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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제약회사 신입 영업사원 다섯 번째

혼자 있으면서 내가 정말 힘들었던 것들.

by 러블리 이지

세상에 어떻게 좋은 일들만 있을 수 있을까.


장점이 있다면 힘들었던 점들도 사실 많았다. 병 주고 약주냐가 아니라 현실을 알고 가는 것과 아예 모르고 부딪히는 것과는 다르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미리 마음의 준비, 그리고 현실적인 준비를 하고 나면 조금이나마 낫지 않을까? 유비무환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1.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외로움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던가.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나의 선택이 아닌 주어진 상황으로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내쳐진다면 완전히 다른 느낌이리라. 다행히 그 지역에 누군가 지인이라도 하나 있다면 참으로 좋겠으나, 발령이라는 것이 나의 의지나 내 가족, 친지들의 거주 지역과 상관없이 진행이 되니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나마 조금 양심(?) 있는 회사들은 면접 볼 때 슬쩍 물어본다. 가족 친지 중 누군가 있는지. 문제는 누군가 '있다'라는 답을 했기 때문에, 그 지역으로 발령받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 있으니 그나마 회사 인사 책임자의 마음이 덜 불편한 걸 수도 있겠다.


낮에는 그래도 고객들을 만나고 일에 치여 바쁘다 보면 잠시 잊고 있을 수도 있지만, 저녁이 찾아오면 고요함과 함께 다가오는 외로움은 참으로 괴롭다. 난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신입사원 때만 해도 혼밥이 정말 죽기보다 싫었다. 누군가 혼밥을 하는 모습을 보면 오죽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으면 혼밥을 할까?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혼밥에 대한 거부감이 없을뿐더러 가끔은 누군가와 함께가 아닌 혼자 먹는 밥이 마음 편할 때도 있다. 최근 혼밥을 하는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고, 몇 년 전에 일본에서 혼밥을 위한 1인 좌석을 갖춘 식당을 비웃었던 우리가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혼밥을 하는 걸 보면 결국 대한민국도 일본을 따라가는 게 아닌 가 싶다.


감성적인 성향의 사람은 특히나 밤에 오는 고독이 힘들다. 지금은 다 사라져 버렸지만 당시에 한창 유행했던 싸이월드의 비밀 일기장 속에는 온갖 감성적인 미사구가 더덕더덕한 마치 한 편의 시 같은 일기들이 많이 있었다. 가끔은 내가 이걸 쓴 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Super Power J (MBTI 중 하나)인 나조차 그렇게 만들어버리는 힘이 있다. 그래서 인간은 기본적으로 누군가 함께 하고 싶은 것이리라.


다른 많은 고충 중에 이 외로움이라는 것이 나의 경우 가장 큰 적이었고, 이로 인해 퇴사를 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정말 많이 했었다. 특히나 일을 하면서 힘들고 괴로울 때는 정말 일이고 뭐도 내던지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2. 주거환경,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물론 수도권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비슷한 혹은 더 좋은 거주지를 구할 수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신축은 여전히 어디든 비싸다. 돈을 아낀답시고 오래된 아파트로 이사를 가자니 과하게 노후화된 곳들도 많다.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낡은 곳들도 많다) 지방에 가면 이름도 처음 들어본 지방 건설사들이 지은 아파트들이 많다. 그리고 오래된 곳들의 경우는 생각보다 고장이 잦다. 특히 보일러가 오래되면 겨울에 뜨거운 물이 잘 안 나오고, 집안에 누수가 생기는 곳도 있다. 간혹 지역색이 강한 곳은 동네 큰 형님들이 계시는 경우도 있으므로, 아무리 지방이라고 하더라도 돈을 조금 써서 환경적으로 좋은 곳으로 가야 한다. 난 너무 가성비를 따지다 보니 지은 지 거의 40년 된 아파트 전세를 얻었고, 나중에 집이 빠지지 않아 거의 6개월간 돌려받지 못했다.


동시에 나를 포함한 많은 지방에 발령받은 동기들은, 주말만 되면 연고지로 가기 바빴다. 매주마다 지방에서 서울, 경기도 까지 차로 짧게는 2-3, 많게는 3-4시간을 걸려 오가는 생활을 계속하다 보면 내 몸도 상하고 돈도 깨진다. 주거비를 아껴서 교통비로 쓰게 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어차피 몇 년간은 성과를 보여줘야 다시 돌아갈 수 있다. 매주마다 집으로 갈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어떻게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나에게 투자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자.


