을까 싶다.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아니다, 어떤 미래를 만들고 싶은 걸까? 가 더 맞는 질문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