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괜히 꿈일까

꿈은 멀다

by 에드니

<전편에서 이어집니다.>



'그래, 그간 고생했다. 한국 가서 연락하고.'


2025년 1월 7일. 법인장님의 마지막 인사와 함께 하노이 공항으로 떠나는 차문이 닫혔다. 차로 2시간 거리. 나는 다음의 이유로 연신 훌쩍대며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12월 31일에 퇴사처리 된 후 달랏으로 여행을 떠났다. 오토바이를 빌려 돌아다녔는데 지대가 높은 곳이라 당연히 공기가 좋을 줄 알았건만, 안 그래도 비염이 심한 나는 앞서 달리는 오토바이의 매연과 모래먼지를 그대로 흡입했다. 코는 곧바로 기능을 정지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서까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한 건 코뿐만이 아니었다. 늦은 도전을 시작하는 30살짜리 나의 뇌 역시 멍해있었다. 얼마든지 퇴사를 철회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직장인 신분으로 꿈을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과 이제 개털도 없는 한 명의 백수 신분으로 그 계획을 실현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백수 좋다는 게 뭐라고 10일 남짓동안의 행복한 방황을 멈추고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할 게 많았다. 학교 컨택, 비자 서류 준비, 미국 교통안전국 지문 등록, 항공 신체검사 그리고 미국 대사관 면접까지. 아니 내가 내 돈 주고 공부하러 가겠다는데 이걸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는데 해야 했다. 안 그럼 미국을 못 간다는데 해야지. 마치 퀘스트를 깨듯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기 시작했다.


미국과 시간을 맞춰 학교와 간단한 영어테스트를 진행했다. 해외에서 일한 경력이 어디 가진 않았는지 그 정도면 충분하겠다는 평가 섞인 칭찬을 받고 입학 허가서를 받아냈다. 복잡한 이민국 시스템과 씨름해 가며 서류를 하나하나 준비해 나갔고 그 끝에 미국 대사관 비자 인터뷰를 예약했다. 결전의 날은 3월 10일.


서류 준비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려 2월 중순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제 오랫동안 한국에 들어오지 못할 테니 병원을 빠짐없이 들렀다. 안과는 안경점으로 대체하고, 이비인후과, 내과, 치과 등에 들렀고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해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도 마쳤다. 그리고 퇴행성 관절염 소견을 보유한 서른 살로서 재활의학과에도 들러 혹시나 더 나빠지진 않았나 검사도 진행했다. 전부 OK였다. 예감이 좋았다.


그리고 3월 10일 미국 대사관 인터뷰에 맞춰 항공 신체검사와 TSA 지문등록도 예약을 맞췄다.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힌 계획이었다. 아침 7시 30분 광화문에서 미국 비자 인터뷰, 11시 강남구청에서 신체검사, 3시 서초에서 지문 등록.


이거 됐네. 됐다! 출국은 3월 말로 하면 되겠다. 베트남에서 세웠던 계획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도 가족끼리 여행은 한 번 가야 하지 않겠어?'


엄마였는지 누나였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나도 누군가로부터 흘러나온 말에 동의했다. 한국에 오래 안 들어올뿐더러 온 가족이 미국에 놀러 온다고 하면 그 돈이 도대체 얼마인가. 미리 해결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우리 가족은 그래서 일본 여행을 예약했다. 목적지는 고베와 교토. 나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엄마와 누나가 한 번 가보고 별로라고 했던 오사카는 경유지에서 빠졌다.


날짜는 3월 14일로 정해졌다. 다녀와서 마지막으로 짐 점검하고 미국으로 떠나면 딱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남은 건 비자 인터뷰뿐이었기에 마음 놓고 일본 고베와 교토를 구글 지도로 샅샅이 뒤져가며 맛있는 음식점과 카페를 찾기 시작했다. 일본 여행을 다녀오면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을 것이기에 옷가지들도 마구마구 사들이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파는 옷들은 동양인 체형에 안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3월 8일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비자 서류들을 점검하고 비자 발급에 대한 유의사항들, 인터뷰 예상 질문들을 뽑아가며 최종 점검을 하던 중이었다. 블로그를 읽다가 그제야 눈에 띈 문구. '합격하면 비자 심사관이 여권을 가져가 비자를 붙여준 뒤 우편으로 보내줍니다. 빠르면 3-4일, 상황에 따라 5-6일까지 걸립니다!' 아하. 그렇구나. 모르고 갔으면 당황할 뻔했네.. 가 아니라 일본 여행은?




미리 확인을 하지 않은 멍청한 놈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3월 10일이 인터뷰였고 출국일은 3월 14일.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이것저것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서울 어느 지점으로 수령장소를 지정하면 이틀 만에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관에게 사정을 얘기하면 합격처리는 되더라도 여권은 그날 돌려받고 나중에 비자를 따로 받을 수 있습니다.'등 온갖 방법이 인터넷에 나와있었다. 하지만 비자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었기에 여행을 포기할 각오로 결국 비자 인터뷰를 하러 갔다.


빨리 줄을 서면 인터뷰를 빨리 끝낼 수 있다는 말에 6시 50분쯤 대사관에 도착했다. 막상 가보니 이미 많은 지원자들이 줄을 서고 있었고 나는 한참을 걸어 줄 맨 뒤에 도착했다. 아직 새벽은 추운 3월이었기에 고맙게도 파라솔 아래 히터가 달려있었다. 하지만 파라솔 간 간격이 멀었기에 따뜻했다 추웠다를 몇 번 반복하고 나서야 대사관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비자 인터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인터뷰 창구가 하나 둘 열리기 시작하자 줄은 금세 줄어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내 차례. 산뜻하게 아침 인사를 건네고 인터뷰가 시작됐다. 심사관이 물었다. 왜 미국에서 공부를 하려고 하나요? 대답했다. 상용 비행 시장이 세계에서 제일 크기 때문에 비행 교육 퀄리티가 가장 좋기 때문입니다. 돌아온 심사관의 대답은 여행을 가지 못할 걱정과 여행을 포기할 각오를 모두 우습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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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를 드릴 수 없을 것 같네요. 다음에 뵙죠.'

'네..? 아니.. So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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