3. 비상시 도움을 받을 길이 없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룬 경우 이렇게 지방 발령이 나는 경우 주로 가족은 연고지에 두고 혼자 주말 부부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필연적으로 나 홀로 주 5일을 보내게 된다.

물론 신입사원들이라 함은 대부분 20-30대 초반까지의 사람들이므로 큰 병이 있진 않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사람일은 모르는 것이고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교통사고가 나거나, 갑자기 어디가 아파서 앓아눕거나,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뇌졸중이나 심장마디 등이 올 수도 있다. 아니면 크게 넘어지거나 낙상사고도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나 홀로 있다는 건 참으로 서글프다..

지방에 간 사람이고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든 유사시에 도움 받을 수 있는 한 사람은 만들어 놓길 바란다. 그게 자주 가는 밥집 주인이든, 옆집 아저씨든, 같은 팀 동료 혹은 다른 회사의 같은 지역 담당자일 수도 있다. 현지에서 도움 받을 수 있는 누군가와의 비상연락망은 꼭 만들어 놓아야 한다.


4. 몸을 버리기 쉽다.


물론 지금의 MZ 세대들은 워낙 스스로 잘 챙기는지라 그렇지는 않겠지만, 아무래도 혼자 산다는 건 매번 밥 해 먹기가 귀찮다는 것이고, 이는 잦은 외식, 정크푸드, 빵 등으로 구성된 식사를 하기 쉽다. 특히, 아침 대용으로 쉽고 자주 먹는 빵의 경우 맛은 있지만 칼로리나 포화지방, 정제당 등 성분을 보면 지속적으로 섭취 시 성인병 걸리기 딱 좋다. 난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도 아니지만, 6개월 간 아침을 빵으로 때웠더니 혈압이 급격히 올라가는 게 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결국 식단을 조절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햇반을 먹고 난 플라스틱 그릇 혹은 환경 호르몬 이슈도 있으니 모 회사의 유리그릇도 좋다. 주말에 밥을 잔뜩 해서 소분해서 얼려두면 주중에 하나씩 꺼내서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으면 좋다. 물론 밑반찬은 온라인으로 주문해 두거나, 주말에 한 번씩 부모님 댁에서 얻어다가 먹자. 돈 아끼는 지름길이다.

이것도 다 귀찮다면 월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아보자. 명색이 영업사원인데 주변 식당 주인과 친분을 쌓는 것이 어려우랴. 맛집 하나 찾아서 뚫는 것도 역량이다.


5. 마지막으로 운동도 꼭 해야 한다. 젊어서 몸을 막 굴리면 나이 들어서 백 프로 고생한다.


영업은 철저한 자기 관리가 굉장히 중요한 업종이다. 나태해지면 한도 끝도 없다. 특히나 이렇게 혼자 있는 경우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놀 수도 있다. 밤늦게까지 인터넷, 게임 등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아침에 늦잠 자는 경우도 허다하다. 스스로에 대한 관리에 자신이 없다면, 개인적으로 영업직을 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다. 팀을 망치고 결국 스스로를 망친다. 특히 접대가 많을 수밖에 없는 업무 특성상 지방간이나 비만도 자주 온다. 술을 자주 마시다 보면 당뇨나 고지혈증도 많이 온다. 젊어서는 비록 괜찮더라도 나이 들어 당뇨로 고생하는 분들도 많이 봤다.


6. 일은 누구한테 배우나?


간섭을 받지 않아서 좋은가? 하지만 동시에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일 수도 있다. 업무를 배울 때 70%는 OJT (On the Job Training)인 실제 경험을 통해 배우고, 20%는 동료나 멘토로부터 배우며 10%만이 교육을 통해서 배운다.

경쟁사는 나에게 친하게 대하더라도 정보를 빼갈지언정 일을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결국 신입 때는 매니저나 동료들, 선배들에게 배워야 하는데 이렇게 동떨어져 있다면 배우는 속도가 늦을 수밖에 없다.

어쩔 수없이 팀 선배님들 동기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기회가 되면 사무실로도 자주 가고, 귀찮다고 생각하지 말고 선배님들을 붙잡고 술 한잔이라도 하면서 자꾸 배워가야 한다. 본인 스스로 한 사람의 몫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되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먼저 다가가서 배워야 한다.


암울한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남성분들이면 군대 갔을 때를 생각하면 된다. 그때 철이 들어서 온다고들 하는 것처럼, 직장생활에서 이렇게 홀로 떨어져 일을 하다 보면 가족에 대한 소중함도 느끼게 되고, 철도 든다. 제대로만 산다면 돈이 모이는 것도 덤일 것이다.


물론 군대고 지방이고 다시 가라고 하면 가고 싶지 않은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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