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십이지신으로 되묻다

01화 프롤로그 : 청년이 전하는 중년 이야기

by 찰리스 피커

자축인묘 진사오미 신유술해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이상 그 시간에 맞물린 '띠'를 하나씩 부여받는다.

용맹한 호랑이가 좋다고 해서 토끼띠인 내가 호랑이띠가 될 수 없다.

십이지신으로써의 구분은 삶의 질서를, 농사의 주기를, 사람의 성정의 속성을 지녀왔고,

우리는 이것을 통해 자연의 흐름과 인간의 삶을 맞물려 이해하려고 한다.


인간 자체도 갖가지의 계절을 경험하며 성장하기에 삶 또한 순환하는 자연과 닮아 있다.

즉, 나이 듦이라는 것은 삶의 순환성과 시간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필연이다.


필자는 20대 중후반에 막 다다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는 평범한 누군가에 불과하다.

혹자는 '20대 중반이 중년에 대해 쓴다'는 것에 대한 의아함을 가질 수 있다.

미리 고백하자면, 앞으로 전개될 글들에는 작가의 경험이 담기지 못하는, 담길 수 없는 약점이 있다.

그러나 경험하지 않은 것을 사유하는 용기의 결과라는 특성의 강점이 있다.


그렇기에 이 글은 정답이 아니다. 이 글은 오히려 물음이다.

내가 경험한 중년의 모습이 아닌, 내가 되고자 하는 중년의 모습을 연구해 본다.

단순한 역할극이 아니라 미래의 자화상을 꺼내어 들여다보는 일의 일종으로 사유해 나간다.


나는 중년이 아니기에 카테고리화되지 않은 다양한 군상을 다룰 수 있다.

시간이 흐르고 중년이 되면, 거스를 수 없는 선택에 따라 하나의 틀로써 중년 자체를 바라보게 될 시기에

봉착할 것이다. 아직 청년에게는 그러한 틀이 없다.

도착하지 않은 미래를 함부로 단정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진실한 관찰자일지 모른다.


이런 독자들에게 나의 부족한 글을 권한다.

* 나이 듦에 대해 미리 사유하고픈 청년

* 이제 막 중년의 문턱에 선 그대

* 괜찮은 삶인지 하루하루가 의심스러운 중년


어느 부류든 간에 당신이 걸어온 걸음이, 충분히 의미 있고 아름답습니다.

잠시 멈춘 기분이 들더라도, 방향을 잃은 게 아니라 숨을 고르고 있는 중일지 몰라요.


나아가 도달하는 중년의 의미를 주제로 하지만 굳이 '되묻다'라는 표현을 쓴 것은

사유를 통해 지난 삶을 되돌아보고, 힘을 얻는 중년분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를 길러준 훌륭하신 부모님께 앞으로 글을 바칩니다.


// 매주 수요일 10시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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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합니다 이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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